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16) '고내·광명 올레'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새벽 6시께 민박집에 덩그러니 혼자만 놓여진 자신을 발견하곤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거렸다. 이어 어제 남은 밥을 끓어 먹은 뒤, 떠날 채비를 했다. 어제 고내봉에서 만난 서울 아가씨는 오늘 나와 함께 걷자고 했는데.. 연락이 없다. 아쉽지만 어차피 헤어질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길을 떠났다.

▲ 뱃머리 모양으로 쉼터를 만든 모습이 인상적이다.
▲ 경치가 빼어난 해변가와 옛 등대(오른쪽 아래). 마을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생선기름으로 등대 불빛을 밝혔다고 한다.

피로가 겹친 탓인지 길 주변 용천수, 정자 등에서 쉬어가면서 걸었다. 길은 바다와 멀어지면서 다시 내륙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혼자 농로길을 외롭게 걷고 또 걸었다. 작은 오름을 넘고, 커다란 곰솔 나무를 지나고 저수지 뚝을 걸었다. 그러다 길을 나선지 처음으로, 아들과 올레길을 나섰다는 부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새 길에서 뒤쳐졌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었나보다. 코스 밖을 한참 돌아 나오는데.. 어! 저 멀리서 어제 만났던 서울 아가씨가 혼자서 걸어 오고 있다.

▲ 곰솔, 노부부, 코스모스길, 항몽유적지의 토성(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속으론 정말 반가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리곤 같이 길을 걸었다. 이후 노부부를 만나 일행은 어느새 4명이 되었다. 노부부는 은퇴 후 제주도에 임시 거처를 정하고, 이틀에 한 코스씩 돈다고 한다. 한가한 부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젊은 나이에 온갖 세상일들을 정면으로 부딛치고, 한 발 한 발 내딛어 가는 지금의 내 모습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 올레 16코스 종점에 도착한 필자 모습

이어 일행은 항몽유적지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생수를 사 먹었다. 그리곤 제주 올레길 마지막 코스를 함께 걸은 뒤 버스를 타고 제주시로 향했다. 다음날 18-1 추자도 올레길로 나설 계획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제주 본섬은 16코스까지 개설돼 있다. 추측컨데 추자도는 경치가 빼어나 18-1코스로 개장한 것 같다.

사실 나는 18-1코스를 걸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서울 아가씨가 계속해서 추자도 올레길을 권유해, 가기로 결정했다. 서울 아가씨와 내일 제주여객선터미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이어 나는 제주항 근처 여관으로 들어갔다. 주인아주머니는 방에 들어가기 전, 일단 숙박비부터 달라고 한다. 생각없이 거금 25000원을 줬다. 그런데 방을 배정 받은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냥 짐을 풀었다.

▲ 석양지는 탑동매립지.

방에는 에어콘이 형식적으로 달려 있고, 침대도 한쪽이 약간 내려 앉아 있다. 화장실도 맘에 들지 않는다. '에고~ 집 나오면 고생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더운 날씨 탓에 여관을 나와, 여관 근처 재래시장을 두리번 거렸다. 이어 괜찮게 보이는 식당이 한 군데 보여,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시간이 남는다. 나는 바닷가에서 잠시 쉬다가, 한림천 용천수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혔다. 제주의 생명인 용천수는 어딜가나 시원하다 못해 추위를 느낄 정도다. 용천수에 들어간 사람들은 추위에 입술이 파랗게 됐다. 너무 추워 운동을 하시는 분도 있다.

▲ 용천수에서 몸을 식히는 시민들.

제주시를 관통하는 여러 용천수들은 물줄기를 만들어 내면서 바다로 흘러 간다. 해가 지자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런데 에어콘 소리가 선풍기 소리와 뒤엉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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