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Q

언제까지 종으로 살래?

2022. 03. 03 by 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뉴스사천=구륜휘 작가] 선생님이 말했다. “륜휘야, 언제까지 종으로 살래?” 종은 순우리말로 두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예전에, 남에 집에 딸려 천한 일을 하던 사람이다. 둘째는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하나뿐인 선생님을 나는 대학에서 만났다. 첫 수업 시간에 등록금을 시간 단위로 환산해서 알려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 수업 시간에 몇 번이고 가방을 둘러메고 나가던 학생이었다. 수업이 하찮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많이 아파서 그랬다. 대강의실에서는 쉽게 공황을 겪었고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없으면 집중해서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한 이십대가 있었다. 그런 나를 지켜본 선생님은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자신의 애인이나 딸이라고 말했다. 집에서도 구박하는 나를 자식처럼, 애인에게도 상처받는 나를 더 애인처럼 어여삐 봐주셨다.

“언제까지 종으로 살래?” 요 며칠 내 머릿속을 맴도는 화두였다. 세상에도 벽이 있다. 쾅쾅 부딪혀도 깨지지 않는 머리가 있고 벽이 있었다. 숨 가삐 호흡하며 선생님에게 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선생님은 말한다. 선생님의 말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고민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에 너무 신이 나서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나만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유일감으로 다시 일어서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선생님에게 안부를 전했을 때 들은 말이 화두가 되어버린 요즘이다. 

대학 때 수업시간에 한 교수님은 매트릭스를 우리의 삶에 비유했다. 모피어스 같은 이가 나타나면 파란약 먹을래? 빨간약 먹을래? 대부분은 노예처럼 살기를 싫어했다. 나는 그때 사이퍼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손을 번쩍 들어 질문했다. “노예처럼 살면 뭐가 문제죠?” 그 교수님은 나를 수업에서 배제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차단하는 삶. 그게 매트릭스가 아닐까 교훈을 남기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사이퍼라고? 종이라는 말에 옛날 다른 수업이 떠올랐고 노예 같은 삶을 떠올려본다. 지금 내가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고? 그런 것 같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조롱하고 천박한 웃음을 남기며 돌아서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기는 하다. 고민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느려도 정직한 말을 내뱉는 사람을 존중한다. 바깥에는 개가 뛰어다니고 있다. 

「선생님. 저는 길을 잘 모르겠어요. 요즘 카페에서 일하면서 생활 패턴이 정해져서 잠깐씩 책을 읽는 것 외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드물어요. 라떼가 어떻게 하면 맛있어질까를 매일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있는 곳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데 마음처럼 잘 진행되지는 않아요. 방향을 상실해버렸는데 정신은 옛날보다 튼튼해져버려서 이 세상의 부품처럼 살고 있어요. 」

선생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나사 하나를 조일 때 우주를 조이면 되겠네!” 

나는 또 금방 답장하지 못한다. 저 말을 이해해야 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해를 마치면 다시 답장하기를 누른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