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대로 세계일주]19. 가이드북에는 빠진 칠레 푸콘과 아타카마

여행 중 생각지 않았던 보석 같은 장소를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유럽에선 이탈리아 남부 프레이나노에서 포지타노에 이르는 ‘신들의 산책로’와 고즈넉한 중세도시 ‘아레조’와 ‘페루지아’가 그러했다면 남미에선 칠레의 온천 도시 푸콘(Pucon)과 아타카마 사막이 대표적인 그러한 곳이었다.

당시만 해도 가이드북에 의지해서 다니던 내가 푸콘에 간 이유는 온천 때문이었다. 온천은 노인네들이 가는 곳이라 가기 싫다는 소담/유진, 석민/석재를 먼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보내고, 30대인 현선부부와 나만 온천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놀랐다.
이렇게 훌륭한 휴양지가 가이드북에 빠졌다는 사실에.

▲ 칠레 중부에 위치한 휴양도시 푸콘.
칠레에서도 유명한 레저 관광도시인 이곳은 활화산이 있어 갖가지 트레킹 코스와 온천, 래프팅이 가능한 장소였고, 거기에 화산재가 날아와 만들어진 검은 모래로 가득한 호수가로 유명한 곳이었다.

후지산을 닮은 푸콘의 상징이자 지구상에 5개 밖에 없다는 용암을 머금은 활화산인 ‘비야리카’ 화산을 내내 바라보며, 카지노까지 있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아기자기한 푸콘 시내를 구경하다가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온천 찾아간다고 늙었단 구박은 받았을지언정 온몸을 노근하게 만드는 행복감에 다시금 '이게 여행의 묘미'임을 깨닫게 해 준 도시 '푸~콘'.

그리고 또 하나의 보석 같은 장소는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자 칠레 북부 해발 2500미터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메마른 사막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

약 2천만년 동안 건조한 상태를 유지했다는데 매년 평균 강수량이 0.01cm도 되지 않고, 사막의 어떤 지역은 400년 이상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은 곳도 있단다.

그 열악하고 삭막한 환경 덕분에 달과 유사한 조건을 갖춰 우주인들의 훈련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고, 고비, 사하라 등과 함께 세계 4대 사막 마라톤 중 하나인 '아타카마 크로싱'이 개최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우유니 투어 전 잠깐 머물기 위해 이곳에 들른다.

칠레의 남쪽 끝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부터 ‘토레스 델 파이네’까지의 죽음의 트래킹을 함께 감행했던 우리 또한 최소 12시간에서 최장 35시간 정도의 버스 타기를 통해 국토 모양이 길쭉한 칠레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여러 도시를 이동한 끝에 이곳에 왔다. 오직 우유니 투어를 위해.

이미 한차례 지독한 훈련(?)의 기억이 생생한지라 바로 투어에 참여 하기보다는 체력도 정비하고 지친 마음도 달랠 겸 사막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자고 의기투합한 우리들이 결정한 것은 ‘자전거 타고 사막 누비기’와 ‘샌드 보드’ 타기!

▲ 푸콘에서는 설원 트래킹과 온천, 래프팅, 요트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이타카마 사막에서 자전거를 타고, 샌드 보딩 등 다양한 레포츠 활동을 할 수 있다.
물론 샌드 보드를 할 수 있는 투어도 있었지만 구성원상 대학생이 많았기에 그들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지프니를 타고 해당 장소에가 샌드보드만 타면 되는 투어 대신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전거와 보드를 렌트하고, 자전거 뒤에 보드를 실어 사막 구경도 하면서 보딩을 할 수 있는 모래언덕까지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보드와 식수 등의 짐은 남자들이 나르기로 하고 다들 씩씩하게 페달을 밞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이와 부딪힐까 조심하며 낮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사막하면 떠오르는 고운 모래가 깔린 사막이 아닌 거친 흙과 돌이 깔린 사막이 보였다.

확 트인 대지를 8대의 자전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막힘없이 달리니 30여 년간 알게 모르게 쌓인 응어리까지 다 날려 버리듯 시원했다.

드디어 도착한 보딩 장소인 모래 언덕. 스키장과 달리 리프트가 없기에 보드를 들고 언덕 위에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근데 ‘푹푹’발이 빠지는 언덕을 오르기가 쉽지 않다.
숨이 꼴딱 넘어갈 즈음 도착한 언덕 위에서 아래를 보니 두려운 생각에 가슴이 살짝 뛴다.

▲ 잠시 스쳐지나 가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사막 이타카마.
하지만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냥 내려갈 수 없다는 생각에 보드를 신고 출발~!

그런데 눈과 다르게 속도가 빠르지 않다.
거기다 느린 속도로 넘어지니 아프지도 않고.

맘 같아서는 질리도록 타고 싶지만
언덕을 두어 번 오르내리니 다리가 아파 종일 타는 건 포기하고 다시 복귀할 채비를 했다. 이럴 땐 문명의 이기가 그립다.
리프트만 있어도 신나게 계속 탈 텐데…….

처음으로 한 사막에서의 자전거 타기와 샌드 보딩이 너무 재미있어 행복한 마음에 “나 자전거 타기 정말 두려웠는데, 해보니 할 만하네”라고 말했더니
우리의 식수 당번이 한마디 했다.

“누나, 4리터의 물 한번 들고 자전거 타 보세요. 할 만하다는 소리가 나오는지". "저 지금 완전 다리가 후들거려요.” 라며 장난스런 울상을 지어 보여 다들 한바탕 웃었다.

물론 그 웃음은 온통 울퉁불퉁한 돌로 가득한 언덕을 자전거 타고 내려오면서 어느새 없어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 잠시 스쳐지나가기엔 너무나 매력이 넘치는 도시, 아타카마!
자전거를 빌려 사막을 달려 보지 않았으면 결코 그 맛이 어떠한지 알지 못했을 것이고, 또한 말로만 듣던 샌드보드를 타 보면 결코 중간에 잠시 들러 가는 도시라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 사막 도시의 밤은 생각보다 외롭지 않다. 낮의 샌드보딩과 자전거 타기로 지친 몸을 식혀 줄 시원한 마실거리들(?)이 있기에.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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