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3) 성산일출봉에서 섭지코지까지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깨어 보니 새벽 5시 20분이다. 6시까지 일출봉에 오르면 일출을 볼수 있다고 해서 느긋하게 헤드랜턴을 챙겨 성산일출봉으로 올랐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내 생에 첫 일출봉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었다.

▲ 성산일출봉 위에서 바라본 해돋이 모습

성산일출봉 동영상

일출봉의 일출을  자동디카로 일출 사진을 멋지게 담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출을 상상할 때 오래전 애국가 시작할 때 용두암과 일출봉 일출 장면을 연상했으나 아무리 자리를 잡아도 그런 황홀한 장면은 카메라에 잡히질 않고 그냥 내 마음 속에만 담아올 수밖에 없었다.

▲ 일출봉에서 내려 오면서 찍은 성산포항과 전날 다녀온 오름

일출봉을 내려와 배낭을 챙기고 일출봉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7시 10분경 일찍 길을 떠났다. 1코스 종점인 광치기 해변을 지날 때 갑자기 해변의 광경이 눈에 익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신혼여행 때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동영상을 촬영하던 곳이었다. 새삼 신혼 여행을 떠올리니 저절로 잔잔한 웃음이 머금어진다. '그담새'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지.....

1코스 종점이자 2코스 시작점에서는 나이 드신 어른 두분께서 올레꾼을 맞이하시며 이런 저런 안내를 해 주신다. 2코스 초입은 원래 바다 였으나 두 개의 커다란 갑문으로 막혀 있어 둘레 수 킬로미터의 바다호수가 만들어져 있고 지형에 따라 작은 수문 사이로 밀물과 들물이 오고 가면서 작은 소나무섬과 어우러진 커다란 자연 저수지처럼 생긴 바다 호수를 둘러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나타나는 마을은 소나무, 삼나무, 밀감밭 등이 어우러진 숲속의 작은 전원마을이었다.

▲ 지친 올레꾼을 달래주는 마을 안길의 나팔꽃
땀을 뻘뻘 흘리며 대수산봉을 오르고 내려 오면서 한 명의 올레꾼도 만나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길을 가는데, 아침을 거른 터라 허기도 지고, 몸은 점점 지쳐가고, 발바닥은 딱딱해지고... 순간 왼쪽발에 극심한 통증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쉬었다 일어서는 주기가 자꾸 짧아지면서 머리 속에는 온통 '어느 가게 냉장고에서 올레꾼을 기다리는 시원한 캔맥주' 뿐이다.

지친몸으로 혼인지에 도착했으나 사람 한 명 없고 쓸쓸한 느낌조차 들어 다시 길을 재촉하다 포구 입구에서 더디어 나를 기다리던 구멍가게를 만났다. 그토록 소원하던 캔맥주를 따서 벌컥벌컥 마시니 온몸이 짜릿한 쾌감으로 응답한다.

▲ 삼성혈에서 태어난 탐라의 세 시조가 혼인을 했다는 전설이 어린 혼인지
겨우 겨우 2코스 종점인 온평포구에 혼자 도착하니 작은 식당이 있어 성게 국수를 시켜 먹었다. 맛도 깔금하고 밑반찬도 맛나다. 그리고 곁들여 마신 밀감 막걸리도 올레꾼의 목을 축이기에 안성맞춤. 밀감 색과 밀감 맛이 어우러진 특이한 맛에 끌려 혼자서 두통이나 비웠다.

이틀 동안 새벽에 일어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한 여행을 계속한지라 온몸이 나른하고 시간이 지체되어 3코스를 포기하고 2코스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경치가 뛰어난 섭지코지로 향했다. 내리 쬐는 태양과 막걸리 기운, 피곤한 몸덩이, 부족한 수면으로 도저히  걸을 수 없어 바닷가 울퉁 불퉁한 바위 위에 그냥 배낭에 매달고 간 메트만 깔고 정신 없이 잠에 빠졌다.

한 시간 이상 정신 없이 자다가 일어나 섭지코지로 길을 재촉한다. 실제 발로 걷는 길이 눈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진다. 아마도 심신이 피곤한 탓이리라. 섭지코지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다고 알려져 관광객도 많고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것 같았다. 아쉬운 점은 섭지코지에서 성산일출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는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 경관을 버려 놓은 것이다. 아마도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고의 장소!"하고 감탄할 터이다.

▲ 섭지코지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부분
섭지코지에서 2코스 종점으로 되돌아 오는 길은 너무 힘들어 거금 5100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되돌아 나왔다. 2코스 종점의 마을 정자에 배낭을 풀고 비박할 마음으로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지으려는데, 해가 뉘였뉘였 넘어가는 그 시간에 홀로 나선 올레꾼이 제법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지친 표정으로 정자로 들어 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청주에서 혼자 오신 53세의 남자 분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나중엔 라면 안주에 소주잔도 주고 받았는데, 문득 그가 가까운 찜질방에서 함께 숙박할 것을 권하신다.  망설이다 그 분을 따라 나서 버스를 타고 찜질방으로 숙소를 옮겼다. 개운하게 목욕도하고 잠을 청하니 전날 잠자리 보다 훨신 더 편안하다. 그 때 만난 분이 이후 올레길 일정 속에서 6박 7일 동안 함께한 청주 성님이다.<계속>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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