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린 애들을 위험시설로부터 보호하라’고 말한다

유치원에서 2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주유소가 들어선다. 유치원 관계자와 학부모들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반면 사천시는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법을 꼼꼼히 살펴봤다. 법 전문가가 아니어서 법 이름도 관련 용어도 낯설지만 차근차근 따라가 봤다. 그 결과 기자의 판단으로는 적어도 사천시는 주유소 등록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주유소와 유치원의 관계를 풀어가는 데 있어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영유아보육법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정이다. 불행히도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 유해시설이 들어설 수 없도록 규정한 학교보건법에서는 주유소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이 점은 향후 교육계와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권에서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로 보인다.

영유아보육법과 주택건설기준이 말하는 속뜻은?

영유아보육법의 핵심은 만6세 이하의 영유아들이 밀집한 장소에서 위험시설을 일정 간격 이상 띄워 놓겠다는 취지다. 그래서 보육시설과 주유소는 50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보육시설이 ‘어린이집’ 또는 ‘놀이방’으로 국한된다는 게 문제다. 유치원은 어린이집이 아니기 때문에 영유아보육법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행정업무 일선에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사법부의 판단이 궁금하지만 이와 관련한 판례는 찾지 못했다.

영유아보육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분명 주유소가 유치원 어린이놀이터 등과 50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언급돼 있다.

하지만 사천시는 국토해양부 관계자의 설명을 빌어 이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대규모 주택사업지에만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말한다.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정을 받아들이는 서울시와 마산시

그러나 서울시는 다른 입장이다. 서울시는 석유사업법 시행령 별표2-석유판매업의 등록요건 규정에 따라 서울시 자체의 주유소 설립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어린이놀이터 유치원 보육시설로부터 50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주유소 설립 기준을 담은 서울시의 ‘주유소 등록요건 및 절차에 관한 고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새로운 게 없다. 주택건설기준 등 기존 법률에 있는 내용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고시가 경상남도에는 없을까. 확인결과 도는 1996년부터 ‘주유소 등록기준에 관한 고시’를 만들어 학교와 주유소가 50미터 이상 떨어지도록 해왔으나 2001년 들어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이 고시를 없앴다.

2007년 들어 인근 마산시에서는 초등학교 근처에 주유소가 들어서는 문제로 지역사회를 달구었던 적이 있다. 그 경우 학교와 주유소는 50미터 이상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셌고, 마산시 주최의 토론회까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마산시와 마산교육청 관계자는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정을 언급하며 학교가 빠져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결국 서울시와 마산시는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정이 특정 대규모개발지역뿐만 아니라 일반지역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은 공공의 이익과 안전에 관심이 더 깊다

핵심은 자치단체의 의지란 얘기다. 현행 주유소 등록 허가권은 지식경제부와 광역자치단체에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시군 단위에서 위임받아 처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에 따라 오는 5월부터는 주유소 등록 업무가 기초자치단체로 완전히 넘어간다. 사천시의 의지가 더더욱 중요해지는 셈이다.

유치원 앞 주유소 등록신청은 지난해 3월에 있었다. 당시 사천시가 얼마나 꼼꼼히 법을 살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180여 명의 영유아들이 밀집해 있는 유치원이 지척에 있음을 알았다면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적극적인 법해석을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더라도 지금처럼 그 답을 유치원과 학부모들에게 찾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뒤늦게 들어서는 주유소사업자에게 시의 결정을 반박할 근거를 대라며 반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 부산대학교가 학교 인근에 들어서는 아파트가 학생들의 환경권과 학습권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건설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아파트의 높이를 6층이나 낮췄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법의 구체적인 조문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법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그런 뜻에서, 영유아보육법이나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정은 아끼고 보호해야 할 영유아들을 위험시설인 주유소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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