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17) '돈대산-모진해수욕장'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이른 아침 재래시장 가서 아침을 해결한 뒤, 제주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추자도로 가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목포행 '핑크돌핀호'를 타고, 중간 경유지인 추자도에서 내릴 예정이다. 그런데 함께 가기로 한 서울 아가씨는 소식이 없다. 어제까지가 나하고 마지막 인연이었나 보다. 혼자서 표를 끊고, 11시 10분쯤 난생 처음으로 추자도에 발을 디뎠다.

▲ 핑크돌핀호. 속도는 빠르지만 출렁임도 소음도 심하다.

추자도 올레길은 오르내림이 많아, 처음으로 스틱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최영 장군 사당을 출발했다. 사당을 지나고, 노을 전망이 좋다는 봉글레산 전망대에 올라섰다. 전망대에는 마을 주민인 듯한 네 분이 한창 식사 중이시다. 잠시 쉴려는 나를 보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배낭 풀고 함께 식사하자고 하신다. 사실 올레길에서 점심은 거의 '생략'했었는데, 직접 잡으셨다는 돌돔과 자리돔 반찬에 꼬여 점심을 얻어 먹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분들은 추자도 주민으로, 올레길을 정비하시는 중이라고 했다.

▲ 나에게 너무 과분한 점심 식사. 특히 찐 돌돔, 구운 돌돔은 정말 맛나다.

과분한 대접에 뭔가를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별로 드릴 게 없어, 즉석 전투식량 두 개를 드렸다. 극구 사양하시길래 "비싼 건 아니고 여기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되는데, 혹시 낚시하러 가시거든 이용해 보세요"라고 말하며 드렸다. 이후 한 분께서 저기 올레길을 내려서면 자기 집이 있는데, 무거우니 집에 배낭을 두고 가라고 하신다. 그리곤 올레길 다 돌아보고 나서는 자기 집에 빈방도 많으니, 다시 이곳으로 와서 그냥 숙박하라신다.

무거운 배낭을 집에 두고 출발하니, 훨씬 부담이 없다. 추자도 올레길 코스는 지금까지 개설된 올레길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란다. 배낭을 두고 갈 수 있으니, 그 분의 인정에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 추자등대(좌)와 추자도 등대에서 바라 본 추자도 전경

추자등대에서 바라보니, 상추자도와 하추자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아래 보이는 저수지는 마을 주민들의 생활용수를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또한 일부 식수는 보조금을 받아 삼다수로 이용된다고 한다.

추자등대를 내려와, 하추자도로 가는 다리를 건넜다. 길이 다시 오르막 길로 바뀐다.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서서 언덕을 지나니, 어랍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작은 트럭 쉼터가 있다. 이곳에서 추자올레지기가 시원한 캔맥주를 팔고 있다. 지금은 추자올레지기가 잠시 자리를 비워, 주인 대신 주인 친구가 가게를 보고 있다. 주인 친구와 함께 캔맥주를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제주도 어디로 가도 내가 사는 고향 삼천포를 말하면, 꼭 누군가는 '삼천포'에 아는 사람이 있다. 추자올레지기 친구분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아는 삼천포 출신 선장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한다.

올레길은 오르고 내리고 꺽이고를 되풀이한다. 이어 모진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추자올레지기 친구가 야영장으로 추천했던 곳이다. 여러 상황을 보니 야영장으로는 딱이다. 아름다운 경치, 침상, 화장실, 무료 샤워장, 임시식당 등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먼저 임시식당에 자리를 잡고 소라회를 시켜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그리곤 추자도에서 가장 높다는 돈대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 황경한의 눈물샘.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딸 정난주(정마리아)와 그의 아들 황경한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황경한의 눈물샘'에 도착했다. 정난주는 신유사옥 때 남편 황사영을 잃고 자신은 탐라도로 유배돼 관노로 살았다. 유배 갈 때 2살 난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 예초리 물쌩이끝 바위에 내려놓았는데, 주민이 발견해 키웠다고 한다. 황경한의 묘는 예초리 산자락에 있는데, 어머니 정난주의 묘가 있는 대정읍 11코스와 마주하고 있다. 묘 아래엔 ‘황경한의 눈물’이란 샘이 있는데, 어머니를 그리며 흘린 그의 눈물을 닮아 마를 날이 없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곳이다.

이어 경치가 빼어난 바닷가 길을 따라 걸었다. 돈대산 정상 전망대로 가는 길에 몸은 지치고 힘들지만 눈과 마음은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 추자도 올레길 풍경.

돈대산 정상 전망대를 힘겹게 오른 다음, 해안길을 따라 추자올레 출발점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오후 6시 30분. 배낭을 찾으러 낮에 만났던 분 집에 가보니, 어라? 원래 두었던 곳에 배낭이 없다. 이리저리 둘러 보니 만났던 아저씨는 곤한 낯잠에 빠져 있다. 알고보니, 배낭은 옆방에 옮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방에서 자고 가라는 뜻인 것 같다. 추자도의 후한 인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아저씨가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배낭을 챙겨서 나왔다.

오후 7시30분 추자도 셔틀버스를 타고, 야영지로 정한 모진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깔렸다. 야영지로 봐 두었던 침상에는 대가족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분들은 대뜸 나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삼겹살과 김치, 밥, 막걸리까지 챙겨 주신다. 에고~ 후한 추자도 인심 덕분에 오늘의 점심과 저녁은 해결했다.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마을 청년회에서 운영하는 임시 천막식당에서 석화, 소라회를 시켜 먹었다.

시끌시끌하던 식당도 어느새 불이 꺼졌다. 혼자 남은 나에게 한적한 해수욕장은 속삭이는 바람소리를 들려줬다. 파도소리는 아예 음악처럼 들렸다. 그리곤 밤하늘의 반달과 별들이 낯선곳에서 홀로 남겨진 나를 사랑으로 내려 본다.

아!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밤이 있을까? 처량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애잔하기도 한 내 하모니카 연주가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와 더불어 퍼져 나간다. 한참 동안 자갈밭 위 분위기에 빠져 있다가 밤 늦은 시간 텐트로 돌아와 추자도의 밤을 지냈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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