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아닌 산청으로’ 기우는 듯.. 27일 이사회 결정에 촉각
KAI가 영국의 에어버스(Airbus)사와 계약을 맺어 2025년까지 4822대 분량의 날개 하부 패널을 생산, 공급하는 이번 사업은 최소 12억 달러(1조3488억 원) 규모로 국내 항공산업 사상 최대로 알려져 있다.
KAI는 이 사업에 1000억 원을 추가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 발생하는 신규고용과 업계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면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이 꽤 클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2014년부터 납품에 들어가야 함에도 ‘A320 날개 하부 구조물’을 어디에서 생산할 것인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추세대로 KAI측이 산청군 소재 금서제2농공단지를 생산지로 선택할 경우, 항공산업을 대표산업으로 내세우고 있는 사천시로선 타격이 예상된다.
이번 사업과 관련해 사실상 KAI의 마음이 일찌감치 사천을 떠나 있는 것으로 파악돼 사천시와 지역민들로선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더한다. 또 정부가 지닌 KAI 지분 중 상당부분을 민간에 넘기려하는 이른바 ‘KAI 민영화’를 두고, 사천의 시민사회가 대다수 KAI 직원들과 뜻을 같이하려는 움직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의 파격적인 지원 없인 1조 원대 대규모사업도 '허당'?
이쯤에서 KAI가 신규사업을 사천보다 산청에서 하겠다고 판단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겉으로 드러난 정보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사실 산청군이 KAI에 제시하고 있는 지원책은 파격적이다. 첫째, 사업부지 약 2만 평을 KAI와 그 자회사가 항공산업을 하는 동안 무상으로 임대하고 둘째, 폐수처리시설 일체를 지원하며 셋째, 300대 규모의 주차장을 설치해주며 넷째, 산청IC에서 공장출입구까지 연결도로를 개설해주며 다섯째, 직원식당과 체육시설 등 후생복지시설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얼핏 봐도 수백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갈 내용이다. 이밖에 근로자를 위한 기숙형 임대아파트 건립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니, 기업활동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있을 수 있을까?
산청군이 이 같은 지원 능력을 가졌고, 산청군민이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사천시와 사천시민들로선 KAI의 선택을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간 매출액이 1조2857억 원이고, 그 중 영업이익만 1060억 원에 이르는 기업 KAI가 1년 예산 3200여억 원에 재정자립도가 14.6%에 불과한 산청군에 이 정도 특혜를 받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KAI가 주장하는 “사천에는 마땅한 후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논리는 얼마나 타당할까? 이것 역시 겉보기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새로이 산업단지를 조성하기에는 분명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다.
다만 “KAI가 이미 확보하고 있는 5만 평 중 일부를 먼저 활용하고 나면, 이후 사천읍 용당리 일대에 중형항공기 사업부지를 추가 제공하겠다”는 사천시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형항공기 제조사업은 이제 갓 개념연구 단계로 걸음마 수준이다. 따라서 ‘탐색개발’까지는 4~5년 정도의 시간이 족히 걸릴 예정이며, 이후 사업성 여부를 판단해 사업 추진을 결정하게 되는 만큼 새로운 사업부지 조성을 위한 시간은 충분한 셈이다.
따라서 KAI가 주장하는 여러 가지 이유와 논리가 그저 ‘조건이 나은 산청으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난일까?
KAI 김홍경 사장은 에어버스사와 본 계약을 맺기 전인 지난 2월 20일 정만규 사천시장을 만나 “사천에서 후보지를 찾으려 해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며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특이한 점은 ‘좋은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다른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알리며 이해를 구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함께 배석했던 사천시 관계자의 증언이다.
결국 KAI는 ‘A320 날개 하부 구조물’의 생산지로 산청군을 일찌감치 낙점해 놓고도, KAI 지분 매각이 진행되는 등 민감한 상황임을 이유로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2014년까지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절대적 조건이 있음을 감안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미 터가 조성돼 있는 산청 금서제2농공단지 쪽으로 무게가 기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 아니겠는가.
KAI는 이번 사업을 하청업체 또는 KAI가 일정 지분을 갖는 자회사를 만들어 진행하는 방식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KAI의 전문 인력이 일정부분 파견되는 가운데 신규 고용 창출은 생각보다 적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공정의 상당부분을 자동화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신규 고용 인력은 100~200명 수준으로 예상된다.
비록 고용규모는 적지만 사천 지역민들에게 있어 여러 가지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빤하다. 사천에 터를 닦고 살고 있는 상당수 KAI 직원들의 삶에도 변화가 뒤따를 전망이다. 무엇보다 ‘항공산업의 메카’라 부르짖는 사천시의 구호에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음이다.
이는 당장 KAI 매각 반대 운동을 함께 벌이고 있는 사천시민들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사천에 바탕을 둔 기업이 다른 지자체로 빠져 나가는 것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실제로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아쉽긴 해도 현재 KAI의 중요 결정사항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경영자가 아닌 다수 KAI 구성원들을 도와 한 목소리로 응원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것 역시 정부의 의도된 그림일지 모르는 만큼 사천시민들이 여기에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1조3000억 원에 가까운 대형 사업이 어디에서 이뤄질 것인가? 그의 주장처럼 ‘숨은 의도’가 있는지 여부는 몰라도 KAI의 최종 선택이 가까워졌다. KAI의 지금 주장대로라면 지자체의 파격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왜 벌이는지는 다음에 따지기로 하자.
분명한 것은 사천시민들은 ‘그럼에도’ 산청이 아닌 사천에서 이 사업이 진행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보강>27일 오후4시35분께 KAI 사측은 "오늘 이사회에서 A320 날개 하부 구조물 생산공장 부지 입지선정을 논의한 결과, 산청군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알려 왔다. KAI는 7월 초순께 산청군과 MOU 체결하고, 예정된 일정대로 생산공장 건립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사천지역 시민단체들은 7월2일께 KAI 사측의 이번 결정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