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의 오솔길>영화 토탈리콜 리뷰

분명한 결말을 향해가는 과정을 다양한 액션과 막대한 물량을 투자해 관객에게 재미있게 제공하겠다는 감독 및 제작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영화 중간 중간 개운치 못한 장면과 더불어 영화가 보여주려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왔다.

▲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퀘이드의 뒷 모습

식민지

영화는 미래세계가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가정한다. 지배 피지배의 관계에 있는 두 세계를 감독은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우울한 디스토피아의 콜로니와 밝고 환하며 놀라운 문명의 세계인 브리튼연방의 세계가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대비된다. 콜로니의 음울함은 비까지 내리니 그 효과는 배가되는데 이 비 내리는 장치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묘사로서 상당히 유효해 보이는 대목이다.

브리튼연방의 문명세계는 어디에선가 본 장면처럼 익숙했는데 아마 많은 미래 영화의 장면들이 이와 유사한 특징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의 묘사는 흡사 아시아의 어느 장소처럼 보이고 여기저기서 보이는 광고판에 한글마저 보이는데 이 좋지 못한 구성은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몰라도 아시아에 사는 사람으로서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포스터.
기억

인간의 기억을 약간 조작할 수 있다는 입장은 현대과학도 거의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완전한 기억의 교체 또는 이식에 대해서는 과학 이전에 인간 본성의 측면에서 회의적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콜린 파렐(퀘이드, 하우저 역)의 기억의 조작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전제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완전히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기억의 저편에 존재하는 학습과 훈련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자가당착적인 상황을 연출하지만 이런 영화에서 그 모든 논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닌가?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은 훈련인가? 아니면 기억인가? 여전히 알 수 없다.

미래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시공간인 미래는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이자 동시에 그 상상력의 힘으로 점차 현실이 되는 시공간이다. 미래가 주는 영감은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는데 그런 영향으로 창조된 가상의 시공간은 변증법적으로 사실인 과학의 발전을 자극하게 된다.

기억의 저장과 제거, 치환은 오래된 SF영역이었는데 이제는 픽션이 아니라 실제의 사건으로 또는 현실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 되고 만 것을 보면 상상력은 이제 실존, 즉 현실의 근거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언제나 쓰고 있는 컴퓨터라는 기계적 장치가 인간으로 치환되기만 하면 이 영화의 상상은 상상으로부터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인물

퀘이드의 부인으로 나오는 로리(케이트 베킨세일 분)는 언더월드 시리즈 이후 몇 편의 영화에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전사적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의 저돌적 살인의지는 요령부득이다.

멜리나(제시카 비엘 분) 역시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와 같이 전사 이미지를 유지한다. 이 영화에서도 그녀는 전사이어야 하고 또 전사답게 싸우지만 연기라고 할 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 스스로 영화에 묻혀버리는 느낌마저 준다.

그러면 주인공인 퀘이드(콜린 파렐 분)는 어떤가? 그는 이전의 영화, 즉 “마이애미 바이스”나 “리크루트”에서 보여준 이미지를 유지하고 그 위에 새로운 인물의 이미지를 나타내려 노력한다. 디스토피아를 사는 우울한 노동자의 일상과 세상으로부터, 아내로부터 약간은 소외되어버린 인물의 느낌을 보여주려 하지만 그 뒤의 액션활극이 너무나 장황해서 앞부분의 노력이 날아가 버리고 결국은 개성 없는 액션배우로 영화를 끝내고 있다.
 

▲ 너무자 철학적인 반군지도자

정치드라마? SF?

콜로니의 반군 수장 마티아스(빌 나이 분)는 브리튼연합을 상대해서 싸움을 이끄는 리더의 이미지보다는 철학자다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물론 감독의 의도였겠지만 약간은 뜨악했다. 심지어 그는 이런 대사를 자신을 찾아 온 퀘이드에게 날린다.

 “과거는 허상일 뿐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찾게!”

액션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철학이 약간은 생소한 것을 보면 역시 어울리지 않는 영화인가?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대단히 정치적이다. 브리튼 연합이 계획하는 자본가적 망상, 즉 콜로니를 완전히 쓸어버리고 거기에 새로운 저들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그들의 계획을 박살내는 주인공의 액션은 매우 정치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초반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서 강대국, 그리고 자본으로 무장한 그들의 권력과 그들이 항상 제압하려는 자유의지를 가진 노동자와의 관계를 그대로 영화적 묘사로 옮겨 놓은 듯하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를 액션과 SF를 가장한 정치 드라마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런 냄새만 풍기고 있는 단순한 물량공세의 활극인가?
 

토탈리콜1990

그 시절 이 영화는 획기적인 소재였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만들어진 이 영화의 얼개를 그대로 가져온 2012년 토탈리콜은 그 시절의 참신함은 없다. 단지 진보된 영화기술이 있을 뿐이고 좀 더 안락한 극장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인 나는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시절의 세상도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암시하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상상이 유효한 것을 보면 세상은 나아지기보다는 조금씩 나빠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그것이다.

<김 선생의 오솔길>은 현현적적 시민기자가 클래식 평론, 영화 평론, 책 평론 등으로 세상읽기를 하는 공간입니다. 현현적적은 곤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준식 교사의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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