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통곡>(1) 소설로 만나는 1957년 비토 한센인 학살사건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 한글 고대소설 ‘별주부전’의 고향으로 불리며, 싱싱한 해산물과 아름다운 풍광으로 관광객을 끌고 있는 매력적인 섬이다. 최근엔 사천시가 적잖은 사업비를 들여 비토관광단지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섬 비토는 시대의 아픈 역사도 함께 간직하고 있으니, 1957년 여름에 발생한 ‘한센인 집단학살’이 그것이다. 한센병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고 국가 정책마저 정비가 부족하던 시절,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나환자들을 비토리 마을주민들이 역시 같은 이유로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건이다.

이로 인해 최소한 26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더 많은 숫자의 사람이 다쳤지만 가해자 처벌은 부족했다.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사건 이후에도 한센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숨겨지고 잊혔던 사건은 반세기가 더 흐른 뒤 국가인권위원회의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로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이미 수 십 년도 더 지난 일, 이제와 꺼내 봐야 뭐하겠나?”라며 인터뷰를 거절하던 한 생존자의 말처럼,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니 가슴 아프다. 하지만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도 엄연한 우리의 역사다. 희생자를 애도하고, 나아가 지난 일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화해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빈다.

당시 사건을 재조명하는 기획기사 <끝나지 않은 통곡>은 그런 뜻으로 쓰였다. 그 첫 번째 글은 소설형식을 빈 것으로, 사천의 향토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온 김학록 시민기자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상상력을 보탰다. 따라서 약간의 허구가 가미된 ‘소설’임을 밝혀 둔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문둥이’라는 표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양해 바란다. 삽화는 오지영 시민기자의 솜씨다. -편집자주-

맴 맴 매~~~앰. 매~~~~~~

“해임! 우찌 된다쿱니꺼?”

잠기지 않는 옷고름과 씨름하며 마상이가 불쑥 내 뱉는다.

“잘 안 되까이, 우리도 사람인데…….”

“아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된기지예.”

마상이는 기어코 옷고름을 매는데 성공한다. 마상이도 코가 없다. 토끼 눈이다. 병으로 입술이 볼 근육에 당겨 붙었다. 조금만 흥분해도 침이 튀며 처음에는 알아듣기가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는 별 문제될게 없다. 여기 사람 대부분 그렇고 다 알아 듣는다.

“해임도 생각해 보이소. 지서 주임이 왜 나가라 캐겠심니꺼? 송부장 말 대로라 카믄, 시장님이랑 농은 지점장님이랑 장로님이 허락을 받았다믄서……”

마상이 말이 맞다. 경찰서장의 입도 허가를 지서주임이 거부했다? 비토 섬 주민의 서슬에 밀려 나가라고 할 순 없는 것이다. 지난해 농림부장관 귀속토지 임차훈령을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잔치 분위기였다. 지난달 17일 자격문제로 각하결정을 받았고 게다가 비토 섬 입도 후에 강제 추방까지 받고나니 사실 맥이 풀렸다.

말대로라면 처음에는 진주지역 치안당국도 적극 협조한다고 했단다. 도시에서 구걸하는 것이 미관상도 안 좋고 정착촌을 만들어 거주하는 것이, 국가 입장에서도 이익이라면서 말이다. 그랬으면서 도당국이 자격시비로 불허결정을 내리는 게 뭐란 말인가. 형식적 불허 결정이니 신경 쓸 것 없다고 하지만, 섬 주민과 지서 순경이 강경하게 추방했다면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첨엔 그런깁니더. 주민들이 문디들이 들어오모 누가 좋아라 하낍니꺼? 한두 번은 그리 하는기지예. 그라다가 주민이 지치면 고마 받아들이는 거 아이겠습니꺼? 그라고 어제 다시 경찰서장님한테 장로님이 입도승낙을 받은 기 그거라요. 안되는 기믄 우예 입도 허락을 하낍니꺼?”

몸이 성한 송부장은 벌겋게 달아 연신 땀을 닦으며 괜찮을 거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한다.

마상이는 못 믿겠다는 눈치다. 지난 8일, 36명의 개척단이 장로님과 부장의 말만 믿고 서툰 손으로 뙤약볕에 개간지를 일구다가 쫓기듯 밀려나서 돌아 온 것이 못내 분하다. 마상이는 선발대였다.

