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사처니언]리비아와 시리아 사태를 보는 또 다른 시각

시리아 국기
국제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접하는 현대의 비극 중 하나가 있다.

정부가 자신의 시민을 탱크로 로켓으로, 심지어는 전투기와 전투 저공비행 헬리콥터로 폭격하는 시리아의 소식이 그것이다.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코피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특사로 시리아 정부와 휴전을 협상하고 있는 것도 꽤 오래되었고, 유엔의 감독관들이 시리아에 입국하여 감시활동을 시작했지만 생명의 위협때문에 그 활동을 중단한 것도 오래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언론 매체와 각 기관에서 이 현대의 참극을 방치하고 있는 각 정부들에 대해서 매일같이 비난의 기사를 올리고 있다.

시리아 정부를 지지하는 듯 보이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몇몇 국가에 대한 비난도 높아 지고 있다.

그럼에도 시리아의 사태를 리비아와 동일하게 볼 수 없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리비아와는 달리 시리아에는 조직된 실체가 있는 반군의 존재가 없다는 점이 있겠다.

그래서 시리아 정부가 모든 유혈 사태의 책임을 서방 세계의 도움을 받는 소수의 테러리스트에게 돌리도록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태를 보는 인권적 관점과 서방의 매체에 의한 정보는 충분히 여러 가지 경로로 접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른 정보를 한 번 접해보자.

필자가 참고한 사이트는 뉴욕타임즈의 글로벌 어디션 오피니언 파트의 최근 기사이다.
( http://www.nytimes.com/2012/07/07/opinion/why-russia-supports-syria.html?partner=rssnyt&emc=rss)

이 기사가 러시아와의 관계에만 한정되었기에 중동문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의 하나인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와의 관계 등은 다루어 지지 않았기에 그 부분은 이후에 꼭 다루어 보았으면 한다.

아래 내용은 위 기사를 번역하여 요약한 것이다.


러시아가 시리아를 지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가장 쉬운 진단은 시리아가 러시아 무기의 가장 좋은 소비시장의 하나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러시아는 시리아의 무기시장에 그리 기대고 있지 않으며 계약에의해 양도하기로 한 미그 전투기도 수출을 하지 않고 있는 형편이며 다른 무기들도 다른 경로로 충분히 소비시킬 수 있다.

근본적으로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가 리비아에서의 경우와 같이 외부의 개입에 의해서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푸틴에게 있어서 시리아는 구 소비에트 연합의 그늘에서 볼 때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중동의 포스트인 셈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에게는 넥타이를 한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 중의 누군가가 권력을 장악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중동의 봄을 거친 다른 나라들을 볼 때 넥타이를 하지 않은 세력이 모두가 정권을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만으로는 러시아를 다른 서방 정부들과 다른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거부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중동의 변화에 대한 대처를 연합된 외부의 세력의 개입으로 하결하는 점, 리비아에서와 같이 그것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만장일치를 위배하면서도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점이 러시아가 국제사회라 일컬어지는 세력에 의한 역할이 이중의 잣대를 가진다고, 그럼으로 그 의도가 가식적이라고 말하는 근거가 된다.

물론 러시아에서 푸틴 자신의 지배적 역할을 유지하는 것과 시리아의 아사드가 정권을 지키는 것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념적인 연정은 이차적인 문제일 뿐, 푸틴은 전통적으로 러시아가 서방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아사드에 대한 지지가 이슬람에 기초한 시리아의 혁명이, 특별히 그것이 서방과 아랍 세계의 지지에 근거하는 것이 러시아의 장기적인 국익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것이라는 우려하고 있다.

위의 내용을 통해 러시아와 시리아의 관계, 그리고 서방과 아랍 세력이 그 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힘의 안배가 시리아 국민의 무고한 희생을 계속 악화시키는 것을 방치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국제관계에 의해 무고한 희생을 치르는 국민의 심정을 우리 민족만큼 고통스럽게 겪은 민족도 없을테니 이런 비참한 상황을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 없는 것도 우리들이다.

아무리 국제관계가 복잡 미묘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국민을 그토록 잔혹한 죽음으로 내모는 지도자에 대해서는 결코 동정할 수 없다는 점, 그런 지도자를 우리 스스로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점 정도가 지금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닐런지 생각해 본다.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이 직접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을 한 번 쯤 돌아보는 것도 우리의 할 일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게 된다.

넓게 바라보고 가까이서부터 실천하는 시민이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시간이 갈 수록 이전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지구 상의 머나먼 곳의 사건이 우리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한 쪽으로만 편향된 정보를 지양하고 각 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

강원도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 곳의 사건을 무시하고 살지는 않듯이,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야 할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도, 인류애라는 멀기만 하던 이상을 실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한 실천은 가까운 곳의 사건들을 접할 때에도 우리의 태도가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는 훌륭한 수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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