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에 살면서 가끔 생각해보는 것이 있다

사천에 살면서 가끔 생각해보는 것이 있다.

에덴 동산은 네 개의 강 가운데 있었다고 한다.

사천이라는 이름이 네 개의 강이라는 상식이 맞다면 참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로만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기나긴 방황의 끝에서 자리잡은 이 곳 예수리 옆 고읍 마을이
참으로 오래된 마음의 고향 에덴동산, 나의 아내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옛날 에덴동산은 그리 평화로운 천국과 같은 곳은 아니다.
옛 뱀이 있고, 선악과가 있고, 타락이 있는..
지금 현실 속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받고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이 동산은 물리적인 공간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이고, 추구하는 가치이며, 사랑의 대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가치들이 종교적인 변증과 뗄 수 없다는 것은 잘 안다.
한 마디를 내뱉으면 그 안에서 부정과 합의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고 변증하는 것은 그것으로 시간의 낭비가 될 뿐이다.

그럼에도 사천을 에덴동산에 비유하게 된 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사천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에덴 동산은 문자에서 찾을 수 있다.
아내와 나는 여기에 살고있고, 사랑은 상징으로 남아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나, 나의 생각은 이 페이지에 남는다.

세상은 이렇게 이분화 할 수 있을까?

가장 비근한 예로 나의 생각이라는 상징이 지금 자료로 물질화 되지 않았는가?
축적된 기술로 지어진 집에 살고 있고, 길을 다니며, 강둑을 걷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사천시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나의 마음의 상태는, 추구하는 가치는, 사랑의 대상은,
내가 에덴동산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에덴동산을 온갖 비난에서 방어하는 것은 그 거주민의 몫이다.

에덴이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는 데는 두가지 역설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로, 창조주는 전지전능하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타락했다.

둘째로, 첫 아담은 타락의 아버지이고 둘째 아담 그리스도는 모든 이를 속죄했다.

첫째 모순에서 창조주는 죄악의 심판자일 뿐 아니라 직접 관여자가 되며
둘째 모순에서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이며 완전한 인간이므로, 그는 우리들도 아니며 그들도 아니다.

이런 모순들을 지금 나의 작은 천국, 영원을 맹세한 가정에 끌어들여야 할까?
우리는 천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르침에 의해서 소속되고 예배하고 증거한다.

하지만, 질문은 항상 대답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기다림은 항상 만남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서정윤 시인은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이 예정되었다는 기막힌 선언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신성한 빛을 발하는 이유는..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자유의지가 품고있는 모든 실패의 가능성, 타락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안은 존재한다는 믿음, 하나의 길을 걷고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너무나 탁 트인 공간을 갑자기 만났을 때, 우리는 모든 길이 열려있다는 느낌보다는, 사방이 황량하여 길이 없다고 느끼는 수가 더 많은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잘 닦인 넓은 도로를 선택하지 말고, 좁은 길을 선택하라는 충고도 사실은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사랑하라는, 길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당신이 지금 함께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만족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과거나 미래에 살고 있다.
그것도 정확한 과거나 미래가 아닌 잘못된 그것들을 숭배하고 있다.

성서를 포함한 모든 기록물, 영화, 소설, 신문과 텔레비전은 한가지를 말하고 있다.
당신이 그것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들은 당신이 당신 자신과 타인, 환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당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새 해의 첫 달이 벌써 지나고 있다.
당신은 무언 가를 하거나 하지 않았다. 무엇을 할 수 있었거나 할 수 없었다.
당신은 벌써 40살일 수도 있고 겨우 이제 40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당신 인생의 첫 페이지는 열렸고, 꽤 많은 기록을 당신의 손으로 남겼다.
안타까운 것은 당신들 중 많은 사람이 당신의 인생이라는 페이지에 당신 자신에 대한 아무 것도 써 넣지 않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을 천국이나 에덴동산으로 생각하는 것은 조금 심한 구석이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 여기의 사랑과 안정을 위한 모든 기쁨과 희생이 그토록 소중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 곳을 여기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과거나 미래의 어떤 다른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순전히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곳이다.

그대여, 언제까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려는가?
언제까지 지금 여기를 하찮은 곳으로 여기며 다른 곳을 꿈꾸려는가?

혹, 그대는 나를 우상숭배자라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답해 보라 그대여, 내 손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
그대가 쥐고있는 모든 경전과 상징물과 가르침을 제외하고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혹 그대의 우상은 아닌가?
혹시 그대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나니 한낱 가시덩쿨밖에 없다면,

기다리라 그대여, 그대의 가시덩쿨을 사랑하며 그 장미꽃을 사랑하는 이가 그대를 향해 올 것이라, 그대에게 아주 친근한 이의 모습으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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