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사람' 있어 더 아름다웠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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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람' 있어 더 아름다웠던 '제주'
  • 긴가민가 시민기자
  • 승인 2012.12.17 16: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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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여행기 - '끊어진 듯 이어진 우리네 삶' 깨달음의 시간

“그건 갔다 온 게 아니다”

십 오 육년 전 해외여행으로 일본에 다녀 올 때 제주도에 간 적(?)이 있다.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 김해공항의 기상사정으로 제주공항에 임시 착륙 했다가(국제선이라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세관이 있는 제주로 간 것이란다.) 다시 김해로 빙빙 돌아올 때의 일이다.

밖에 나가거나 창문을 열수도 없고, 날은 어두워 주변에 보이는 건 활주로의 빨간 점멸등뿐인 제주공항 활주로의 비행기 안에 약 2시간을 갇혀(?) 있었던 이 경우에 나는 제주도에 가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가을 7~8명이 모인 좌중에서 우연히 나온 토론 ‘나는 제주에 갔다 온 것인가’라는 주제에 ‘비행기가 갔으니 간 게 맞다’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았으니 간 것이 아니다’ 이런 논란 끝에 좌장격인 사람이 내린 결론이 위의 말 “그건 갔다 온 게 아니다”이다. 나도 동의 한다.

▲ 남한 최고봉 1950m 한라산 '백록담'
그러니 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한라산, 올레길, 삼다도, 신혼여행 인기 1순위 등등으로 유명한 그 좋다는 제주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촌놈인 셈이다. 문득 그 제주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사정상 하고 있던 일을 잠시 접어 시간상 여유도 있었지만, 삼천포항에서 제주로의 뱃길이 열린 것도 큰 작용을 했으리라. 평소 산을 좋아하는지라 초행이지만 조금 욕심을 내어 한라산 백록담에 갔다 오는 것으로 정했다. 성판악휴게소에서 백록담을 거처 관음사로 내려오는 코스(약 20km)다.

배에서 1박 제주서 1박의 일정이라, 간단한 배낭에 여벌의 티셔츠만 두어 벌 챙겨 11월 27일 밤 10시 30분 삼천포항에서 제주행배에 올랐다. 다음날 07시 20분 제주항 6부두에 도착하여 택시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선거의 열기는 여기서도 현수막으로 느끼게 해준다. ‘준비된 여성대통령!’ ‘사람이 먼저다!’.

터미널에서 성판악휴게소까지 버스로 약 30분 걸려 도착해 휴게소에서 우거지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9시20분에 산행 시작이다. 날씨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이 여행 이 산행에서 나는 누구이며 의미는 무엇일까, 왜 왔을까?’ 다소 철학적인 생각을 해보다 피식 웃는다. ‘그냥 가자!’

그런데 뭔가가 있기는 있었다. 신발 끈 한 번 더 묶고, 배낭 고리 걸고, 장갑 끼고 몇 걸음 걸었을까 할머니 한 분이 내려오시면서 나무지팡이를 내게 주신다. 평소 스틱은 거추장스러워 가지고 다니지 않는지라 ‘아 예에’ 멈칫하니 “젊은이 길 미끄러 지팡이 있어야제” 하며 내손에 쥐어주신다.

고마움의 시작이다. 태어나 처음 찾은 한라산에서 처음으로 말을 나눈 사람이 베푼 호의에, 지팡이가 좀 짧았지만 짚을수록 기분이 좋다. 속밭대피소에 오니 11시50분에 진달래대피소에서 백록담 산행을 통제한단다. 정상에 가고 싶으면 서둘러야 한다고 귀띔한다.

▲ 제주도 사라오름 산정호수
위로 오를수록 눈도 조금씩 내리고 길은 얼어있다. 게다가 아이젠도 안 챙겨 첫 방에 백록담 신령님 알현은 힘들겠다 싶어 발걸음을 늦춘다. 가다가 중간에 사라오름에도 가고. 웬 걸 진달래대피소에 오니 11시 47분이다. 내려오는 사람들 중엔 아이젠이 없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급히 점심대용으로 약간의 요깃거리와 음료를 사들고 정상을 향한다.

12시 58분, 백록담이다. 바람, 안개, 진눈깨비, 너무 춥다. 손이 너무 시려 할머니의 지팡이와는 아쉬운 이별이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한라산 정령님께 가슴속의 염원 몇 가지를 고요히 읍(揖)하고 관음사로 하산하여 오후4시 20분 관음사 휴게소 도착이다.