매미울음소리에 귀가 멍한지 연신 돌멩이로 소리 나는 쪽으로 날려대지만 잠시 멎었다가 이내 시끄럽게 울어댄다.

“해임! 뜨겁십니더. 이리 올라 앉으이소” 포구나무 꺾어 만든 부채로 연신 부쳐대며 말을 이어간다. “이번에는 해임도 같이 가입시더. 문디라꼬 다 무식한기 아이란 걸 보이주고……”

마상이는 소록도 난리를 피해 도망 나왔을 때 진주 숯골 구생원에서 만났다. 키는 또래보다 작지만 날렵해서 곧잘 산비둘기며 토끼나 꿩을 잡아 왔다. 구생원 짐살이 시절부터 형님으로 따르고 인륜으로 끊긴 형제애를 이어준, 천형으로 맺은 동생이다. 그래서 구걸도 같이 가고 잠자리도 같이 해 온지 7년이 넘었다.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터라 내가 글줄을 조금 안다고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에 쫓겨 삼천포로 피난 왔다. 이곳 영복원이 자리 잡을 때 수없는 고생을 함께 견뎠다. 보도연맹 총살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한 터에 인민군의 관련자 색출, 뒤이어 와룡산 빨치산 토벌 등으로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다. 더더욱 우리는 환영받지 못할 거렁뱅이 문둥이였다.

하지만 영복원은 삼천포 시내에서 제법 떨어져 괴롭힘도 덜하고 산불령 고개 너머에 자리 잡아, 지역주민들로부터 격리된 공간이어서 그나마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물이 귀해 뭘 해도 소출이 적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처음엔 40명 남짓이었던 영복원 식구도, 알아서 찾아들고 치안당국을 통해 들어오는 신입이 점점 늘어났다. 7년 만에 280명을 넘었고 구호식량만으로 끼니 해결이 어려운 지경에 와 있다. 그런 중에 영복원 바다 건너 비토 섬의 귀속임야 임차 이야기가 나왔고 실현 가능성에 영복원 정착민 모두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다 건너 비토 섬을 내려다보다가 일어선다. “참 닮았다. 작은 사슴에 나는 토끼라…….”

“해임, 뭐라꼬예 사슴하고 토끼가? 오데 예?”

툭 불거진 눈으로 게슴츠레 부채질을 해대다 연신 두리번거리며 묻는다.

“아이다! 바람 한 점 없이 물쿧는게 날씨가 예사롭지 않겄다. 내일 비토 섬 가는 기 급한 기 아이라 짐살이 단속부터 해야겄다.”

온 종일 비바람이 쳤다. 큰 나무가 부러지고 토사가 밀려 내려와 사태가 지고 정착촌도 엉망이 돼버렸다. 잠자리며 가재도구가 밀려온 토사에 엉망이 돼 버렸다. 영복원 앞바다는 누런 황토색 바다로 변했고 바닷물은 연신 뒤집히며 포말을 만들어 낸다. 이곳에 자리 잡은 이래 이런 비바람은 처음이다. 8월19일 입도 계획은 뒤로 미루어야 했다. 태풍7호로 폭격맞은 폐허처럼 쑥대밭이다. 신작로가 끊기고 곳곳에 산사태가 발생해 피해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지경이라 당분간은 배를 타고 움직여야 된다.

태풍피해를 대충 복구한 22일 아침이 돼서야 비토 섬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무동력 전마선 3척에 나누어 타고 섬에 도착하자마자 군용 야전천막부터 치기 시작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여도 시간으로 한 시간이요 10리는 족히 돼 보여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다. 사천만이 항아리 형상이라 나들물에 사천만을 가로지르는 것이 힘에 부친다. 흡사 배가 옆으로 떠내려가는 듯 물살이 세다.

