[김 선생의 오솔길] "Paganini For Two" 음반 리뷰

▲ 두 연주자가 악기를 들고 마주보고 있다.
파가니니, 악마가 깃든 연주자로 불릴 만큼 놀라운 기교로 유명한 이태리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자이다. 그의 연주 실력과 작품은 놀라웠고 훌륭했지만 그에 대한 음악적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유야 많겠지만 그의 음악적 업적을 계승할 후계자가 없다거나 혹은 즉흥적 연주 스타일 때문에 그의 현란한 기교가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이나 뛰어난 천재에 대한 보통수준 사람들의 질투심은 음악계도 예외가 아닌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거나 이 화려하고 찬란한 음악은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된 소나타로서 하나하나가 너무나 이름답고 동시에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데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나 뮤지컬의 레퍼토리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실 같은 현악기지만 기타와 바이올린은 음색이나 느낌이 확연히 다른 악기로서 두 개의 악기가 어울려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보통의 우리는 생각하기 어렵다. 바이올린은 현을 활로 켜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칸틸레나(성악곡이나 기악곡에서 쓰는 서정적인 선율)를 표현하는데 적절한 악기가 분명하다. 따라서 근대음악 이전부터 바이올린은 음악적 위치가 확고한 악기였고 18세기 이후의 음악에서도 그 위치는 변함없이 매우 중요한 악기였다. 이에 비해 기타는 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 방식이어서 매끄러운 서정성보다는 간결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약간의 가벼움이 지배적인 음색으로서 바이올린처럼 오케스트라에는 어울리지 않는 악기이며 독주 악기로서도 20세기 초 세고비아에 의해 자리매김하기 전까지 보조악기로서 그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 음반의 1번에서 3번 트랙은 소나타 콘체르타토 양식이다. 즉 두 개의 악기가 대립 혹은 대조적으로 설정되면서도 전체적으로 유효한 조화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바이올린과 대조되는 음색을 가진 기타라는 악기를 이용하여 이렇게 화려한 음악적 성과를 낸 파가니니의 영감에 대해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게 된다. 나머지 4번에서 22번 트랙은 소나타 형식으로서 두 개의 악기가 병립하는 느낌보다는 서로를 위해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5번 트랙은 특별하게 칸타빌레(노래하듯이)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이 트랙은 기타 반주는 정말 드러나지 않게 그리고 조심스럽다. 16번부터는 프레기에라(기도라는 뜻의 이태리어)라는 말이 소나타 뒤에 특별히 붙어있다. 음악을 들으면 왜 기도라는 이름을 추가했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질 샤함(Gil Shaham)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이스라엘 양친을 두었지만 태어난 나라는 미국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 성장하고 바이올린에 입문했다. 어느 정도 음악적인 성과가 생기자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서 연주활동을 한다. 모든 뛰어난 연주자가 그러하듯 샤함도 거의 음악에 대한 천재적 기질은 타고난 것이어서 악보에 나타난 음표를 연주하는 것에 더하여 본인의 감성을 녹여 스스로 음악적 작업을 완수해 내는데 임의의 부분에서 템포를 바꾸는 즉, 루바토를 통해 곡의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연주되는 이 음반의 바이올린 연주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동시에 얼음처럼 명징하여 우리를 매혹시키고 만다.

기타 연주자는 괴란 죌셔인데 스웨덴 사람이다. 샤함보다 나이가 많지만 샤함과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많은 음반을 출시하고 있다. 클래식 기타의 줄은 거터(양의 내장)로 되어 있어 음색이 매우 부드럽고 단아한데 이러한 특징을 이 음반 전체에서 잘 느낄 수 있도록 죌셔는 연주하고 있다. 특히 기타가 주인공이 되고 바이올린이 반주를 맏는 10번의 그랜드 소나타와 두 개의 악기가 대립되는 1번에서 3번까지의 소나타 콘체르타토는 기타라는 악기가 결코 음악적 감성이 쳐지는 악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단아함과 찬란함의 조화

Sonata Concertata In A Major M.S. 2 - 1. Allegro Spiritoso

Sonata Concertata In A Major M.S. 2 - 2. Adagio, Assai Espressivo

Sonata Concertata In A Major M.S. 2 - 3. Rondeau, Allegretto Con Brio, Scherzando

기타와 바이올린의 절묘한 조화로 시작되는 첫 부분을 들으면 우리 삶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의 가닥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데 악기와 연주자의 특성도 반영되었겠지만 파가니니의 음악적 영혼이 더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Concertata라는 말 그대로 두 악기는 서로의 영역을 왕래하면서 때로 부딪치고 또 때로는 나란히 이어지지만 음악을 듣는 우리에게는 그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두 악기의 연주일 뿐이다.

