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이주노동자와 함께 떠난 사량도 지리산 산행

산들이 멀리 북쪽에서부터 하나 둘씩 빨갛고 노란 가을 옷을 입기 시작하던 지난 일요일(16일), 사천네트워크와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 삼천포산악회가 ‘아름다운 산행’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지난 2008년부터 진행된 ‘아름다움’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번에는 장애인 대신 지역 이주노동자(=다문화 친구)들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아름다운 산행’을 주관하는 사천네트워크에 따르면, ‘아름다운 산행’은 앞으로 매년 상반기는 장애인과 하반기는 다문화 친구들과 함께 진행된다고 합니다.

또한 이번 산행에는 색다른 점도 있습니다. 이번 목적지가 ‘섬 안의 지리산’이라는 것입니다. 통영시 사량면 사량도에 위치한 지리산은 해발 397미터로, 산 전체가 커다란 바위로 이뤄진 곳 입니다. 지리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날씨가 좋으면 지리산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지리산 또는 지리망산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는 바다와 산 그리고 뱃길여행이 보태져 흥미를 더했습니다.

▲ 삼천포에서 사량도를 연결해주는 여객선입니다.
▲ 사량도로 향하던 중 남일대 코끼리바위와 마주쳤습니다. 실제로는 거대한 코끼리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진으로 표현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16일 오전, 사천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삼천포여객터미널로 모였습니다. 이날 행사는 6개국(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네팔)다문화 친구 76명과 행사관계자를 포함, 총 107명이 참가했습니다. 인원파악이 끝나자 사람과 차량이 배 위에 오르고, 뱃고동 소리와 함께 배는 육지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이어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눈과 귀를 시원하게 하더니, 어느덧 삼천포대교와 화력발전소, 남일대 코끼리 바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다문화 친구들은 사천의 아름다운 풍광에 탄성을 지르며 가족, 친구, 아이들과 함께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냅니다.

▲ 여행은 아이나 어른에게나 '설렘'을 주는 것 같습니다. 표정이 하나 같이 밝고 순수해 보입니다.
▲ 인도네시아 3총사 하리만, 히삼, 솜밧 씨와 자원봉사자 최연수(오른쪽 두 번째) 씨.

산행에 참가한 하리만(30세 인도네시아)씨는 “한국 온지 1년 됐는데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입니다"라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 문하니(34세 필리핀), 리차드(34세 필리핀)씨 부부와 아이들

문하니(34세 필리핀), 리차드(34세 필리핀)씨 부부도 “아이들과 함께 참가했어요. 사량도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싶어요”라고 말하네요.

▲ 사량도는 삼천포에서 약 19km 거리에 있으며, 배를 타고 40분 정도 걸립니다.

모든 이가 한려수도의 경치에 빠져 있는 사이, 저 멀리 보이던 ‘사량도’가 어느새 눈앞에 다가왔고 배가 항구로 들어섭니다. 이어 배에서 내린 참가자들은 폐교가 된 작은 내지마을 학교에 모여 산행에 앞서 미리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등산 길은 내지마을-지리산-내지마을을 둘러오는 코스로 대략 2시간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 산행을 하기 전, 진행요원들이 몇가지 당부의 말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 등산로 입구에서 안전한 등산을 위해 결의를 다지는 모습.

삼천포산악회 회원들은 각 나라별로 팀을 맡아 산행의 안전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조부명 삼천포산악회 회장은 “지리산은 높이가 397미터로 낮은 편이지만, 산길 대부분이 바윗길로, 방심하면 절대 안 되는 위험한 곳”이라며 맨 뒤서 이번 산행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 산행 중 하리만씨와 히삼씨가 자국기(인도네시아)를 흔들고 있습니다.
▲ 루돌프씨가 산행 도중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는 모습

해발 200미터 지점에 다다르자 저마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루돌프(37세, 필리핀)씨는 벌써 지쳐버린 듯 나무에 기대 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는 "힘들지만 꼭 정상에 오를 겁니다"라며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에 비해 리넬(37세, 필리핀)씨는 힘들지도 않은지, 산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음악도 듣는 여유를 보입니다. 리넬씨는 "여기 와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느끼는 것 같아요. 경치도 너무 좋고요. 스트레스가 확 풀립니다"라고 말합니다.

