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댐 방류 피해 보상하라”.. 수자공 “재판에서 이겨라”

▲ 사천만 어민들이 남강댐 방류에 따른 피해보상을 해달라며 한국수자원공사 앞에서 한 달 넘게 농성 중이다. 6월 27일 모습.
“양식고기 다 죽이고, 양식어민 다 죽인다!”
“어민들의 법원경매, 파산을 즉시 해결하라!”
“어민들을 우롱하는 남강댐을 폭파하라!”

지난 6월 27일, 대전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본사 입구에서 사천시 소속 가두리양식 어민들이 외쳤던 절규다. 이들의 절규는 이보다 훨씬 전인 5월 31일부터 시작해 7월에 접어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어민 김성진 씨는 7월 6일 현재 단식 37일째다. 의료진이 김 씨의 건강을 수시로 살피고 있지만 단식이 길어지면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김 씨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긴 한 가지”라며, 어떠한 사태 진전이 있기 전까지는 수자원공사 앞 단식농성을 풀지 않을 태세다. 다른 어민들 역시 생업을 마다하고 일주일에 2~3일씩 농성장을 찾아 수자원공사를 향해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목숨을 건 이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수자원공사의 태도는 단호하기만 하다. 어민들의 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딱히 내놓을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 여성 어민들이 소복을 입은 채 수자원공사 정문에서 시위 중이다.
언론 역시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중앙언론이든 지역언론이든, 신문이든 방송이든, 사천만 어민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언론은 극히 드물다.

지극히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어민들.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수자원공사 앞에서 목 놓아 외치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요구사항은 무엇일까?

사천만의 비극, 남강댐과 인공방류구 '제수문'

사천만 어민들의 비극은 40~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1962년, 용수공급과 전력생산 등 다양한 목적을 내세우며 남강댐건설사업을 시작한다.

서부경남 최대도시라 할 진주시 도심의 머리맡에 짓는 이 남강댐은 지리산을 품은 산청군과 함양군을 주요 유역으로 삼고 있다. 이들 지역은 지리적 특성상 강수량이 많고, 특히 여름철 집중호우가 심한 곳이다.

따라서 다목적댐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전제돼야 할 것이 있었으니, 바로 홍수조절기능이다. 그런데 남강댐에서 흘러나온 물은 머지않아 낙동강과 만나게 되고, 그곳 역시 수시로 범람위기를 맞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새로운 대책이 필요했다.

▲ 오늘날 사천만의 비극을 낳고 있는 남강댐 제수문. 제수문이 열릴 때마다 사천만은 바닷물이 곧 민물로 변한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남강댐 ‘제수문’이다. 제수문은 남강댐의 홍수조절을 위해 사천만쪽으로 낸 인공방류구다. 이 과정에 가지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의 허리가 잘려나갔다.

제수문을 빠져 나온 물은 11km의 인공 물길을 따라 사천만으로 곧장 빠져나가도록 설계됐다. 당시에도 유일했지만 지금도 국내에서 유일한 ‘댐에서 바다로 향하는 인공방류구’의 탄생이다.

9년간의 공사 끝에 1970년 남강댐이 준공한다. 하지만 함께 태어난 남강댐 인공방류구는 경남에서 최대 갯벌을 자랑하는 사천만에 치명적인 상처를 줬다. 여름철만 되면 제수문이 열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사천만은 심한 몸살을 앓았던 것이다.

남강 본류보다는 사천만으로 내보내는 물이 훨씬 더 많았던 탓에, 사천만은 염도가 0인 상태로 며칠씩 이어지곤 했다. 이는 곧 바닷물이 민물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백합과 바지락 등 조개류가 떼죽음 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 사천만이 남해안 어류들에겐 산란장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어린 물고기들에게도 치명상을 입혔다. 그 대신 민물에 사는 잉어와 붕어, 메기와 쏘가리가 그물에 걸려 올라 왔으니, 사천만이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헤아릴 수 있음이다.

▲ 남강댐 방류로 인해 폐사한 물고기들. 사천시 사진제공.
물론 이런 사천만의 비운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그래서 정부는 남강댐 준공 직전인 1969년부터 이태에 걸쳐 어민들에게 보상을 해줬다. 면허어업권자에게는 피해액 전액(2억6018만원)을, 면허실효권자에게도 피해액 전액(2591만원)을, 그리고 무면허어업권자에게는 피해액의 1/3에 해당하는 금액(1억2844만원)을 보상한 것이다.