1번은 기운차게(Spiritoso) 울려 퍼지는데 마치 꽃을 피우는 나무들처럼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듯 생기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나무들일수록 꽃들은 빨리 흩어져버리고 마는데 그 기분은 2번에서 감정을 실어(Espressivo)연주한다. 하지만 꽃이 지고 나면 새싹이 돋아나고 금방 세상은 화려해진다. 그 기분을 표현하듯 3번은 가볍고 경쾌하여 익살스럽게(Scherzando)까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Sonata In A Major M.S. 27 (Op. 3) - 1. Larghetto

첫 부분, 바이올린 독주는 너무나 애절하여 몸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을 준다. 애절함은 내내 이어지다가 절절함으로 이어지는데 기타는 뒷부분에서 슬며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연주한다. 바이올린의 E 현을 짚는 샤함의 빠른 손놀림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음악이다.

Sonata In A Major M.S. 27 (Op. 3) - 2. Presto Variato, Variazione(느리게 변주곡으로)

그러다가 바이올린의 A 현과 D, G 현을 오가듯 하다가 갑자기 피치카토, 즉 현을 튕기기 시작한다. 기타와 닮아 가려는 듯하다가 더블스탑핑(두 현을 동시에 켜는 주법)으로 간결하게 마무리 한다. 이를테면 격정에 대한 파가니니의 이해인데 음악을 듣는 나는 봄밤, 꽃잎이 휘날리는 장면을 연상한다.

Sonata In E Minor M.S. 27 (Op. 3) - 1. Andante Largo

느리게 내려앉는 꽃잎과 함께 봄밤은 깊어가고 그 위로 슬쩍 바람이 불면 그 꽃잎 이리저리 날리는 모습을 본다. 안단테로 흐르는 템포에 맞춰 기타 소리는 들릴락 말락 울리고 그렇게 이 밤은 깊어지고 있다.

Sonata In E Minor M.S. 27 (Op. 3) - 2. Allegretto

조금 빠르게라는 것으로 기분을 전환한다. 너무 느린 것은 봄의 정취가 아니다. 상쾌한 마음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삶을 가치 있게 한다.

Sonata In E Minor M.S. 27 (Op. 3) - 1. Andante

유려함은 바이올린의 매력이다. 기타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자세를 낮추지만 나름대로의 격정은 있다. Andante의 매력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데 결코 늘어지는 것이 아닌 경쾌함이 살아있는 편안함임을 뒷부분에서 파가니니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마르틸란토(활을 가볍고 짧게 두드리듯 연주하는 주법)와 피치카토를 이용하여 밝고 화사한 느낌을 강조한다.

Sonata In E Minor M.S. 27 (Op. 3) - 2. Allegro Vivo E Spiritoso

경쾌함의 정도를 넘으면 기운찬(Spiritoso) 느낌이 된다. 기운찬 느낌은 삶에 대한 열정이며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에서 비롯된다. 파가니니는 스스로 이러한 단계를 느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음악적 표현으로 볼 때 그러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Grand Sonata In A Major M.S. 3 - Romance, Piu Tosto Largo, Amorosamente

유독 이 부분은 그랜드라는 이름을 붙인 걸로 보아 곡의 길이 문제이거나 아니면 특별히 의미를 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첫 부분이 기타로 시작되는 것은 기타 연주자에 대한 파가니니의 배려(?)이리라. 하지만 음악은 Amorosamente(사랑스럽게)와 같이 사랑스럽고 부드러우며 특히 기타가 리드하는 분위기를 바이올린이 보조하는 장면은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마저 준다. 이 앨범에서는 비교적 긴 4분이 넘는 시간을 연주하는데, 나의 해석으로 본다면 지나온 날들에 대한 기억이자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반성이 녹아있는 듯 보인다.