이제부터는 계획에 없는 일이다. 하기야 계획한다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상황에 따라 적절히 부딪히며 잠자고 먹고 움직이며 제주국제항 6부두에 가서 삼천포행 배를 타면 되는 거다. 그처럼 간단하다.

음.. 근데, 우선 버스정류장이 없다. 토.일, 공휴일에만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가까운 정류장은 3.5km를 걸어가야 있단다. 택시는 엄청 많다. 가까운 데는 안 간단다. 가더라도 미터요금이 아닌 다른 요금체계를 고집한다. 그래서 나는 걷기를 선택한다. 20km를 걸었고 또 시간도 급할 것 없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산길보다 못하지만 나름 아스팔트길도 반듯하고 잘 넘어지지 않는 장점도 있다.

700~800m 쯤 갔을 때 경적소리가 난다.

“어디까지 가세요? 산에서 걷느라 고생 했을 텐데 일단 타세요~!”

이어지는 고마운 소리.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분이다.

"예. 여기서 제일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갑니다."

차에서 간단하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간다. '등산코스는 어디였느냐?' '정류장에서는 어딜 갈 거냐?' '터미널에는 왜 가느냐?' 등등.

"예. 저는 집이 삼천폰데 터미널 가까운데서 자고 내일 택시 편으로 6부두로 갈려고 합니다."

"아니 왜 터미널로 가요?"

"왜냐하면 제주가 초행이라 길을 잘 몰라 그렇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 (시계를 보면서) 참 시간이 어중간하네."

나를 염려하고 도와주고자하나 시간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그냥 보인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버스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분 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 한라산 등산길 설경
어쨌건 그분의 안내대로 제주대정류장에서 500번 버스를 타고 동문시장으로 갔다. 물론 버스를 잘못 타 제주공항을 세 번이나 도는 등 우여곡절이 숨어 있다. 그러다 마지막엔 동문시장에 정확히 내려 시장구경을 하고 고생한 육체를 위해 삼계탕 집에 갔다.

삼계탕에 소주를 주문하니 어떤 소주 드릴 까요 한다. 순간 "좋은.."이라 말하다 ‘아차!' 싶어 말을 끊었다.

"아 뭐 아무거나 주세요 저 이동네 사람이 아니라서..."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삼천포라고 하니 자기도 전라도 광주에서 일하러 온지 열흘정도 되었고 삼계탕집주인이 이모뻘 친척이라고 소개한다. 그러곤 잠시 후 "오늘 단골손님이 직접 따온 건데 맛보라"며 음식과 함께 감귤 몇 개를 내 테이블에 내놓았다. 계속되는 고마움이다.

밥 먹다 어디서 잘까 생각하다 “해안가로 나가면 아담한 모텔도 많고, 00마트 옆에는 24시 사우나도 있으니 꼭 동문시장에서 내리세요”라며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셨던 아주머니 말씀을 떠올렸다. 하지만 배도 부르고 약간의 취기도 있어 근처모텔에서 자기로 한다. 계산하기 전 혹시 주위에 아는 모텔이나 여관소개를 부탁하니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린다. 사장님이 풍채가 좋으시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 뒤 직접 어딘가에 다녀오신 사장님이 "요 앞에 000모텔에 가세요. 원래 4~6만원 정도 하는데 3만5000원 하기로 했어요" 한다. 또 한 번 고맙다. 그래서 '밥값 거스름돈을 받지 말까' 생각하다 그냥 받았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고마움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이어질 인연이라면 언젠가 또 보겠지. 모텔방에서 밖을 보니 가게 상호가 보였다. 그것도 기억속에 담아 뒀다.

▲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서귀포시가지
글이 길어진다. 어쩌겠는가? 초행길에서 다양한 친절을 받고나면 손이 건질거리는 걸... 그것도 네 번씩이나 받은 고마움이라면. 어 세 번인데 한번은? 어딜 가나 빠르신 분들은 항상 있다.

이제 그 마지막 고마움이다. 피곤해서인가 아침생각이 없어 방에서 계속 뒹굴다가 부두로 향한다. 너무 일찍 왔다. 표를 타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땅히 갈 데가 없다. 아침 겸 점심으로 구내식당에 들러 시킨 순두부가 맛있다. 비싸지도 않다. 5,000원이다. 주인아주머니 인상이 편안하다. 그냥 앉아 있다 가란다. 밖에 나가면 춥다고. 별 말씀도 없으시다. 따뜻한 물 한잔을 가져오시며 편하게 TV보란다. 물은 셀프던데...