따라서 얼핏 보면 정부는 사천만 어민들에게 해야 할 도리를 다했고, 지금 어민들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억울한 사정도 헤아려진다. 수자원공사 앞 농성을 이끌고 있는 사천시어류양식협의회 심부택 회장은 “남강댐 방류로 인해 실제로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방류피해로 양식어민 대부분은 파산지경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수자원공사가)보상 책임이 없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하소연했다.

농성장에서 만난 대다수 어민들은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십 수억 원까지 빚을 지고 있었다. 새끼물고기를 어장에 넣어 어떤 것은 1년, 경우에 따라 2~3년을 길러야 출하할 수 있는데, 남강댐 방류로 물고기가 떼죽음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그러다보니 지금은 빚만 쌓여, 치어를 공급하는 회사에서도 물고기의 사료를 공급하는 회사에서도 납품을 꺼린다고 한다. 그래서 어장을 아예 비워 놓거나 겨우 절반쯤 채우고 있는 정도다.

▲ 빚이 쌓여 치어와 사료 마저 제때 공급 받지 못하는 어민들은 어장의 상당부분을 놀리고 있다. 사천만의 텅 빈 한 어장.
그 가운데 일부 어민들은 채무가 한계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경우가 단식농성 중인 김성진 씨. 가두리양식장 1.8헥타르를 16년간 경영하면서 16억여 원의 빚을 졌다. 그 결과 지난 6월부터 어업권 2건, 선박 3척, 논밭과 임야, 그리고 주택까지 경매에 올라 7월 6일 현재 부동산 4건이 남의 손에 넘어갔다.

농성장에서 만난 어민들은 조만간 너도나도 김 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며 대책을 호소했다.

86년부터 가두리양식업을 시작했다는 김정경 씨는 “남강댐 방류로 12번이나 피해를 입었고 빚이 8억 넘게 쌓였다. 그런데도 수자원공사에서는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만 한다. 이 억울한 심정을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하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25년째 가두리양식업을 한다는 황종주 씨도 “피해가 없는 것을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닌데, 사장이라는 사람이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는다.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 것이다”라며 분노했다.

“남강 하류 주민만 중요하고 사천만 어민들은 죽어도 되는가”

어민들과 수자원공사의 갈등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2002년 상황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해 여름 태풍 루사가 남해안을 강타했다. 기록적인 폭우를 동반했던 루사의 영향으로 수자원공사는 제수문을 통해 사천만으로 최대 초당 5430톤(부피단위 ㎥를 써야 하지만 편의상 ‘톤’으로 표기함)을 방류한다.

이로 인해 사천만은 ‘염도0’ 상태가 며칠간 이어져 가두리양식장의 피해액이 사천시 추산 68억 원 발생했다. 굴, 바지락 등 패류를 포함하면 피해액은 이보다 훨씬 컸다. 당시 어민들은 재해에 따른 피해보상을 어느 정도 받았지만 전체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 어민 김성진 씨는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수자원공사 앞에서 37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6월 27일 단식 28일째 모습.
이에 어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정부와 수자원공사를 향해 “남강과 낙동강 하류 주민만 중요하고 사천만 어민들은 모두 죽어도 되느냐”라며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민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남강댐 사천만 방류가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기로 양자가 합의했다.

태풍 루사 이후 2003년 매미, 2006년 에위니아가 불어 닥쳤을 때도 사천만은 남강댐 방류로 인해 큰 고통을 치러야 했다. 어민들은 남강댐 방류에 반대하며 제수문 아래에서 배를 타고 시위를 벌이기도 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드디어 2008년 11월. 사천만 피해어민들과 수자원공사가 합의해 시작한 ‘남강댐 방류로 인한 사천만 해양환경영향과 어장의 경제성 평가’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200년 빈도의 홍수 발생 시 초당 3250톤의 물을 74.5시간 지속해 방류할 경우 사천시에만 98억 원의 피해를 낳고, 사천만을 함께 끼고 있는 남해군에는 140억 원, 하동군에는 17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사천과 남해, 하동 어민들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수자원공사에 적절한 피해보상을 다시 한 번 요구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피해보상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에 따라 어민들은 2009년 들어 지역별, 어업종목별로 나뉘어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모두 6건의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어민들이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2012년 7월 현재 제기된 6건의 소송 가운데 3건은 수사원공사의 승소로 매듭지어졌고, 나머지 3건도 수자원공사가 유리한 가운데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사천만 가두리양식 어민 김정경 씨. 그동안 12회에 걸쳐 댐 방류 피해를 입었다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재판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소송을 제기한 사천만 피해어민들은 분통해하면서도 의기소침해졌다. 그럼에도 가두리양식 어민들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만큼 처한 상황이 다급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에 차 있음이다.