그래도 어저께 내린 비로 땅이 물러서, 그나마 작업이 수월하다. 지난 8일보다 수적인 면에서 3배 많은 사람들이 개척단에 합류해서인지 일손이 빨라져 금방금방 밭이 만들어 진다. 붉은 황토 흙이 기름져 뭘 심어도 잘 자랄 것 같아 보인다. 보리는 빠르고 고구마는 늦었고, 행복한 농부의 고민을 가져 본다. 그나마 성한 사람을 차출하다보니 남녀가 따로 없다. 부부지간에 손을 보탠 이도 제법 있다. 손이 성하지 않아 광목으로 호미자루에 묶고 땅을 파야했지만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저녁나절이 다 되어서 비토 섬 주민 일단이 몰려 왔지만 지켜만 볼 뿐 별다른 충돌이나 말싸움도 없었다. 다음날 지서 순경이 와서 출두요구서를 주고 갈뿐 일을 방해하거나 지난번처럼 쫓아내지도 않는다. 송부장 말대로 ‘한번 찔러 보고 짐짓 받아들이려는 건가’하는 안도의 눈치가 개척단에 감돈다.

우리 나환자에게 허락된 ‘가나안’의 땅이 생긴다니 꿈만 같다. 천형과 같았던 혈연과의 단절, 핍박과 냉대, 병균 대하듯 배척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의 땅이 비토 섬이었다. 부부원생을 포함 100여명은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24일 서포지서를 다녀 온 장로님 일행은 수심에 찬 표정이다. 귀속토지 무단점유의 문제가 아니라 비토 섬 주민의 결의에 행정당국이 눈치를 보더라는 이야기다. 도와주고 싶지만 행정당국이 처리하지 않으면 비토 섬 주민이 실력으로 쫓아내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는 이야기다.

비토 섬의 원주민 120호에 800명이 먹고 살기에도 소출이 부족하단다. 국가보조로 조성해 놓은 굴밭이 나환자와 같이 살게 되면 ‘병 옮는다!’소문이 돌아 장사꾼이 사가지도 않을 테고 식수를 같이 쓰다가 나병이 걸리면 자신들도 살아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데 아무리 나라 땅이고, 내 땅이 아니라 해도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27일까지 자진해서 퇴거하기로 각서를 제출했단다. 모두 마음이 뒤숭숭하다. 일손을 놓고 만다. 비토 섬 동쪽 끝에 위치한 귀속임야는 원주민이 사는 지역과 가늘게 연결된 섬 안의 섬이다. 해안가에서 펑퍼짐한 곳에 짐자리를 잡은 까닭에 영복원 개척단이 있는 곳은 아래쪽이다. 해송(海松) 숲이 보이는 고개 마루 너머는 섬 주민이 사는 마을로 향하는 간석(干潟)모랫길이 나온다. 섬 주민은 고갯마루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두려움이 만든 심적 임계선이다.

비토주민 일단이 고개 마루에서 우리 쪽을 내려다보고 손짓으로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습만 보일 뿐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바닷가 멀찍한 거리에 비토 섬 주민으로 보이는 전마선 서너 척에 나누어 타고 우리 배가 있는 곳과 거리를 두고 대치하듯 움직인다.

여름밤 빈대들의 극성과 풀모기의 만찬으로 몸은 원래부터 성치 않았지만 빠끔 한데가 없어 더 이상 잠을 청하기도 어렵다. 갑작스런 상황에 대비해 불침번을 세워둔 동료와 교대를 해 준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하루였다. 언덕 위에 모이는 주민의 수도 점점 늘었다. 돌무더기를 나르는 듯 비토리 장정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무딘 손과 쟁기질에 묵은 땅이 벌겋게 옥토로 바뀌어 뭐라도 심으면 배곯는 일은 없겠다 싶지만 처음 며칠의 생기는 온데간데없다. 힐끗힐끗 마을 사람들 쪽만 쳐다보고 말문을 닫고 일만 하고 있다.

언덕에서 지서순경이, 10여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장정을 대동하고 우리 개척단이 있는 곳으로 내려온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개척단 식구도 그 앞으로 모인다. 지서 순경은 전과 다르게 무장을 했다. 적개심이다. 우리 겉모습만으로도 분명한 위협을 느끼는 듯하다. 두려움은 공포로 변하고 그 공포는 적개심으로 표출된다. 소총을 한 손에 들고 장정들에 에워 쌓여 강경한 어투로 말한다.

