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14) 4코스 '망오름과 거슨새미'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잔디가 깔린 표선해수욕장에서의 야영은 전날 비양도에서의 야영보다 훨씬 편안했다. 6시께 잠에서 깨어 텐트 밖으로 나오니, 텐트 앞에 이온음료수가 한 병 있었다. 아하~ 서울 젊은이가 9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더니.. 아침 일찍 출발하면서 어제 먹은 저녁과 술값 대신 두고 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언제 만날지 기약도 없는데 서로 잔잔한 정을 나눌 수 있어 기분이 좋다. 그리고 서울 젊은이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인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 짐을 꾸려, 8시께 해수욕장을 출발해서 작은 분식점에 들렀다. 이곳에서 아침으로 성게칼국수를 먹었는데, 성게칼국수는 맵싸한 국물맛과 성게맛이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서, 다시 지루한 바닷길을 혼자서 걸었다. 그런데 자꾸 발바닥이 불편해서 신발을 벗어 확인해 보니 양쪽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지금까지 등산을 하거나 작년 올레길 여행에서도 단 한 번도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적이 없었는데 너무 방심했나 보다.

등산화 안을 자세히 보니, 반바지를 입고 있어 걸을 때마다 잔돌들이 등산화 안으로 들어가 발바닥을 괴롭힌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가져간 1회용 밴드를 발랐다. 그리곤 '애고~ 지금까지 내 사전에 물집은 없었는데'라는 건방진 생각이 이번 여행에서 나를 괴롭힌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반성하며, 길을 나섰다.

▲ 표선 해수욕장에서 남원포구로 가는 길

그렇다고 약간의 통증 때문에 길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남들에게 측은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기 위해 애를 쓰면서 바닷길을 걸었다. 걷다가 작은 마을의 정자에 배낭을 풀고 쉬고 있는데, 대형 승용차 한 대가 멈추더니 나이드신 60대 부부가 내려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곤 커피를 끓여, 한 잔 권하신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노부부와 이야기 도중 저 멀리서 여자 한 분이 걸어 오시는데 영락 없는 올레꾼이다. 노부부께 먼저 인사를 하고, 출발해 그 분에게 인사를 하고 일행이 되었다.

▲ 망오름을 넘어가는 길

그 분은 제법 연세가 드신 분이었는데, 고향이 대구이지만 제주도의 오름이 너무 좋아서 여기로 이사 온 지 3년이 되었다고 한다. 틈만 나면 혼자서 이렇게 제주길을 걸어 다니신다고 하시는데, 걷는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 분과 한참을 걸으며, 망오름을 넘고 거슨새미를 지나니 4코스 종점이 보인다. 속으론 '제발 저기 정자에서 쉬어갔으면 좋겠는데..' 그 분은 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이 먼저 쉬어가자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웠다. 그런데 마침 모퉁이에 가게가 있어, 생수 산다는 핑계로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 4코스의 종점인 남원포구 표석

4코스 종점인 남원포구에 도착하니, 오후 4시30분이다. 함께한 올레꾼과 잠시 쉬었다가, 큰 길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갔다. 나는 "열심히 걷다보면 언젠가는 길에서 만나겠지요" 하면서 못내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는 서귀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귀포시에서 다시 돈내코 야영장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타는 것은 영 죽을 맛이다. 택시비 15000원 아끼려 제일 가까운 버스종점에서 내렸는데, 체력이 바닥나서 연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이마에선 땀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 맛있는 저녁식사

야영장을 목이 빠지게 찾다 겨우 야영장에 도착했다. 이후 텐트를 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식사가 끝난 뒤 몸을 씻고 잠을 자려는데, 열대야 때문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한라산 기슭의 야영장에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야영장 주변을 맴돌다 마르지도 않은 빨래를 억지로 껴입고는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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