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보는 것인가, 안 보는 것인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인가?

▲ 검찰이 KAI와 연관된 횡령사건을 미온적으로 처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당사자들이 말을 아끼고 있어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커진다.
한국항공우주산업(주)(이하 KAI) 김홍경 사장이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둘러싼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검찰의 ‘봐주기’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태다.

KAI 김홍경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 이는 KAI가 29.4%의 지분을 가진 S&K항공(주)(이하 S&K)의 직원 김경민 씨다. 그는 김 사장을 배임혐의로 지난 3월 6일 고발하면서, S&K 전 사장인 백아무개 씨도 횡령혐의로 함께 고발했다.

김 씨가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10월 28일에 백 씨를 횡령혐의로, 2011년 3월 14일에 김 사장을 배임혐의로 각각 고발했던 것.

이에 검찰은 백 씨를 기소했고, 법원은 1심에서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3년 선고를 내리면서 ‘80시간 사회봉사’를 함께 명했다. 백 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KAI 김 사장에게는 증거불충분 이유를 들어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기소를 하지 않은 것이다. 김 사장을 고발한 김 씨는 항고 했으나 부산고검은 같은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 지난 2월 27일 있었던 KAI와 중소협력업체 동반성장 선포식 장면.
그렇다면 고발인은 이미 지난해 끝난 문제를 올해 왜 다시 꺼낸 걸까? 그리고 기소가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지난해 사건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발인 김 씨는 당시 S&K의 경영지원팀장이었다. 그는 2010년 초 무렵, 업무 과정에서 당시 사장이던 백 씨의 횡령을 의심했고, 이를 KAI에서 파견 나와 있던 S&K 감사는 물론 KAI 감사에게도 알리면서 세밀한 조사를 주문했다.

이렇듯 문제가 불거지자 S&K 백 전 사장은 어쩔 수 없이 16억 원을 회사에 돌려줬다. 그리고 3년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KAI 김 사장과 합의한다. 이에 따라 김 사장은 KAI 직원인 이학희 씨를 파견시켜 S&K 새 사장을 맡게 한다. 이 과정에 KAI 김 사장과 백 씨 사이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협약을 맺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백 씨는 자신의 회사 지분 중 상당량을 KAI에 매도해야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그러나 고발인 김 씨는 “횡령 사실이 더 있음에도 사태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백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지난해 3월에는 역시 사태수습 과정에서 축소 은폐한 의심이 있다며 KAI 김 사장까지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 김경민 씨가 검찰에 제출한 횡령혐의 입증자료 목록. 이 가운데 검찰은 위 세 건만 혐의가 있다고 봤는지 나머지는 기소하지 않았다. 세 건의 합산금액은 약 16억 원이다.
검찰의 ‘봐주기’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은 지금부터다. 사건을 맡은 창원지검은 백 씨를 기소하면서 고발인이 제시한 여러 가지 횡령혐의 가운데 일부만 택한다. 나머지는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고발인 김 씨는 이를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내가 확인한 횡령혐의만 6건에 금액은 23억여 원이다. 그 증거자료를 모두 검찰에 제출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3가지 혐의 내용만 들어 있었고, 횡령금액을 16억 원이라고 밝혀놓았다. 뒤에 알고 보니 검찰이 나머지 건에 대해서는 기소를 하지 않은 것이다.”

횡령 혐의는 더 있는데 검찰은 왜 16억 원만 기소했나?

검찰은 왜 일부 혐의만 인정해 기소했을까? 증거가 불충분 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 사건 종결 후 또 발생한다. 고발인 김 씨가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횡령 혐의 입증 자료를 KAI에서 파견 나온 S&K경영진에 제시하자 백 씨는 이번에도 이를 인정하고 7억 원을 순순히 내놓은 것이다.

검찰에 제출했던 증거자료와 KAI에서 파견 나온 S&K경영진에 전달된 자료는 똑 같은 것이었다. 검찰이 백 씨의 횡령 혐의를 축소해 기소한 이유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고발인 김 씨는 “내가 확보한 정확한 증거자료는 이만큼이니 이것 말고도 더 횡령한 것이 있는지 찾아내 달라고 고발했는데, 검찰이 수사를 하긴 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백 씨가 최초 횡령사실을 인정한 금액 ‘16억 원’이다. 이 금액은 고발인 김 씨가 처음 KAI 관계자와 주변에 백 씨의 횡령사실을 알리며 구두로 흘렸던 금액과 일치한다.

