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 찬반 주장 정리.. 구체적으로 다가가면 모든 게 시한폭탄

행정통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진주에선 주민연서를 바탕으로 사천과의 통합을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고, 사천에선 통합 반대 목소리가 큰 가운데 일부 찬성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어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통합을 찬성하는 쪽에선 어떤 이유로 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선 무슨 이유로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 '같은 생활문화권' '정서적 동질성'...

먼저 찬성 쪽 입장부터 살펴보자. 이 점에 관해선 주로 진주 측 입장을 반영하기로 한다.

이들이 통합 이유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이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라는 점이다. 고려 현종 때 전국을 ‘4도호부 8목’으로 나누면서 진주와 사천을 ‘진주부’로 포함시켰고, 조선 고종 때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도 진주부 안에 진주군과 사천군이 있었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

▲ 진주시 전경. 같은 생활문화권, 정서적 동질성 등을 이유로 진주시는 사천과 통합을 바라고 있다.
다음으로 ‘생활문화권역이 같음’을 들고 있다. 진주와 사천 지역주민들은 사천공항과 경전선 철도(진주역)를 함께 사용하고 있고, 고속도로와 국도 이용을 위해서도 주로 진주에 소재한 터미널을 이용하고 있다는 게 그 예다. 또 남강댐광역상수도망으로 공급되는 수돗물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통합 이유로 제시한다.

또 하나 ‘정서적 동질성’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사천 지역주민 중에는 진주에 소재한 학교를 다닌 사람이 많아 선후배 또는 직장 동료로서 친화감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진주중앙시장이 상권의 중심이었고, 병원과 극장 이용 등 문화생활도 비슷하게 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특히 항공국가산단, 사천국제공항, 경남도2청사 등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결집화’가 요구됨을 행정구역통합 필요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천-진주가 통합 하면 얻게 되는 점도 많다고 주장한다.

먼저 행정관서 축소에 따라 각종 운영비가 절감되고, 공무원수 감축, 각종 위원회 통폐합 등으로 연간 440억 원의 경비가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또 운동장과 문화예술회관, 보건소, 문화복지센터, 도서관 등 공공시설의 공동이용으로 중복투자 피해를 줄일 수 있음도 들고 있다.

이밖에 체계적인 도시계획 수립이 가능하고, 지역브랜드가 상승하며, 이를 통해 경쟁력이 커진다는 기대감을 표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통합 불이익은 거의 없는 반면, 투자예산 증가로 삶의 질은 향상된다”는 게 진주 쪽에서 주장하는 통합 찬성논리다.

▲ 사천-진주 통합안에 반대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는 곳은 삼천포지역이다.
"통합 주장을 위한 억지 논리" "산청 함양 남원과 먼저 통합을.."

이런 찬성논리를 통합반대파에서는 어떻게 바라볼까. 간단히 말해 “통합 주장을 위한 억지 논리”라고 반박한다. 사천-진주통합반대추진위원회가 진주의 통합 주장을 반박하며 내놓은 자료를 살펴보자.

먼저 사천과 진주가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이므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과거 역사만을 가지고 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고려시대 8목, 조선시대 23부였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오늘날 지방행정체제를 8~23개로 개편해야 되느냐며 반문했다.

‘생활문화권이 같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오늘날 전국이 반나절 또는 하루 생활권”임을 언급하며, 행정통합 기준으로 삼기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남강댐에서 수돗물을 공급받는다는 점이 통합의 이유가 된다면, 진주-사천 통합에 앞서 남강댐으로 물이 흘러드는 산청, 함양, 전북 남원 등과 통합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받았다.

이밖에 ‘정서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든 여러 가지 사례에 관해서도 “동의하기 힘들다”며 비판했다. 항공국가산단, 사천국제공항, 경남도제2청사 등의 문제는 행정통합이 아니더라도 서부경남 지자체가 서로 협력해 나가야 할 장기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통합효과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연간 440억 원의 행정경비 절감’ 주장에는 “옛 삼천포시와 사천군 통합 후 해마다 1652억 원(현재 화폐가치 기준)의 예산이 감소됐다”고 맞받았고, 각종 공공시설의 중복투자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오히려 중복투자 폐해가 커진다”며 경고했다.

