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절제된 양념이 신선한 해산물 특유의 맛 살려

▲ 지독한 찜통더위속에서 재밌게도 이번 맛집기행은 찜요리집인 '향나무집식당'을 찾아나섰다.
수십 년 만에 덮쳐온 폭염이다. 낮에는 불볕더위 밤에는 열대야다. 그것도 십 수 일 동안이나 연일 계속 중이다.
 
지독한 더위를 찜통더위라고 하는데 하필이면 찜통에서 찜을 한 찜요리 집을 취재해야 한단다. 각종 요리에 정통하고 사천 지역 맛집을 뚜르르 꿰고 있는 우리 신문사 맛집 선정위원장이 지난주에 일찌감치 선정해 놓았기에 할 수 없다.

하긴 지난주에도 무더위는 한창이었다. 설마 선정위원장이 맛집 시식위원들을 괴롭히려고 찜집을 선정 하였으랴?

더위 속에서 허위허위 ‘향나무집’ 식당을 찾아 나섰다.

▲ 향나무집은 일반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가정집에서 그대로 가족들이 힘을 모아 식당을 운영해 오고 있다.
‘향나무집’은 사천 문화예술회관 근처 주택가 골목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다. 주택을 약간 개조한 집이다. 간판이 없다면 일반 가정집들과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집에 들어가니 그냥 일반 가정집이다. 다만 방마다 식탁들이 놓여있고 손님들이 꽉 차 있을 뿐이다. 무더위와 찜요리는 별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예약된 방에 들어가니 학을 형상화한 늘씬한 하얀 석고상이 얹혀 있고 구석 자리에는 화초가 놓여있다. 절제된 소품 배치에서 집주인의 미적 감각이 엿보인다. 이 집에 들어선 순간의 느낌은? 그렇다 ‘잔치 집’분위기였다.

잔치에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주인은 집을 우선 정갈히 청소하고 장식 소품들을 내 놓아 한껏 멋을 내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김희자 사장(59세)은 예술가의 느낌을 준다. 25년 전 바로 이 가정집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어구이 백반’을 했다. 그 다음에는 삼천포에서는 처음으로 ‘돌솥밥’을 내 놓았다. 그러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3년 정도 쉬었다. 그런데 자꾸 찾아오는 단골들의 등살에 못 이겨 다시 식당을 열었는데 바로 지금의 ‘해물찜’이다.

“식당의 메뉴가 크게 세 번 바뀌었네요? 장어구이에서 돌솥밥을 거쳐 해물찜으로 왔네요. 해물찜으로 메뉴를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요?”

“단골손님들이 자꾸 와서 식당을 언제 다시 여느냐고 채근을 해서 다시 열었지요. 그런데 좀 꾀를 냈어요. 해물 찜으로 바꾸면 정식이나 백반 보다 반찬 가지 수를 적게 낼 수 있겠다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손이 가는 것은 마찬가지더라고요.”

▲ 갓 주방에서 나온 사람 같지 않게 김희자 사장은 예술가의 느낌이 풍기기도 했다.
하면서 한숨을 쉰다. 그러고 보니 야채샐러드, 모둠 야채 장아찌 같은 밑반찬들에서 집주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한 결 같이 정갈하고 맛도 깔끔하다.

“맛이 과히 맵지도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나네요. 음식 솜씨가 좋네요.”

“솜씨는 무슨. 다 그게 그것이죠. 다만 우리 집에서 써는 재료는 모두 살아있는 것들이거나 싱싱하죠. 재료가 좋으면 맛이 나요.”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아무래도 재료비가 많이 들겠죠? 그래도 운영이 잘 되나요?”

“우선 우리 집에서 하니, 임대료가 없고 일손들도 다 우리 식구들이에요. 내 딸들이 도와주어요. 그러니 그냥 운영되는 것이겠죠.”

사천, 진주 지역에는 영세 사업자들의 영업 이익대비 임대료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내 집 없는 영세업자들이 살아남기가 힘들다. 그런데 요즈음 정치권에서는 ‘공천 장사’ 건으로 시끄럽다. 수억 원을 주고받고 국회의원 배지를 샀다는 것이 의혹의 요지이다. 공천 혁신이라고 자랑한 게 무색하게 되었다, 이런 자들에게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이래저래 서민들은 더 덥기만하다,

▲ 주인장의 손끝이 느껴지는 화분과 소품들이 식당 곳곳을 꾸미고 있었다.
주문한 해물찜과 명태찜이 나왔는데 우선 접시가 엄청 크다. 눈대중으로 짚어보니 직경이 50cm는 족히 된다. 그 큰 접시 위에 입체적으로 듬뿍 얹혀 나오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해물찜에는 큰 오징어가 주인 격으로 떡하니 자리 잡았고 그 밑으로 가리비, 새우, 조개, 게, 미더덕, 갑오징어 같은 여러 해물들이 콩나물 미나리 등과 엉켜 맛깔나게 찜이 되어있다.

동태찜이나 해물찜이나 찜을 할 때 사용하는 양념은 같은 것으로 사용하는데 마치 다른 양념을 사용하는 것 마냥 사뭇 다른 맛을 낸다. 그것은 해물이 갖는 고유의 맛이 우러나와서이고 양념이 재료 자체의 맛을 압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양념이란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재료 원래의 맛을 살리는 것이 최상인 법이다. 강한 맛을 내야하는 찜요리에 이런 양념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삼천포에서 꽤나 맛있고 오래된 집으로 소문난 '향나무집'은 해물찜, 동태찜과 꽃게찜이 주 메뉴다. 반찬으로 나온 야채샐러드와 물김치, 야채피클이 매운찜으로 얼얼한 입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삼천포 토박이인 김 사장과 관세사로 일하는 바깥양반과의 슬하에 딸을 셋 두었다.
부엌에서도 일을 하는 딸이 있고 식당에서 상차림을 하는 딸도 있다. 인공미가 가미 되지 않은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지녔다. 어머니의 미모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가업을 모녀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이 보기도 좋고 행복해 보인다.

가벼운 봉투를 들고 잔치 집을 찾았다가 예상 밖의 환대와 후한 대접을 받은 기분으로 ‘향나무집’을 나섰다.

열대야의 열기는 아직 그대로 찜통더위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