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재의 음악놀이터]베토벤 첼로소나타의 아름다운 선율에 녹아 있는..

눈여겨보는 젊은 첼리스트가 있습니다.

중국서 붙들린 감기 치료 받으며 알게 된 의사의 딸인데 어찌나 열심인지 젊음도 유보한 채 지켜보는 내 속이 타들어갈 지경으로 오로지 연습에 매달려 살더군요.

오륙 년 전, 대부분이 오디션을 통과해야 연주 가능한 공연장에서 또 활줄을 문질러댄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연주회 가고 싶어 하는 군상을 우르르 몰고 냅다 달려갔지요.

준비 많이 한 모양입디다. 전부 5곡인 베토벤 첼로 소나타 가운데서 그날 고른 제4번 연주는 특별히 눈부셨습니다. 피아노 반주를 맡은 젊은 영국친구와의 절묘한 호흡이 하도 절묘해 ‘브라보’를 외치며 손뼉을 치니 첼리스트의 아버지가 입에 손을 대고 ‘쉿’ 조용히 하랍니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좋아했던 곡인데 양보할 수 있나요?


베토벤 첼로소나타 4번. 자료출처: 유튜브

연주자의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그 영국 녀석 아무개 좋아하는 것 아니우?” “아니!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아닐 거야, 왜?” “둘의 호흡이 하도 잘 맞아서 말야... ”

이 친구를 마침 우리나라에서 개최중인 영국의 도자기박물관 한국전시회에 초대했습니다.
중국 강서성 경덕진에서 만든 청나라 때 접시, 오백억 쯤 한다는 설명에는 탄성을 지르며 흥미롭게 보더군요. 도자기를 'China'라고 하지 않던가요. 전공 내세워 잘난 척 좀 했지요.

관람 끝나고 차 한 잔 마시며 도란도란 음악 이야기 즐겁게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중간 중간 본인도 모르게 왼손 손가락의 허물을 벗겨내더군요. 무명지는 하도 첼로 줄을 눌러 댄 나머지 손톱 모양도 둥글게 변해버렸습니다.

그 나이 젊은 여성들은 이런저런 치장에 매니큐어도 곱게 칠할 텐데 어려서부터 오로지 악기의 줄과 씨름해 온 그 일그러진 왼 손톱. 순간 제 가슴이 울컥해왔습니다.

수업시간에 몸을 비비꼬고 더러는 졸기도 하는 학생들에게 이 신통한 첼리스트의 왼손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백조가 물 위에 떠 있는데 우아한 모습 지키느라 물밑에서 발은 쉴 새 없이 ...’ 어쩌구 하면서요.
평소 차분하고 열심이던 한 학생의 눈가가 빨개지더니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왼손 손톱이 뭉개지도록 연습한 과정과 나날이 이해되는 모양이지요. 이 맛에 선생하지요.

지난여름 공연은 마침 제가 출국 해 있어서 아쉽게도 못 들었습니다.
4월 29일, 월요일 다시 공연 일정이 잡혔군요.

그 사이 유학 마치고 결혼해 새 신랑 도시락 싸주는 풋내기 주부노릇도 잘한다니 지난날에 비해 삶의 깊이가 더해져 소리가 더 좋아졌을 겁니다.

겨우내 힘들어 절절매며 소품조차 변변히 못 챙겨들어 사는 것 같지 않았는데 좋은 나들이 하게 생겼습니다. 무르녹을 봄날 모처럼 쳐 박아둔 가벼운 옷 챙겨 입고 날렵한 구두도 광나게 닦아, 졸개 잔뜩 이끌고 콧바람 날리며 사뿐한 발걸음으로 연주회장 갈 생각입니다.

혹시 이 날 서울 나들이 하시는 사천 분들 계시면 연락주세요.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금호아트홀이니 교통편도 참 좋은 곳입니다. 복잡한 남자관계를 활용해 몇 분은 초대할 수 있을 듯 하거든요.

베토벤 첼로소나타는 제가 즐겨듣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와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 두 러시아 거장의 화합이 있습니다. ‘모리스 장드롱’과 ‘장 프랑세’의 날렵한 화합도 뺄 수 없고요.


로스트로포비치와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가 함께 연주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 자료출처: 유튜브


모리스 장드롱과 장 프랑세가 협연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 자료출처: 유튜브


아름다운 첼로와 피아노의 대화가 명증한 멜로디로는 제3번이 으뜸이지요. 진지한 음악학자들은 첼로의 신약성서라고도 합니다만 저는 ‘유행가’라고 한답니다. 하도 자주 들어서요.

<임계재의 음악놀이터>는 음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거나 감동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공간이다. 글쓴이 임계재 선생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면서, 현재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창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음악듣기에 더 빠져 있었다는 게 글쓴이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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