진주시가 사천-진주 통합을 위한 주민연서작업에 들어가자 사천의 몇몇 단체들이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런 반박논리 외에도 통합반대추진위를 비롯한 사천-진주 통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전반에는 ‘경험에서 배어나는 불신’과 ‘흡수통합 우려’가 중요하게 깔려 있다.

사천지역민들이 진주시를 믿지 못하는 사례는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가 광역쓰레기매립장 사용불가 결정이다. 사천시 축동면과 진주시 내동면에 걸쳐 있는 진주권 광역쓰레기매립장은 1995년 통합 사천시 출범 이전, 옛 사천군과 진주시, 진양군이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매립장을 조성한 것인데, 통합 진주시 출범 이후 지금까지도 사천지역 쓰레기를 받아주지 않음으로써 갈등요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사천시가 진주시를 믿지 못하는 이유

최근 입주기업이 결정되고 건축설계 등이 진행되고 있는 ‘진주혁신도시’를 두고도 사천지역민들이 느끼는 섭섭함이 있다. 혁신도시의 위치를 지금의 문산 위치가 아니라 사천시 접경지역인 정촌면으로 지정해 달라는 사천시의 요청을 진주시가 거절한 데 따른 것이다. 사천시는 혁신도시가 정촌면에 들어설 경우 두 지역에 연담개발이 이뤄져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는 남해고속도로 사천IC 명칭을 남진주IC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다시 한 번 사천지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 외, 남강댐물의 사천만 방류로 사천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으면서도 정작 진주시는 그로 인한 온갖 혜택은 다 누리고 있다는 불만도 오래 전부터 이어오고 있다.

▲ 사천시는 진주혁신도시를 사천과 가까운 정촌면에 조성할 것을 진주시에 제안한 바 있다. 오른쪽 위는 2010년 전국도민체전이 열린 진주종합경기장. 오른쪽 아래는 진주시 문산읍 일대에 조성 중인 진주혁신도시.
통합반대파의 또 하나 걱정은 진주시에 사천이 흡수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걱정이다. 그 배경에는 인구문제가 있다. 현재 진주시의 인구는 34만 명 정도. 이에 비해 사천시 인구는 11만5000명 정도로, 1/3수준이다. 따라서 통합시 출범 후 많은 문제가 진주 위주로 풀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당장 시장부터 진주쪽 의사를 대변할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고, 중요 안건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는 시의회도 인구가 많은 진주지역 출신들이 장악할 가능성이 커, 이런 ‘흡수통합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천지역에서 사천-진주 행정통합을 반대하는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합 시너지 효과 등에 관해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진 않지만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시민이 의외로 많다. 특히 진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축동면과 사천읍, 곤양면과 곤명면에 이 같은 생각을 가진 지역민이 많은 듯 하다.

사천-진주 통합을 주장하는 강춘성 위원장
이 같은 사실은 진주상공회의소가 지난 10월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발표한 ‘행정구역통합문제 관련 주민여론조사’ 결과에도 나타난다. 사천시민 500명이 응한 이 여론조사 결과, 행정구역 통합 필요성에 관해 45.0%가 긍정적으로 답했고 부정적인 답 32.2%보다 높았다. 행정통합 찬반을 묻는 질문에도 찬성이 53.0%, 반대 30.2%로 찬성의견이 더 많았고, 통합 대상지역으로 절반 이상이 진주를 택했다.

물론 이 여론조사가 통합찬성의견을 적극 밝히고 있는 기관에서 의뢰한 것이어서 100% 신뢰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도 조사기법과 결과분석 등을 살펴볼 때 사천시민들 중 행정통합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민이 제법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음이다.

통합 주장에 앞서 통합청사 위치, 통합시 명칭부터 얘기 하자!

그렇다면 이들의 통합찬성논리는 뭘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진주지역 통합찬성파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23일 있었던 '사천시 사천-진주 행정구역 통합을 위한 추진위원회' 창립 현장에서 강춘성 위원장이 한 말을 인용해보자.

"통합이 되면 통합시의 막강한 힘으로 소외지역에 힘을 쏟을 수 있고, 행정의 불필요한 요소를 줄여 지역주민의 복지에 쓸 수 있다. 이미 예술, 교육, 문화, 경제 모든 것이 진주의 테두리에 있으며, 행정 외에는 이미 통합돼 있다. 통합 못할 이유는 없다."