▲ 정상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곳곳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발 300미터 지점에 도달하자, 사람들의 얼굴에서 하나 둘 지친 기색이 보이고 산세는 더욱 험해집니다. 여기는 조금만 다리를 헛디디면 사고로 이어 질 수 있는 길입니다. 이에 제 각각 언어는 다르지만 한국말로 '조심해요'라는 말을 서로 건네며 한발 한발을 내딛습니다. 아름다운 배려가 있는 산행입니다.

▲ 이정기 다문화통합지원센터 센터장은 다문화 친구들 한명 한명을 격려하며 산행을 이끌었습니다.

한편,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 이정기 센터장은 “다문화 친구들이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면 이는 곧 산업재해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라며 이번 산행의 의미를 새겼습니다.

▲ 능선을 따라 가고 있는 모습

▲ 지리봉 정상에서 캄보디아팀이 기뻐하는 모습

어느새 해발 397미터 지리산 정상입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 사이로 능선을 따라 촛대바위, 달바위가 보입니다. 지리봉에서 본 사량도는 쪽빛 바다의 한려수도 경관과 더불어 군데군데 누군가 깎아놓은 듯한 기암절벽이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이를 본 이슬람(30세, 방글라데시)씨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말끝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옆에 있던 오숍(28세, 방글라데시)씨 또한 “좋은 곳에 오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라며 아쉬운 미소를 짓습니다.

▲ 등산이 있는 줄 모르고 참가한 므하마 씨가 맨발로 걷고 있습니다. 남편의 보살핌이 아름답죠?

이후 하산하는 길, 좁은 협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위험했습니다. 그런데 산행 도중 므하마(25세, 네팔) 씨가 '맨발'로 등산을 하고 있네요? 므하마씨의 남편 씽(30세, 네팔) 씨는 “오늘 등산 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어요”라며 므하마 씨의 손을 꼭 잡고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옆에서 도와줍니다. ‘아름다운 부부’입니다.

▲ 삼천포산악회 회원 박순희(51세) 씨와 즉석 아들의 연을 맺은 굽타(27세, 네팔) 씨

한편, 이번 산행으로 '모자의 연'을 맺은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천포산악회 회원 박순희(51세) 씨와 굽타(27세, 네팔) 씨입니다. 네팔 팀장을 맡은 박순희 씨는 친아들과 굽타 씨가 나이가 비슷하다는 연유로 '모자의 연'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순희 씨는 "산행을 통해 아들 하나를 얻게 됐으니, 사량도가 내게 선물을 준 셈"이라고 말합니다. 굽타씨 또한 “저에게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산행’이었습니다”라고 말하네요.

▲ 네팔에서 온 나리엔지 씨가 자전거 경품에 당첨되고 환호하는 모습

무사히 산행이 끝난 뒤, 내지분교에 다시 도착했을 때, 맛있는 간식시간과 함께 경품추첨행사가 열렸습니다. 많은 경품이 다문화 친구들에게 돌아간 뒤, 마지막으로 1등 상품인 자전거 추첨 때 묘한 긴장감이 나돌았습니다. “32번!”이 불리어지자, 번호표를 잡고 나리엔지(21살, 네팔) 씨가 펄쩍 뛰며 아이같이 기뻐합니다. 같이 있던 네팔 친구들 사이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 사량도에서 모든 행사가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이후 사량도에서 모든 행사가 끝나고 삼천포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떠날 때 모습과 많이 달랐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가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연락처를 묻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산행’이 ‘아름다운 만남’으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이번 행사에서 다문화 친구들은 순수함과 밝은 성격으로 한국 사람과 거리낌 없이 친해지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은 단순한 등산의 의미를 떠나, 다문화 친구들에 대해 알아가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교류와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 이날 행사에 누군가는 음식을 제공하고 누군가는 뱃값을 내고 누군가는 산행을 안내했습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참고로 이번 산행에 참가를 위해 다문화 친구들 중에는 어제(15일) 늦은 밤까지 일하다 온 친구도, 오늘(16일) 아침까지 일을 하다 달려온 친구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다시 내일부터 일터로 돌아가 하루 13~15시간씩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힘들고 고단한 한국 생활이 이번 산행으로 조금이나마 풀렸길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앞으로 다문화 친구들을 만날 때면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면 어떨까요? 우리말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으로, 필리핀에선 "살라맛", 베트남은 "깜언 아이"(남자) "깜언 찌"(여자), 인도네시아는 "뜨라마까시", 캄보디아에선 "어군"이라 말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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