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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발견
[일상의 발견] 고물상 할배가 사라졌다
2021. 05. 25 by 구륜휘

[뉴스사천=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구술생애사라는 게 있다. 어르신이 일생을 구술하면, 그것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평소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우리 할머니의 독특한 삶이 재밌어서 노래로 만들어 부를 정도였다. 할머니는 목계라는 마을에서 자라셨다. 시집을 온 뒤에도 항상 고향의 꼬리표는 그녀를 대신해 불리었다. 목계댁(宅)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들리기에 “모깨때기”가 되었을 정도였다. 모깨때기라는 드센 발음만큼이나 할머니의 성격도 드세게 모가 났다. 항상 사춘기를 보내는 우리 마을의 외톨이가 된 셈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모깨때기는 하나의 욕처럼 들렸다. 내가 마을 어귀를 걷는데 앉아 계신 어르신들이 모깨때기 손녀 지나간다며 이렇게 놀렸다. “우찌 저리 모깨때기를 닮았을꼬” 그러면 반사적으로 나는 한참이나 어른인 그들에게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네가 모깨때기 닮았다”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할매와 할배가 모깨때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어르신들을 공방에서 마주한다. ‘바다가 분다’를 지나치지 못하고 방앗간처럼 들르는 할배가 있다. 삼천포에서 고물상을 하는 할아버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름을 여쭤봤지만 알려주지 않으셨다.) 굳이 할배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더 이상 묻지 않은 것이다. 할배는 아침 산책과 오후 산책을 하는데, 장날에 주로 두 번 다 공방에 들렀다. 집을 나서는 길에는 검은 봉지를 들고 가면, 올 때는 햇반 세트, 즉석식품이 된 떡국이 빵빵하게 검은 봉지를 채웠다. “할아버지, 김치는 있어요?”하고 물었고 우리는 김치를 나눠 먹는 사이가 됐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날도 장날이었다. “할아버지! 마스크가 너무 닳았어요”하며 핀잔을 주니 일반 마스크가 불편해서 그것만 써서 그렇다며, 웃으셨다. 할배를 생각하며 새부리형 마스크를 주문하는 나였다. 퇴근하는 길에 고물상에 들렀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인기척이 없어서 마스크를 문 앞에 놓아두고 돌아왔다.

할아버지가 사라졌다. 며칠이 지나도록 고물상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불은 켜 있지도 않았다. 나를 딸내미라 부르며,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꼭 모깨때기 같았는데.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셨을까? 코로나19가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갔을까? 내가 맨날 바보라고 놀려서 화병으로 도망 가셨을까? 할아버지가 잠시 들른 곳이 병원이기를 바랐다. 너무 먼 곳이면 딸내미도 못 보고 김치도 못 얻어먹으니까 빨리 퇴원하길 바랐다. 

할아버지는 혼자 살았다. 혹시나 위급한 상황으로 큰일이 난 것이 아니길 바라며 나는 기도를 할 뿐이다. 할아버지는 교회에 가면 오만 원을 준다며, 토요일마다 세탁소에 들르곤 했다. 같은 세탁소를 이용해서 사장님에게 “우리 손녀다”라고 놀리실 때의 머쓱함이 또렷하게 느껴지는데.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셨을까? 혼자 살았으니까, 고독하게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걱정으로 할배만으로 가득한 밤을 보낸 지 며칠이 지난지도 모르겠다. 

우리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우리 할아버지 같은 고물상 할아버지의 연락을 아시는 분은 꼭 할아버지의 안부를 전해주세요. 삼천포 동금동 고물상 할아버지를 발견하시면 꼭, 바다가 분다에 들르셔서 안부를 알려주세요.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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