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기보다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

Our greatest glory consist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 -Oliver Goldsmith

우리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에 있다. -Oliver Goldsmith

 

평생 성공가도만을 달린 사람의 자서전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자랑만으로 충고하는 사람만큼 먹혀들지 않는 충고도 없을 것이다.

목이 뻣뻣한 사람의 기도만큼 신과 사람을 동시에 지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실패를 찾아다니며 그것을 즐기는 사람 또한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렇다먼 고통과 실패, 그리고 성공과 영광의 상관관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꿈의 역할이라 부르고 싶다.

청소년 시절 누구나 한 번 쯤 읽어보았을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떠올려 본다.

주위의 모든 갈매기들이 해질녘 고깃배를 배회하며 생선 조각을 뜯어 먹고자 안달할 때,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라는 갈매기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날개와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비행에 미쳐 있었다.

아니, 모든 갈매기들이 그를 미쳤다고 규정했다고 함이 더 정확하겠다.

꿈이 없는 갈매기에게 날개는 하루 하루를 힘들게 넘기게 하는 수단이었지만, 꿈이 있는 갈매기에게는 부딫히고, 깨어지는 고통을 감래해야 하지만 현실의 한계를 벗아날 수 있는 말 그대로 꿈의 날개가 되었다.


분명 하루 하루를 현실의 시련을 이겨내는 성실한 사람들이 있고, 하루 종일 꿈만 꾸는 몽상가들도 있다.

극히 유익한 사람과 무익한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다.

세상에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대 전제가 있으니 그들 모두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들 모두가 오늘 하루를, 그리고 모든 하루 하루를 자신이 선택한 길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거나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절대적이지만 선택 자체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선택은 다를 수 있고 자신의 선택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강요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자랑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위대한 영광을 획득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제 우리의 시각, 사회의 시각이겠다.

역경의 극복을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부와 권력을- 그것을 유산으로 받았던 타인에게서 강탈하였든 간에- 최고로 여기고 있는가 되돌아 보아야 할 때이다.

사람을 각 개인으로 쪼개어 놓으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자리매김할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절망할 수도 있다.


말로만 역경을 이긴 사람을 칭찬하고, 관념적으로만 실패를 극복한 이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을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존경의 표현은 자녀에서 또 자녀로 전해지는 삶의 모범이어야지 부와 권력으로 포장된다면 그 가치는 희석될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들은 그 시대 권력자들의 동상이 아니라 진심과 정열이 담긴 한 편의 그림과 노래, 싯귀와 이야기들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 꿈은 천 년을 넘어 다음 세대에게 살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넘어졌음에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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