어민들, 피해보상 요구 자격 ‘있다?’ ‘없다?’

이쯤에서 양식어민들과 수자원공사가 다투고 있는 진실공방을 살펴보자. 양측 다툼에서 가장 핵심은 ‘어민들이 피해보상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들 어민들은 남강댐보강공사가 이뤄진 뒤 실질적인 방류 피해가 발생한 1998년 이후의 어업피해에 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관해 수자원공사는 “1970년 무렵에 이미 피해에 대한 소멸보상이 이뤄졌으므로 어민들이 더 이상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1970년 이후에 어업면허를 새로이 취득했다 하더라도 지자체가 ‘남강댐 방류로 인한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부관을 붙여 여기에 동의한 경우에만 어업면허를 내준 것이므로, 피해보상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강조한다.

수자원공사의 이런 주장을 사법부도 그대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부산고등법원은 지난해 이 사건의 항소심에서 수자원공사의 손을 들어 줬다.

반면 어민들은 이를 반박한다. 먼저 어떤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보상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한 부관이 원천무효라고 주장한다. “어업제한구역으로 지정된 곳에만 부관이 설정되어야 함에도 제한구역 바깥까지 부관을 붙여 어업을 제한한 것은 과도한 행정행위”라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 가두리양식 어민들이 어업면허 취득 시 사천시가 제시한 부관. 현재로선 이 부관이 굴레로 작용하고 있으나 어민들은 '효력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부관(附款)이란 ‘법률행위의 효력의 발생 또는 소멸을 제한하기 위하여 부가되는 약관(約款)’을 일컫는 것으로, 경상남도는 1973년부터 ‘남강댐 방수로 인한 부분피해지구 어업면허처분지침’을 통해 어업면허 허가 시 앞서 언급한 내용의 부관을 달았다.

경남도가 맡고 있던 어업면허처분권한은 1993년부터 일선 시군에 위임되는데, 사천시의 경우 2008년 10월까지 어업면허를 허가할 때는 반드시 이 부관에 동의할 것을 어민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사천시는 부관을 없애달라는 사천만 어민들의 요구와 “과도한 행정행위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법률자문을 받은 끝에, 그해 11월부터는 해당 부관을 삭제했다.

여기에는 인근 남해군과 하동군이 오래 전부터 부관을 붙이지 않고 있다는 선례도 크게 작용했다. 남강댐에서 방류가 이뤄지면 사천만 전역이 영향을 입는다. 그런데 사천만을 함께 끼고 있는 남해군과 하동군이 제한조건을 달지 않고 있으니 사천시로선 형평성 시비가 부담스러웠고, 결국 늦게나마 이를 바로 잡은 셈이다.

가두리양식 어민들은 또, 그들의 어업면허 취득 시기를 재판부가 잘못 인식하고 있음에 항변한다. 자신들은 1990년 6월 남강댐 보강공사의 실시계획이 고시되기 전인 1986년부터 1989년 사이에 어업면허를 취득했다는 것.

그럼에도 수자원공사가 1993년 이후에 어업면허를 취득한 것처럼 자료를 제출해 ‘사업고시 후 어업면허를 받았으므로 남강댐 보강공사의 시행으로 원고들이 특별한 손실을 입게 됐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 단식농성 중인 김성진(왼쪽) 씨와 심부택 사천어류양식협의회장. 이들은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댐 방류에 따른 실질적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부관’ 문제와 ‘어업면허 취득시기’ 문제 등이 막판 논란거리인 가운데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어떻게 내릴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남강댐 방류 피해보상을 둘러싼 소송이 대체로 수자원공사 쪽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이어서, 어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두리양식어민들의 이번 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사천시어류양식협의회 심부택 회장은 6일 전화통화에서 단식농성을 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싸움을 하며 청와대와 국회, 정부기관을 두루 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수자원공사는 재판 결과에 따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가의 정책으로 피해를 입는 소수 국민이 있는데도 책임지는 이 없으니 비통할 뿐이다. 김성진 씨는 최근 맹장수술을 하고 회복 중인데, 더 이상 단식농성은 어려울 것 같다. 김 씨의 재산은 이번 달 안으로 모두 경매 처분될 예정이다. 앞이 깜깜하다.”

한편 수자원공사 김재희 보상팀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민들의 어려움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보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진행 중인 재판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강댐 방류에 따른 사천만 어민과 지역사회의 피해. 정부와 수자원공사의 주장대로 1969년 남강댐 준공 당시 모든 피해 보상이 이뤄졌으니,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논란은 다음 기사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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