▲ 고발인 김경민 씨가 검찰에 제출한 S&K 전 사장 백 씨의 횡령 입증자료. 계약서 위쪽이 정상이라면 아래쪽은 허위 계약서다. 이중계약임을 암시하듯 숫자와 한글 금액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와 같은 이중계약서가 있음에도 이를 기소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고발인 김 씨는, S&K 전 사장인 백 씨가 자신이 알고 있는 횡령금액이 이것뿐인 것으로 확신했고, 이후 이뤄진 감사에서도 그 금액만큼만 횡령을 인정했다고 추측한다.

나아가 KAI 역시 감사를 철저히 했다기보다 백 씨의 진술에만 의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감사 과정에서 백 씨의 횡령 사실을 꾸준히 제기한 김 씨 자신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자료요청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KAI 김홍경 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게 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백 씨의 횡령금 16억 원은 고발인 김 씨의 입에서 최초 흘러나왔고, 백 씨는 이를 인정했으며, KAI 역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김 씨는 추가 자료가 더 있음에도 자신을 조사하지 않자 백 씨와 김 사장을 각각 횡령과 배임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이때 김 씨가 제출한 증거자료는 6건에, 금액으로 23억 원이었지만, 묘하게도 검찰이 기소한 것은 백 씨와 KAI가 주장하고 합의한 ‘16억 원’에 해당하는 횡령혐의 3건이었다.

김 씨는 또 검찰이 KAI 김 사장을 불기소한 것을 두고도 의구심을 보였다.

“백 사장의 횡령사실을 충분히 조사하고, 그 과정에 간여한 세력은 없는지 광범위하게 조사한 뒤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할 텐데 고발한지 두 달 만에, 그것도 백 사장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이렇게 서둘러 김 사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KAI의 코스피 상장과 김 사장의 ‘KAI 사장 연임’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KAI 코스피 상장은 지난해 6월에 이뤄졌고, 김홍경 사장의 연임 결정은 지난해 8월에 있었던 일이다. 반면 김 씨는 지난해 3월 14일 김 사장을 고발했고, 검찰은 5월 19일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다. 김 사장에 대한 사건처리가 늦어졌을 경우 KAI 상장과 연임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란 건 미뤄 짐작할 수 있음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KAI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당시 청와대에서도 이 문제를 직접 조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KAI 본사가 있는 경남 사천에 내려와 고발인 김 씨 등을 만나고 간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이 사건에 어떤 식이든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당시 그런 이야기가 들려서 확인하러 간 것은 맞다. 하지만 이미 검찰에서 수사 중이어서 더 이상 조사하지 않았다.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도 잘 모른다.”

여기까지가 KAI 김 사장과 그 출자회사인 S&K 전 사장 백 씨에 대한 고발사건의 숨은 이야기다. 검찰이 실제로 ‘봐주기’를 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의심을 살 만한 빌미를 제공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창원지검 측의 입장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취재를 거부한 상태다. KAI 측 역시 “책임 있는 답변을 해 줄 사람이 없다”며 사실상 취재를 거부했다.

▲ KAI 공장 내부 전경. 대외 신용도 관리를 위해 협력업체 관리에도 힘을 쏟아야 하는 KAI가 출자회사 경영허물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남은 문제는 고발인 김 씨가 올해 3월 9일, 두 사람을 재차 고발했다는 것이다. S&K 전 사장 백 씨에게는 횡령을, KAI 김 사장에게는 배임 혐의를 뒀다.

하지만 검찰이 이들을 기소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올해 연말까지 지분 매각을 통해 KAI의 새 주인을 찾겠다고 나선 상황은, 지난해 코스피 상장을 앞뒀을 때와 분위기가 흡사하다. 특히 KAI 지분 매각은 현 정부가 막판까지 목매고 있는 사업이어서 검찰이 ‘정치적 판단’을 할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반대로 검찰이 이들을 기소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백 씨의 추가 횡령사실을 누락시킴으로써 사실상 이번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사건을 맡은 창원지검 진주지청의 이철희 부장검사는 “일단 조사가 끝나봐야 뭐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말을 아꼈다.

S&K는 자본금이 34억 원인 기업이다. 이 가운데 백 씨가 지닌 지분은 23억2800만 원. 백 씨가 자신의 횡령을 인정하고 회사에 반납한 돈이 23억 원이니, 그는 자신이 투입했던 자본금 대부분을 횡령했던 셈이다.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부분만 그렇다.

또 S&K는 KAI가 10억 원의 자본금을 투입한 출자회사다. 현재 KAI에서 하청을 받아, 에어버스사 항공기 A320의 날개 상판을 생산하고 있다. S&K에서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KAI의 신용도는 물론 우리나라 항공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이다.

그런데도 검찰과 KAI가 S&K 전 사장의 횡령을 ‘봐주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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