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12가지 유기농채소를 고등어조림과 갈치속젓으로...

▲ 푸짐하다기보다는 소박하고 깔끔하단 말이 더 어울리는 삼화식당 쌈밥이다.
쌈밥집은 지역마다 있고 그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산물로 쌈을 낸다.
쌈 채소란 것도 지역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쌈의 고명도 다 다르다. 어떤 지역에서는 돼지고기 수육을, 어떤 고장에서는 홍어회를 내기도 한다. 동해 지역에서는 한 때 고래 고기 삶은 것을 차려 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고등어조림으로 통일되는 경향이다.

그 고등어조림을 고명으로 오래 전부터 해 온 쌈밥집이 우리 고장에 있어서, 삼천포에서 가장 오래된 쌈밥집 중의 한 곳인 삼화쌈밥집을 찾았다. 죽림 삼거리 근처에 있으니 삼천포의 초입에 해당된다 하겠다. 1996년에 이 자리에서 시작하여 계속하고 있으니 15년이 넘는 세월이다.

고향이 통영이라는 김둘연 사장은 1953년생이니 금년에 환갑이다. 이제 할머니라고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연령이다. 그런데 외모에서는 전혀 할머니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곱상한 중년 여인 같다. 야채와 쌈을 자신이 좋아해서 쌈밥집을 했다고 하더니만 신선한 야채 중심의 식생활 덕분일까. 피부도 곱고 맵시가 있다.

이 집의 식탁은 소박하다. 야채 중심의 쌈밥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기름지고 질펀한 차림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쌈은 12가지 유기농채소와 고등어조림, 갈치속젓 등이 어울렸다.
제일 주요한 메뉴인 쌈 가지 수를 세어 보았다.  상치, 케일, 찐 케일, 쑥갓, 적겨자(붉은 겨자 잎), 치커리, 노랑 근대, 금광초, 다시마, 양배추, 머위, 당귀. 이렇게 12가지 쌈 채소가 나왔다.

채소는 용강 마을에 있는 농장에서 뜯어 오는데 유기농 채소라서 잎에 벌레가 먹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다. 상차림에는 쌈 채소와 된장찌개, 고등어조림이 항상 나오는데 철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달라진다. 제 철 음식이 나오는 것이다.

쌈 채를 손바닥에 몇 장 겹쳐 놓고 밥 한 숟갈에 고등어조림을 얹어 싸 먹으면 입안이 한 가득이다. 원래 쌈밥은 입이 미어져라 넣어 먹어야 제격이다. 갈치속젓과 전어밤젓갈도 나온다. 야채를 그냥 찍어 먹어도 되고 쌈에 얹어 먹어도 된다.

고등어조림에 사용된 고등어는 싱싱한 놈이라 살집이 단단하다. 된장찌개에는 게가 들어있어서 구수한 맛이 한 맛 더하다. 쌈밥을 먹다보니 무엇인가 빠진 듯하다. 청량고추가 없는 것이다.

▲ 쌈밥집의 핵심은 신선한 채소. 삼화쌈밥에는 지역에서 재배한 12가지 유기농채소가 자랑거리다.
“여기 고추는 안 나옵니까?”

“있긴 한데, 매운데 괜찮아요?”

이 식당의 주요 손님들은 여성들이다. 여성들은 매운 청량 고추를 잘 찾지 않아서 찾는 사람에게만 제공된다고 한다.

쌈 속에 매운 땡초를 반으로 툭 분질러 넣어 놓고 입안 가득히 채운다. 다른 야채와 함께 이겨지다가 톡하니 땡초가 씹힐 때의 강렬한 매운 맛에 눈물이 핑 돌고 머리맡에 땀방울이 솟구친다. 운동으로 몸이 데워져 땀이 처음 배어나올 때의 쾌감과 비슷하다. 이런 매운 맛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땡초를 우걱우걱 먹는다.

“고향이 토영이라고요? (통영 토박이들은 통영이라고 하지 않고 토영이라고 부른다)”  “토영 어디에요? 저도 교사 초임 발령을 통영여중에 받았어요. 하숙집은 도천동에 있었고요.”
 

▲ 식사 후반부에 나오는 숭늉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그렇겠지만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는 교사들은 초임 발령지와 초임학교를 잊지 못하는 법이다. 마치 첫사랑을 잊을 수 없는 것 같이.

“숭늉이 참 맛있네요.”

“밥을 그 때 그 때 해 내는데 누룽지가 있잖아요? 그 누룽지를 사용해요. 난 얼마 전에 마트에서 어떤 사람이 누룽지 사 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누룽지도 팔더군요.”

“하하. 요즈음 누룽지도 대량으로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혹시 가마솥에 밥을 하나요? 아주 구수하던데요.”

“에이, 요즘에 누가 무쇠 솥을 써나요. 압력밥솥에 하지요. 밥을 한꺼번에 많이 하지 않아야 밥맛이 있지요. 사실 쌈밥이 별거 있나요? 밥맛으로 먹는 것이지요. 때가 아닐 때 와서 가끔씩 밥이 늦다고 짜증내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어쩔 수 없지요. 우리는 밥을 오래 묵히지 않아요. 그 때 그 때 해 내야 맛있지.”

▲ 삼화식당 김둘연 사장. 고향이 통영인 김 사장은 젊어서부터 요리를 즐겼다고 한다.
김 사장은 음식 만들기를 좋아 했단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교과서 보다 요리책 보는 시간이 많았고, 요즈음도 손님들에게 밥을 지어 내는 것이 여전히 재미있단다. 오래 된 음식점의 안주인들은 대부분 음식 만들기를 즐긴다. 하긴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을 꾸준히 음식을 채려 낼 것인가.

“시장에 나가면 손님들에게 내어 놓고 싶은 것이 이것저것 많은데 손이 가지 않아요. 물가가 너무 올랐어요. 신선 채소 값도 올랐고. 요즈음에는 서민들 살기가 참 어려워요.”

“또 카드로 결제하니 더 어렵죠?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대중식당을 찾을 때는 현찰을 준비해서 가려고 노력해요. 이런 작은 서민경제운동이라도 벌일까 해요.”

“어머, 너무 좋은 일이에요. 실제로 여러 손님들이 오셔서 카드 결제하면 그런 대로 괜찮은데, 두 분이 와서 한 상 차려 먹고 가면 남는 것이 실제로 없어요. 휴우”

▲ 사천시 죽림동에 있는 삼화식당 전경.
“다음 주에 우리 신문에 게재되니 한 번 보시죠.”

“영감님이나 저나 인터넷을 하지 못해요. 보지 못하겠네요.”

아무래도 강 기자가 기사 내용을 출력해서 한 걸음 해야 할 모양이다.

음식도 주인을 닮는다. 마치 소채 같고 수선화 같은 김 사장의 쌈밥은 청량한 느낌이다.

삼화쌈밥의 식탁에 오른 음식들은 푸짐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빈약해 보인다. 그런데 다섯 명이 한 상을 받아먹고 나니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다. 오랜 세월을 거쳐 몸에 익힌 노련함이다. 이런 것을 절제미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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