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만의 한파라는 혹한의 추위가 닥친 저녁에 맛집 발굴에 나섰다. 아무리 따뜻한 남쪽 바닷가 지방이라 하지만 바다에서 몰아치는 밤바람은 모질고 매섭다. 저녁 7시가 안 된 시간인데도 을씨년스런 날씨 때문에 길거리에 인적이 뜸하다. 추운 날씨에 익숙하지 못한 남도 사람들은 이미 따뜻한 가정으로 숨어 들어간 모양이다.
우리가 오늘 찾을 식당의 주요 메뉴는 해산물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날씨가 추울수록 해산물에는 맛이 든다. 찬 물에 손을 담그고 음식을 장만하는 이에게는 고역이겠지만 먹는 사람은 추운 날씨일수록 맛이 있는 것이다. 차고 시원한 해물 맛에 대한 기대를 갖고 가는 발걸음들이 가볍다. 더욱이 하루 일과를 마친 후의 속은 출출하고 입은 궁금한 때가 아닌가.
우리가 찾아간 식당의 이름은 ‘파도한정식’이다.
상호가 주는 어감이 생뚱맞다. 밥집 이름에 ‘파도’가 무엇이란 말인가? 시골 바닷가 먼지가 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인 낡은 맥주집이나, 중늙은이가 된 마담이 혼자 지키는 다방에나 갖다 부치면 어울릴만한 이름이 아닌가. 아무튼 옥호를 짓는 것은 주인 마음이고 밥 한 끼 먹으러 들어가는 나그네의 입장에서 이런 것을 따질 이유는 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주머니가 씩씩하게 음식을 차리기 시작한다. 손님에게 무엇을 묻고 하는 집이 아닌 모양이다. 그냥 손님 수에 따라 음식을 갖다 놓는다. 다만 한 테이블에 다섯 명이 앉아야 하는 것에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날씬한 아가씨는 이쪽에 앉으세요.”
우리 일행이 아홉 명이라 한 테이블에는 네 명, 다른 테이블에 다섯 명이 앉아야 하는데 이것이 신경이 쓰이는 것이리라. 그래서 말로서 대접하는 모양이다. ‘날씬한 아가씨!’라고.
우리 시식단에는 미혼자가 없다. 졸지에 ‘날씬한 아가씨’가 된 사람도 30대 후반의 기혼자이다. 우리도 답례로 마흔은 훌쩍 넘은 듯 한 홀써빙 아줌마를 ‘아가씨’로 불러주기로 한다.
“아가씨, 반주할 것 두 어병 넣어 주세요.”
“네, 소주 드릴까요?”
아가씨란 호칭에 이 아줌마도 생글거린다.
요즈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어려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지,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노숙해 보이는 것을 다들 좋아했었는데. 세상이 젊어져서 그런지 장유유서의 질서가 깨어져서 그런지...아무튼 총각, 아가씨라면 좋아하는 세상이다.


양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안주가 남으니 당연히 반주를 더 마셔야 한다.
“소주 두 병 더!”

그리고는 미역국이 나왔는데 당연히 생선 미역국이다. 도다리가 들어 있는 국인데 아쉽게도 생선은 적게 들어있다. 그래도 미역과 생선이 어울려 시원한 맛을 낸다. 그리고 메인 요리가 들어왔다. 생선구이다.

이런 종류의 한정식 집이 삼천포에는 여러 집이 있다.
정식 1인분에 1만원이다. 서너 명이 앉아 반주 한 잔하고 밥을 먹고 해도 식사대가 얼마 나오지 않는다. 해산물에 익숙한 삼천포 사람들에게는 참 편리한 식당이다. 그날그날 어시장에 나오는 가장 신선한 해산물을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심지의 매연에 찌던 사람들에게도 역시 권할만한 곳이 아닐까싶다.
그날그날 나오는 식단 외에 안주를 추가할 수 있다. 오늘의 추가 요리는 ‘개불 회’이다. 삼천포 실안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개불은 맛도 좋거니와 가격도 비싸다. 추가 안주 값을 물어보니 한 접시 1만원이란다. 오늘 밥을 사기로 한 분이 대뜸 개불을 추가로 시켜 먹자한다. 그러나 당장 많은 사람의 반대에 봉착했다. 상위에는 아직 남은 해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펀하게 술과 밥을 먹고 나서 진정한 맛집이 맞는지 의견을 나눴다. 참석자 대부분이 'ok!'란다. 우리 뉴스사천이 선정하는 맛집1호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식당 일이 너무 힘들어 오래 못하겠어요. 매일 아침 마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항상 현금을 주고 사는데 손님들은 카드를 끍어요. 카드 비용 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두 명인데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오. 찬물에 매일 손 담그고 하는 흉악한 일인데 남는 것은 없고 골병만 드니 서울 사는 자식은 집에 올 때 마다 그만 두라고 한다오. 이 짓도 이제는 그만 두야 하나 생각 중이에요.”
카드업 재벌이 할퀸 갈고리의 생채기가 먼 남도 조그만 대중식당에서도 생생이 남아있다. 천 할머니의 신경통을 앓는 굽은 손가락 마디마디에 상흔으로 배여 있는 것이다.

국수집이 흥하여 꽤 많은 돈을 벌었는데 못된 사기꾼을 만나 돈을 다 떼이고, 실비집을 차려 하다가 술손님을 받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접었는데 좋은 음식 솜씨를 아쉬워하는 손님들 등쌀에 밥집을 차린 것이 벌써 7-8년이 되었단다.
천 할머니의 ‘파도’는 국수집에서 실비집을 거쳐 지금까지 오는 33년이란 긴 세월을 끊임없이 치고 있는 것일까? ‘부딪치고 깨어지는 물거품 같이’.
글쓴이의 맛있는 말이 만나야
드디어 독자는 진정한 맛집을 만나나 봅니다 ^^
추운 겨울 바람과, 차가운 겨울 해산물의 만남을
너무 잘그려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