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오솔길]정태춘 '애고 도솔천아'를 다시 듣다

▲ 정태춘 음반 표지. 그의 젊은시절을 보니 세월이 무상하다.

나이 50줄에 들어섰지만 공부하는 일은 멈출 수 없는 길이다. 공부의 결과야 있을 수 없지만 이런 저런 절차와 과정으로 부산에 다녀왔는데 운전하는 내내 정태춘, 그 양반 노래를 들었다. 새로 나온 앨범은 집에서 큰 오디오로 아직 듣고 있어 차에서는 골든 앨범을 들었다. 그 중 “애고 도솔천아”가 오늘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애고 도솔천아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선말 고개 넘어 간다 자갈길에 비틀대며 간다 

도두리 뻘 뿌리치고 먼데 찾아 나는 간다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이깟 행차에 흥 난다고 봇짐 든든히 쌌겄는가  

시름짐만 한 보따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길을 막는 새벽 안개 동구 아래 두고 떠나간다 

선말산의 소나무들 나팔소리에 깨기 전에  

아리랑 고개만 넘어가자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도랑물에 풀잎처럼 인생행로 홀로 떠돌아 간다 

졸린 눈은 부벼 뜨고 지친 걸음 재촉하니  

도솔천은 그 어드메냐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등 떠미는 언덕 너머 소매 끄는 비탈 아래  

시름짐만 또 한보따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풍우설운 등에 지고 산천 대로 소로 저자길로 

만난 사람 헤어지고 헤진 사람 또 만나고 애고, 도솔천아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노을 비끼는 강변에서 잠든 몸을 깨우나니  

시름짐은 어딜 가고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빈 허리에 뒷짐 지고 

선말 고개 넘어서며 오월산의 뻐꾸기야  

애고, 도솔천아 

도두리뻘 바라보며 보리원의 들바람만  

애고, 도솔천아 

정태춘 본인의 회한이 어린 가사라고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접어두자 누구의 회한이면 어떨까. 오늘 내 기분과 이리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그의 노래의 뒤편에는 언뜻 언뜻 보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불교라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 그것이 더 강한데 이 노래 역시 그의 젊은 시절 그런 류의 작품이다. 이 노래에서 불교적인 것은 “도솔천”이다. 불교의 우주관은 매우 복잡한데 그 중 도솔천은 욕계 여섯 나라 중에 네 번째 있는 나라의 이름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석가모니께서 전생에 이 곳 도솔천에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마야부인의 몸을 빌려 현세의 부처로 오신 곳이다. 욕계라 함은 아직 오관(안, 이, 비, 설, 신)의 감각이 존재하지만 인간세계와는 달리 그곳 사람들은 쉽게 미망에 빠지지 않는 단계의 사람들이 사는 세계이다. 물론 인간세계도 욕계로서 미망이 많아 번뇌가 팔만사천가지나 되어 평생을 혼란 속에서 살게 되는 세계이다.  

 

도솔천은 왜 부르나?

노래 가사의 주요한 내용은 고향을 등지는 풍경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고향을 두고 떠난다는 것은 지나온 날의 아픈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 올 것이고 더불어 자신의 처지는 한 없이 비루해 질 것이다. 그 처절하고 가슴 아픈 심정을 “비틀대며” “시름짐”으로 비유했다. 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처절하고 비참하니 비틀댈 것이고 아무것도 들지 않아도 몸은 천근만근 시름 짐이 누르는 상황을 정태춘은 참 잘도 표현해 냈다. 

동네사람들 깨기 전에 어서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은 거의 도망치듯 고향을 등져야 하는 상황임을 말하는데 “나팔소리에 깨기 전에 아리랑 고개만 넘어가자”에 그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런 상황은 정태춘만의 감정이 아니라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 중 농촌에 고향을 둔 이들의 마음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느낌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특히 내게는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 우리 집이 이렇게 고향을 등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야 그 모든 것을 회복하여 고향이 좋지만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과 어린 우리들의 기억 저편에는 이 도망치듯 떠나온 고향의 느낌이(우리 집 식구들만의 느낌인지 몰라도)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후렴구에 “애고 도솔천아”를 노래한다. 모든 시름을 접고 훨훨 하늘세계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단지 그 세계를 그리며 위안을 삼고 싶었을까? 무엇이든 당시의 현실은 팍팍했을 것이다. 그의 노래 “실향가”에서 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나의 옛집은 나도 모르는 젊은 내외의 새 주인 만나고  

바깥사랑채엔 늙으신 어머니, 어린 조카들, 가난한 형수님  

아버님 제상엔 둘러앉은 객지의 형제들  

한 밤의 정적과 옛 집의 사랑이 새삼스레 몰려드네. 몰려드네. (실향가 중 일부) 

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하면서 우리가 겪어내야만 했던 농촌사회의의 붕괴와 전통 기반의 붕괴, 동시에 그곳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해체(이유야 무엇이든 간에)를 정태춘은 이렇듯 절절하고 가슴 저리게 노래한다. 

세 번째 연으로 들어서면 그는 본격적으로 세상의 모습과 거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노래한다. 우리 삶의 여러 만남과 헤어짐을 이야기하고(“만난 사람 헤어지고 헤진 사람 또 만나고”)그 속에서 언제나 혼자 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도랑물에 풀잎처럼 인생행로 홀로 떠돌아 간다.”) 노래한다. 이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도솔천’이라는 이상의 세계로서 그 위로를 힘으로 삼아 고단한 현실로부터 고개 돌리지 않고 마침내 잘 견뎌낼 것이라는 정태춘 본인의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애고!”
 

<김 선생의 오솔길>은 현현적적 시민기자가 클래식 평론, 영화 평론, 책 평론 등으로 세상읽기를 하는 공간입니다. 현현적적은 곤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준식 교사의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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