Sonata In D Major M.S. 112 No. 2 - 1. Adagio Cantabile

‘노래하듯이’라는 기호처럼 바이올린이 노래하고 기타는 반주자처럼 뒤에서 묵묵하게 받치고 있는 풍경이다. 강렬함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파가니니의 짧고 유려한 독백이다.

Sonata In D Major M.S. 112 No. 2 - 2. Rondoncino, Andantino, Tempo

이번에도 기타가 앞서고 뒤이어 바이올린이 따라 나온다. 기타 거터의 울림과 바이올린의 피치카토는 확연히 다르나 둘 다 줄을 튕기는 주법이므로 같은 혈통을 지닌 악기라고 파가니니는 생각했을지도 모르나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뒷부분은 파가니니가 어떤 악기를 주로 사용했음을 대변해 준다.

Sonata In A Major M.S. 112 No. 4 - 1. Adagio Cantabile

또 한 번, 바이올린의 격정으로 마음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든다. E 혹은 A 현을 넘나드는 바이올린의 고음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슬픔이 모두 눈앞에 명료하게 나타나고 어쩌면 그 슬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 낼 수 있을 것 같은 엉뚱한 자신감이 생겨나는 음악이다.

Sonata In A Major M.S. 112 No. 4 - 2. Rondo, Andantino, Allegretto, Minore, Maggiore

몇 개씩이나 붙여 놓은 연주 방법이 암시 하듯이 기타는 기타대로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대로 따로 또 같이,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때로 단조로 깊어지다가 또 때로는 흥이 난 듯 장조로 이어지는 모습은 우리가 봄을 맞이하고 보내는 느낌과 같으리라.

Cantabile In D Major M.S. 1093:48

특별히 ‘노래하듯이’를 곡 이름에 써 놓은 것을 염두에 두고 이 곡을 들으면 정말 우리 가곡 “봄처녀”의 가사처럼 봄처녀로 형상화된 봄의 정령이 사뿐사뿐 내게로 걸어 오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고 유려한 바이올린의 뒤에 아주 희미하지만 기타가 가끔씩 존재를 알리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파가니니가 가진 악기에 대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기타 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봄의 정령은 바이올린을 타고 우리에게 온다.

Sonata A Preghiera In F Minor M.S. 23 - 1. Introduction: Adagio

Sonata A Preghiera In F Minor M.S. 23 - 2. Theme. Tempo Alla Marcia

Sonata A Preghiera In F Minor M.S. 23 - 3. Var. 1

Sonata A Preghiera In F Minor M.S. 23 - 4. Var. 2, Vigoroso

Sonata A Preghiera In F Minor M.S. 23 - 5. Var. 3

Sonata A Preghiera In F Minor M.S. 23 - 6. Finale

‘기도’란 누군가에게 간절히 무엇인가를 바라는 행동이다. 기도(Preghiera)라는 부제가 있는 이 여섯 곡은 아주 일관되게 간절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기타로 시작되는 1번곡에서도 춤곡처럼 경쾌한 2번 곡 에도 간절함이 묻어난다. 3번 곡은 E. A, D, G 현을 쉼 없이 오르내리며 기도의 힘이 되는 슬픔, 또는 기쁨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내 슬프거나 처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Vigoroso처럼 힘 있게라는 표현처럼 파가니니는 전체적인 음악적 균형도 감안하여 연주하게 한다.

Allegro Vivace A Movimento Perpetuo In C Major M.S. 72 (Op.11)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은 파가니니가 붙인 Perpetuo(영속적인)라는 표현과 비바체의 기호처럼 매우 빠르게 바이올린이 연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음악의 숨결 속에 숨어 있는 화려하고 천재적인 파가니니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이 음악적 작업의 내면에는 파가니니 그가 일생동안 이루고자 했으며 또 언제나 음악적 방법으로 지향했던 영속성, 영원성에 대한 그의 찬사이며 동시에 서사일 것이다.

<김 선생의 오솔길>은 현현적적 시민기자가 클래식 평론, 영화 평론, 책 평론 등으로 세상읽기를 하는 공간입니다. 현현적적은 곤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준식 교사의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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