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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믿어요

2022. 04. 06 by 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뉴스사천=구륜휘 작가] 삼천포와 남해를 잇는 연륙교 위에 케이블카를 타고 서 있었다. 뭍으로 몰아치는 파도가 아닌 바다를 보았다. 누군가는 시계 방향으로 돌고 누군가는 남쪽으로 흐르려 애쓰고 있었다.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물길을 만들었다. 남해로 가기 위해서 지나치는 물길은 가고자 하는 방향의 때를 잘 타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들었다. 바다의 소용돌이처럼도 보이는 저 물결들의 엇갈림을 멍하니 보았다. 케이블카는 탈 때마다 아찔하게 좋았다. 어긋남 속에서도 빛나는 물결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 속에서 봄을 찾았다. 

나는 봄에 아프다. 많은 봄날을 폐쇄병동에서 보냈을 정도로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무사하게 이 봄이 지나가기를 바라지만 꽃을 보면 나도 둠칫둠칫 마음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연약한 것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연약한 것. 그건 나와 다를 바가 없다. 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은 벚꽃이 될수도 있고 유채꽃이 될수도 있고 진달래가 될수도 있다. 흔들리고 연약한 것은 바로 나였다. 

어쩌다가 나는 강해지기 시작했을까? 약한 것을 연민하는 초조한 마음의 발동인가? 우월감에서 느끼는 권위자적 시선인가? 나는 나를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보지 않은 강함을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꽃을 보고 강한 마음을 느끼는 스스로를 자조하기로 했다. 자조를 하되 그것에 매몰되지는 않기로 했다. 강함을 경계하며 연약한 몸과 마음을 보살피기로 했다. 

아직 자라는 사람이다. 아직도 성장의 통증을 경험하고 싶다. 누군가 내게와 말했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서유석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그 말을 들으며 누군가는 꼰대의 말 같다고 웃었다. 나는 노래 제목을 마음에 담아 놓은 그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울 때 더 빛나는 것이다. 새까만 얼굴에 조용한 성격의 그는 맑은 눈을 가졌다.

나는 그가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할아버지도 멋있어요.”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젊음에 비할 수 없다며 스스로 고민하고 계셨다. 평상에 앉은 나와 바다에 기댄 그 사람은 무언가 순간 공감했다. 나 또한 나이 들어 갈 것이고 나 또한 지금의 할아버지처럼 바다에 기대에 고민하는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공감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맑은 눈을 보면 연령과 관계없이 그저 친구 같다. 그래서 친구들은 한창 나이가 많거나 너무 어리거나 조카이거나 그렇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대로 멋짐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는 멋진 어른이다. 조용한 성격을 가졌지만 쉼표(,)가 있을 때 그 쉼표를 고민할 수 있는 능력자임을 안다. 

젊음은 허상이 아니다. 그런데 나이든 후 돌아보는 젊음은 허상처럼 공허할 때가 생기나 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사람의 눈빛이다. 눈 안 희뿌연 안개가 있던 우리 할머니, 눈동자와 동공이 그저 맑다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신의 눈빛을 말하는 시간을 들여다보세요. 앞으로 나이는 눈빛으로 세어보세요. 내가 무엇을 보고 예뻐하는지 어떤 것을 보고 기분이 좋은지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지 세세하게 들여다보세요. 난 당신의 시간을 같이 걸어갈 수는 없겠죠. 하지만 우리는 친구니까 다들 퇴근하는 무렵 한산한 카페 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은 어부인 우리 아버지가 남해로 배를 타고 갈 때 쓰는 거예요. 물길을 알아야 하거든요. 물때라고 하던가요? 삼천포 물길은 제멋대로래요. 그래도 길을 만들어 주는 시간이 있다고 하셨어요. 세월을 쪼개면 시간이 되고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잖아요. 육지에 머무는 우리에게 시간은 눈빛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어요.’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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