오후1시 정각, 출발이다. 배에 오른 승객이라야 고작 10명 남짓이다. 사람이 적어 장사가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던 특산물판매점 아주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이러다 이 뱃길도...' 괜한 걱정이 앞선다. 부두를 떠난 배는 망망대해로 나간다. 제주와 삼천포 중간쯤에 이르니 보이는 건 하늘과 바다 노을 그리고 수평선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시야를 한 곳에 고정시켰을 때 선으로 보였지만 전후좌우로 넓히자 하나의 원으로 보인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진 하나의 원. 우리 은하계가 있고 태양계가 있고 지구가 있고 60억 인구가 있고 또 내가 있는 모든 게 이어져 있는 하나의 커다란 원.

저녁 9시 도착예정이던 배가 나로호 발사로 20여 분 연착이다. 배의 뒷머리에서 배의 접안과정을 구경하느라 걸려온 전화를 놓쳤다. 확인하니 선후배 여럿이 읍에서 한 잔 하는 모양인데 올수 있으면 오란다. 한라산신령님이 주신 정기가 온 마음과 몸에 가득한데 어찌 마다 하겠는가? 술 몇 잔 한다고 도로 빼앗을까? 그렇다면 신령님이 아니니 문제될게 없고.

▲ 영화 '그랑블루'를 연상케 하는 삼천포와 제주도의 중간 망망대해
삼천포항은 정박항구와 여객 터미널이 떨어져 있어 셔틀버스(승합차)가 운행된다. 내 차가 여객터미널주차장에 있어 오르니 셔틀버스엔 50살 전후로 보이는 남자와 나 기사뿐이다.

“저 삼천포버스터미널 갈려면 여기서 멉니까?”

이제부터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성판악에서 출발할 때 혼자 잠깐 사색했던 이 여행의 의미가.

차에서 간단하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간다. '터미널에는 왜 가느냐?' '터미널에서는 어딜 갈 거냐?' '막차가 끊겼을 텐데 잠은 어디서 잘 거냐?' 등등. 얘기를 들어보니, 집은 제준데, 거제도에 일이 있어 비행기로 부산 가서 그기서 갈려고 했는데 어긋나 이 배를 탔고, 사천(삼천포)은 초행이란다. 아니, 불과 하루 전의 내 상황과 너무 똑같지 않은가?

나는 제주에서 받은 여러 가지 도움과  좋은 인상을 떠올리며 그와 비슷한 도움을 그분께 드렸다. 단 하나, 마지막에 난 그분을 찜질방으로 안내를 하고 헤어졌다. 왜냐하면 난 시간이 많았으니까.

망망대해를 보며 낮에 느꼈던 감정이 다시 떠오른다. 내가 제주도에 간 일, 그 시간에 그 코스를 선택하고 관음사에서 택시를 타지 않은 일, 차를 여객터미널에 둔 일, 비행기를 놓친 일(거제) 등등이 그래서 제주도 아주머니와 거제행 중년남자를 만난 이 모든 게 다 우연일까? 아니면 미리 정해진 대로 일어나는 필연일까? 기네스 펠트로우가 주연했던 '슬라이딩 도어즈'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 지하철을 탔더라면...타지 않았기 때문에...

▲ 삼천포로 돌아오는 선상에서 바라 본 노을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예언가, 신비가, 초능력자도 다 맞추지는 못하니 우연이건 필연이건 우리 앞에 있는 그 엄청난 가능성을 다 알아서 무얼 하겠는가?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모든 걸 결정하는 건 아닐까? 식물도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읽고, 감사와 사랑의 말을 받은 물은 아름다운 결정을 이룬다고 한다.

옛 성인들은 한 결 같이 말한다. 모든 것은 하나고, 이어져 있다고. 일상 속에서 흔히 있는 사소한 친절들을 침소봉대하고, 너무 감상적이지 않나 하는 비판도 있겠지만 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제대로 감상을 못했지만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다. 제주가 아름다운 건 비단 그 자연경관 뿐 아니라 사람이 있어 더 아름답다고...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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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2012-12-18 21:13:20
글을 읽고 나니 저도 제주도로 떠나고 싶네요..
지금도 한라산에 많은 눈이 쌓여 있겠죠.. 여행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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