“금일 자진퇴거일이다. 면장 실에서 약속을 하고 각서를 썼으면 떠나야지 왜 계속 점거를 하고 있나?”

서슬이 퍼렇다. 하지만 묘한 느낌이 든다. 더 가까이 오지는 못 한다. 10보 남짓, 보이지 않는 거리를 두고서 대치다. 유독과 무독의 경계선이다.

소록도의 무독(無毒)지대와 유독(有毒)지대로 갈라놓고 철조망으로 구분해 놓았던 경계선에서의 그날의 대치가 떠오른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고 이틀이 지나서 사토원장과 일본인이 떠난 날이다. 조선인 의사 이시가와와 조선인 행정직원 간의 운영주도권 암투에서 직원대표로 오순재를 뽑아 이시가와가 밀리자 식량과 약품창고를 열어 보급품을 녹동으로 빼돌린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린 사건이 떠오른다.

흥분한 원생들은 농기구인 괭이와 낫 그리고 몽둥이로 무장하고 무독지대인 관리동 지역으로 밀고 넘어 가려 했다. 그날 밤, 형무소와 감금 실에 갇힌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유독지역에 있던 신사에 불을 놓던 혼란의 밤이었다. 해방이어도 해방될 수 없는 갇힌 자들의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죄 없이 갇힌 자들의 살기 위한 절규였다. 그날 밤의 흥분은 감시원의 총알세례가 있고서야 진정 되었다.

“땅! 땅! 땅”

총성이다. 위협사격이다. 지서 순경은 공중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혼비백산한 개척단은 흩어진다. 저항의 의지는 총소리에 사그라진다. 야전천막으로 숨어든다. 불안한 영복원 개척단은 방어적 저항의 자세를 갖춘다.

해방 닷새가 되던 8월의 그날 밤 몇 명이 죽었는지 모른다. 다만, 날이 밝고 10시에 교섭을 재개한다는 말만 듣고 기다렸건만 각 부락 총대와 부대를 포함한 간부원생은 모두 포박돼버렸다. 다음날 증강 배치된 녹동치안대는 모두 84명을 쓸어 버렸다. 죽창과 소총으로 찌르고 갈겨대고 소록도 중앙광장은 피비린내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진료실 앞 백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시체를 던졌다. 전쟁물자로 쓰기위해 채취한 소나무 진액인 송탄유(松炭油)를 두 항아리나 붓고서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까지도 태워 죽였다. 그날에 죽어간 원생은 그들에게는‘병균덩어리’였다.

그 아비규환을 피해 목숨을 걸고 탈출해 진주로 피난 와서 오늘에 이르렀건만 또 다시 그날이라 직감한다. 육신이 비틀린 것도 서러운데, 모진 질시와 핍박만도 서러운데, 동냥으로 밥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섬 하나 조용히 개간해서 먹고 살아 보겠다는데, 그렇게 총질까지 해댈 일이냐고 항변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다. 오늘을 넘기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으름장과 최후통첩을 남기고 그들은 돌아갔다.

섬진강 백사장이 보고 싶어진다. 울 엄마의 보드라운 미소, 환하게 웃으며 머리카락 넘겨주던 손길이 그리워진다. 몰라3년 알아3년 썩어3년의 모진 병에 들어 골방에 가두고 서럽게 울던 울 엄마를 뿌리치듯 박차고 나온 우리 집 대문간이 눈에 선하다.

“해임! 베끼 행님을 데불고 왔는갑다.”

넉넉한 자리인데 잔뜩 웅크려 있기에, 자는 줄 알았던 마상이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해임은 옴마 안보고 접소?”

“뭐한다고 보고 접겄노!”

“우리도 안 아팠시모 저리 했시까?”

“내일 또 시끄러울 낀데 고마 자라…….”

광포 거적때기로 배게를 만들어 마상이 머리에 받쳐 주고서 천막 밖으로 나온다.

초승달이 벌써 진다. 점점이 박힌 별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조용하다. 오늘따라 파도소리조차 없다. 어쩌면 내일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영복원을 떠나올 때 부풀었던 꿈을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할지 모른다. 일주일이 참 빠르다. 갯냄새는 같을 진데 무거운 공기는 전과 다르다.

