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지역 담아내기 고민 11년째... “시민 가까이 가고 싶다”

극단 장자번덕 단원들이 3월말 무대에 올릴 작품을 연습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어려워 나라경제도 어렵다고 난리다. 비슷한 경제구조 속에 자치단체들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체질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들 말한다.

허나 체질 바꾸기가 말처럼 그리 쉬운가. 정부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녹색성장’이란 그럴 듯한 주제를 꺼냈지만 그 속은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성장 중심의 70,80년대식 토목사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천은 어떤가. 여전히 공장유치와 인구증가, 각종 개발을 통한 땅값 올리기가 주된 관심사인 듯 보인다. 다만 곳곳에서 큰 드러냄 없이 묵묵히 꽃을 피우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그나마 사천의 체질을 바꿔 나갈 불씨가 아닐까 싶다.

사천문화예술회관에서 3월말 선보일 작품 포스터
'문화도시 사천'을 위한 작은 불씨, 장자번덕

이런 불씨 가운데 하나가 궁지동 들판에서 자라고 있다. 사천에서 하나뿐인 극단 ‘장자번덕’(대표 이훈호)이 그 주인공이다.

장자번덕은 극단 현장(진주시 소재)에서 활동하던 이훈호/심봉석씨가 중심이 되어 1998년11월에 만든 연극단체다. 처음엔 곤명면 추천리 추동마을에서 비닐하우스 연습장으로 시작했다. 이후 사남면 초전리에 있는 사천예술촌(2001년11월)을 거쳐 2005년10월부터는 궁지동으로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상근 단원은 모두 8명이다. 연기뿐 아니라 의상 조명 무대 연출 등 1인 2역 3역씩 맡고 있다. 그 밖의 배우들은 작품에 따라 결합하는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장자번덕은 그 동안 ‘태’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하멸태자’ ‘너도 먹고 물러나라’ ‘하녀들’ ‘외디푸스’ ‘솟대쟁이의 후예’ ‘진주농민항쟁’ ‘봄날은 간다’ ‘세동무’ ‘날 보러 와요’ ‘레이디 멕베스’ 등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제23회 경남연극제에서 단체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수상경력이 빼곡할 만큼 이름을 떨치고 있다.

마음 넉넉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작업터

그러나 정작 사천시민들 가운데 장자번덕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극단 장자번덕을 찾았다. 단원들은 오는 3월30~31일에 사천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할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는 작품 준비로 요즘 한창 바쁘다. 연습을 앞둔 이훈호(45) 대표를 만났다.

궁지동에 있는 장자번덕 연습실

△장자번덕이란 이름이 예사롭지 않은데 무슨 뜻을 담고 있는가.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다. 창단할 때 공연장과 연습장이 있던 곳 지명을 본뜬 것인데, ‘큰 부자가 사는 동네의 높은 언덕’이란 뜻으로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작업터’라는 뜻을 담았다. 내 고향 근처 땅이름이다.

△이전에는 극단 현장에서 활동한 것으로 아는데 굳이 새 극단을 만든 이유가 있었을까?

=자식들이 커 부모 곁을 떠나듯 재금난 거다.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굳이 들자면 ‘우리 것’에 관심이 깊었다고나 할까. 딱히 이거다 하는 것은 없었지만 내용과 형식면에서 전통적인 요소를 접목시키고 싶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시작.. 사천예술촌은 인큐베이터"

△그런 뜻에도 불구하고 진주보다 규모가 작은 사천에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물론이다. 지금도 튼실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처음엔 할아버지댁에서 시작했다. 빈집을 고쳐 열 명 남짓한 단원들이 숙식을 함께 했다. 그리고 연습은 근처 ‘장자번디’로 불렸던 언덕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그곳에서 했다. 힘들었지만 꿈이 컸던 시기였다.

△사천예술촌에서 4년 간 머물렀는데, 굳이 나온 이유는?

장자번덕 이훈호 대표
=사천예술촌은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어 마음에 드는 곳이다. 그러나 예술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놓고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앞으로도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장자번덕에게 예술촌은 일종의 인큐베이터였다. 인큐베이터에 너무 오래 머물 순 없지 않은가.

△극단도 일종의 공동체다. 여럿이 생활하다보면 갈등도 많을 듯한데...

=사람 사는 곳에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특히 단원들이 대부분 합숙하고 있어 개인희생이 뒤따른다.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상당히 힘들다. 관계를 풀어가며 사회를 많이 배운다. 개인적으로 학문이나 종교 예술은 사회의 최후 보루여야 한다고 믿는다. 나뿐 아니라 다들 신념이 강하다보니 부러질 때가 많다.

"새로운 10년, 전통과 지역을 연극에 담아내고 싶다"

△창단한지 10년이 넘었다. 장자번덕,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건가.

=지난 10년, 아쉬움이 많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렇다고 지금 여건이 많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올해는 새로운 10년을 계획하는 해로 삼겠다. 좀 더 거리로 나가고 싶고, 경남을 벗어난 무대에 서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처음에 꿈꿨던, 전통적 요소를 연극에 담아내고 싶다. 올해 9월쯤 무대에 올릴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라는 작품에 남해안별신굿의 장단과 소리를 풀어낼 생각이다.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점이 있다면...

=제일 급한 게 작가다. 능력 있는 전속 작가가 없어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사천시민들과 더 자주, 더 가볍게 만날 기회를 갖고 싶어도 작가가 없어 힘들다. 함께 일할 작가를 찾고 있다.

△요즘 공연준비에 한창인데 이번 작품은 뭘 담고 있나.

=이 연극은 저마다 큰 상처를 가슴 깊숙한 곳에 자물쇠로 채워둔 채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열쇠로 그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사람 냄새나는 극이다. 호화로운 압구정이 건너다보이는 옥수동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얘기라고나 할까. 올해 경남연극제에도 출품할 예정이다.

궁지동 들판 한 가운데 자리잡은 장자번덕 연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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