사천이 진주의 테두리에 있다는 것은 같은 생활문화권임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결국 사천지역 통합찬성파 주장은 진주의 찬성논리와 맥을 같이하고 있음이다.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사천시 곳곳에 걸려 있다. 여기에는 진주시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음이다.
이상으로 살피건대, 사천-진주 행정통합 문제를 두고 그 필요성과 기대효과에 있어 상당한 견해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주민투표’ 방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다수 주민들의 생각이 어디로 흐를지가 관건인 셈이다.

그런데 뉴스사천에서 주관한 지방행정체제개편 관련 사천시민토론회에서도 제기되었듯이 통합청사의 위치나 통합시의 명칭 등 중요한 주제에 관해 사전에 협의가 된다면,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경북대 행정학과 하혜수 교수 역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지금 분위기로는 사천에서 통합찬성 여론이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진주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위해서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행정구역통합 위주의 지방행정체제개편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하 교수. 그가 생각하는 사천-진주 통합의 묘안은 뭘까?

그는 기본적으로 진주시가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행정통합이 원만하게 이뤄지려면 덩치가 큰 쪽에서 먼저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통합시청사를 사천시에 두거나 적어도 사천과 진주 경계지역에 둔다는 원칙을 먼저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선언만으로도 사천시민의 지지를 상당 수준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나아가 통합시 명칭을 정하는 데 있어서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진주시민들 중 상당수는 통합하면 당연히 ‘진주시’란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편향된 생각이다. 제3의 명칭을 쓰는 방법도 있을 테고, 외국 사례처럼 병기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마음을 터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도시명 병기’란 예를 들어 ‘진주사천시’로 지자체명을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 '진주사천통합건의 주민연서 추진위원회' 김진수 위원장(진주문화원장)은 통합청사를 사천에 두거나 통합시 명칭을 '진주시'가 아닌 다른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밖에 혁신도시에 입주하는 공공기관 가운데 바다 가까이 있어도 되는 기관은 삼천포지역으로 옮기고, 삼천포항 주변이 해양항만특구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등의 약속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시청 조직기구에 해운국을 신설하는 것도 삼천포지역 민심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경상대학교의 협조를 끌어내 항공우주특성화대학 캠퍼스를 사천지역으로 옮기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이런 정도의 약속이면 통합에 찬성할 사천시민이 더 많을 것임을 확신했다.

"통합청사 위치 미리 정하자는 건 절대 안 될 소리"

진주시가 통합 추진에 앞서 이 같은 제안을 먼저 한다면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진주지역 내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지난 21일 만난 '진주사천통합건의 주민연서 추진위원회' 김진수 위원장(진주문화원장)도 “절대 안 될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시청사 위치나 시명칭 등을 미리 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이런 문제는 통합부터 하고 나서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사천 내에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불합리한 제안을 해선 안 된다고 본다.”

참고로 김 위원장은 하 교수가 생각하는 제안을 하지 않더라도, 사천에는 이미 통합에 찬성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사천시민을 위한 제안’이 필요할 리 없다.

▲ 행정통합을 논함에 있어 막연한 주장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는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적어도 큰 밑그림에 관해선 미리 협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삼천포대교 주변에서 에어쇼 하는 장면.
어쨌거나 하혜수 교수의 제안은 행정통합에 관한 ‘막연한 기대효과’나 ‘무조건 반대’ 주장만 난무하는 속에서 그나마 ‘구체적’이다. 이를 두고 사천시민의 생각을 묻기는 성급해 보인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진주에서 실제로 그런 제안을 해올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 문제에 책임 있게 답할 주체는 최소한 진주시인데, 그런 진주시가 민간단체만 전면에 내세운 채 몸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정통합을 둘러싼 논란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통합을 원하는 진주쪽에선 통합 이후 발생할 문제에 대해선 가능한 언급을 피할 것이고, 통합을 반대하는 사천쪽에선 통합 이후 발생할 여러 가지 문제점을 먼저 부각시킬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에 하나 통합이 됐을 경우 그 뒤에 닥칠 후폭풍이 만만찮다는 것이고, 모든 문제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통합 창원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경상대 행정학과 최상한 교수의 충고를 덧붙인다.

"행정통합에 있어 통합시의 명칭과 신청사 건립 등은 언제든지 지역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는 사전에 충분히 협의를 거치거나 최소한의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애써 외면한 행정통합은, 인구와 경제 규모가 큰, 힘 있는 시가 인접한 힘 없는 시를 삼키는 것에 다를 바 없다."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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