잠이 깊이 들었었나. 소란스런 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부터 섬사람들이 작정한 듯 욕을 해댄다. 돌멩이가 날아든다. 중과부적이다. 성한 사람 돌팔매에 대항해 던져 보지만 반도 날아가지 못한다. 아니 엉뚱한 데로 날아가기 일쑤다. 부상자가 속출한다. 머리가 터져 선혈이 낭자하다. 지서경찰이 나서서 그만하라고 말린다. 약이 없어 담배가루로 지혈을 하고 광목을 찢어 상처부위를 동여맨다.

정오 시각에 마을 장정들은 술이 얼큰하다. 농주의 힘을 빌어 용기를 얻고 육신에 술을 들이켜 소독을 한다. 임계선 언덕너머에 죽창이 보인다. 괭이와 낫을 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댄다.

“문디. 잡놈의 새~끼들! 그따구로 게기고 있으모 배때기를 찢어뿔기다!”

갖가지 욕을 늘어놓는다. 개척단 아낙들은 눈을 감고 눈물로 기도한다. ‘하느님이 천하다고 버리신 게 아니라 이 병으로 하느님을 만났으니 당신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가질 수 없었던 신앙심이기에 천형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기도를 한다.

징소리가 들린다. 함성소리가 들린다. 그동안 유독지대와 무독지대로 나뉘었던 편견의 대치선이 무너져 버렸다. 낫과 괭이, 몽둥이와 돌덩이, 죽창으로 무장한 백여 명의 섬 주민들이 개척단이 모여 있는 천막으로 일제히 달려든다. 임계선이 무너졌다.

죽창으로 찌르고 낫으로 베고 돌로 찍어 내린다. 손에 동여매듯 묶은 낫이나 호미로 저항해보지만 들리는 건 개척단 식구들의 비명소리다. 머리통이 깨지고 피가 낭자하게 흐른다. 죽창에 허벅지를 찔려 기다시피 해안가로 나가보지만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 전마선의 노로 사정없이 내려쳐 비명소리 한번 못 내보고 숨이 떨어진다. 돌려보내지 않을 태세다.

“저는 문둥이가 아입니더~ 살려주이소!”

“문디랑 같이 살모 니도 문디 아이가”

절규하듯 남편의 몸을 안고 빌고 있는 부녀자에게 날아드는 목소리는 냉랭하다. 죽창으로 가슴을 찌르고 돌로 머리를 가격하자 고통에 사지를 비틀다가 숨이 끊어진다. 지옥이다.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거나 저들이 사람이 아니다.

마상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천막을 찢듯이 열고,

“해임아! 어서 도망가라꼬, 어서!”

끌어 안 듯 잡아당긴다. 천막이 무너져 내린다. 곧이어 사정없이 천막위에서 죽창으로 찔러대고 돌로 찍어 댄다. 옆구리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힘이 빠진다. 이마 쪽에 섬광이 번쩍! 갑자기 함성소리와 징소리가 아득해 진다.

매캐한 석유냄새가 코를 찌른다. 땀과 피가 범벅인 옷을 추슬러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뉘엿뉘엿 해송 숲 너머로 떨어진다. 지서순경과 와이셔츠 차림의 신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겹겹이 쌓인 참혹한 주검이 불구덩이에서 타고 있다.

마상이가 안 보인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도 나를 찾던 마상이가 안 보인다. 정신없이 허둥지둥 들춰 보고 불러 보지만 어디에도 대답은 없다. 땅거미가 지고 세상이 어둠에 묻힐 때까지 샅샅이 뒤졌다. 뜨거운 불구덩이만 빼고 다 훑었건만 마상이를 찾을 길 없다.

살아남은 목숨은 살았어도 산 게 아니다. 살아 있어도 삶의 등불은 싸늘히 식어 버렸다. 비토리 정착촌의 개척인은 이날로 모두가 죽었다.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약한 자를 배로 저어가 노로 쳐 죽였으니 다 죽은 거다.

초승달은 밝지 않아 눈대중으로 영복원을 찾아 한 없이 불러보고 울어보지만 마상이는 벌써 건너갔나 보다. 영원의 복락지 영복원으로 벌써 떠났나 보다.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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