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2) 녹동항에서 성산일출봉까지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9월 10일 새벽 5시. 일어나 대충 씻고 나의 애마 갤로퍼로 고흥군 녹동항으로 출발했다. 집에서 녹동항까지 대충 소요 시간을 알아보니 2시간50분이다. 마음이 불안한지라  넉넉히 출발하다보니 예상보다 일찍 녹동항에 도착했다.

여유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까워 새로 건설된 소록대교를 통해 소록도로 넘어갔다. 소록도는 일제 시대부터 나환자를 강제 격리 치료하던 곳으로 그분들의 고통과 한이 서려있는 곳이고,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무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다리를 건너 입구까지 갔으나 개방시간이 아니라서 되돌아 나왔다. 2-3년 전 혼자 녹동항으로 여행 왔을 때 다리 공사가 한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녹동항에서 고속카페리호에 몸을 싣고..

8시 30분. 드디어 3등석 표를 끊고 '남해고속카페리7호'에 몸을 실었다. 카페리호 여객선의 3등석은 마치 시골의 5일장과 비슷한 분위기다. 제각각의 목적으로 배에 오른 제각각의 사람들이 넓다란 거실 칸칸 제 편한 자리를 찾아 4시간 정도의 긴 여정을 보낸다. 먼저 와서 돛자리 깔면 그게 도착항구까지는 자기 자리인 셈이다.

어디선가 이장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마도 시골 마을에서 단체로 관광을 나섰나 보다. 그분들은 자리를 정하자마자 과일, 맥주, 음료수를 내 놓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다른 한 쪽에서의 부부팀은 연신 고스톱판을  돌리고, 제주에서 자주 뱃길을 이용하시는 베테랑은  돛자리뿐만 아니라 간단한 이부자리와 배게까지  챙겨 곧바로 잠을 청한다. 긴 시간 동안 갑판에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매점에서 비슷한 연배의 남자 분과 말동무가 되어 열심히 정치 이야기며 자기 동네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제주항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이다

남해고속카페리호 배 높이가 일반 건물 4-5층은 될려나

시골에서 관광 나서신 마을 어른들

 배위에서 찍은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흰구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제주항에 도착하자 중국 선적의 거대한 크루즈함이 항을 나서고 있었다.

 

제주항을 내려 버스를 타고 올레 1코스로 갈건지 아님 택시를 타고 갈건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막 부두 정문을 나서는데 느닷없이 택시 기사가 흥정을 해와 부지간에 2만5천원으로 올레 1코스인 제주항 정반대 쪽 성산포 쪽으로 향했다.

오후 2시20분경 올레 1코스 안내소에 도착해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간단한 올레 안내 자료를 들고 힘차게 출발했다. 안내인 말로는 아마도 7시 정도에는 1코스 종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단다. 부지런히 길을 걸어 가다보니 나만 혼자이고 여자분들은 몇몇이서 팀을 만들어 즐겁게 웃으면서 걸어 가길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추월해서 가다가 첫번째 오름인 말미오름 입구에서 젊은 여자 두 분과 자연스레 동행이 되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말미오름 오르고 다시 내려가 알오름 정상까지 함께 걸었으나 정상에서 내려갈 기미가 안 보인다. 속으로 '애구 저 분들은 나하고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것 같은데 귀찮게하면 안되지' 하는 생각으로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먼저 오름을 내려왔다. 수 년 전 지리산 천왕봉에서 만난 삼천포 아가씨를 중늙은이가 눈치 없이 따라 댕기다 '쪽' 다 판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깨달은 말 "눈치 없는게 인간이가"...

 알오름으로 가는 길

알오름에서 바라다 본 성산항 및 성산 일출봉 

알오름에서 왼쪽으로 바라다 본 우도


두 개의 오름을 숨가쁘게 올랐다 내려오며 다소 아쉽지만(?) 젊은 아가씨 두 분과는 헤어졌다. 그러다 연세 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나란히 길을 걷는 모습을 발견했다.

인사를 드리니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주저 없이 "삼천포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난데없이 은방울 자매가 불렸던 '삼천포 아가씨' 노래를 흥얼거려 즉석에서 합창이 이루어졌다.

"돌아와요네-- 돌아와요네-- 삼천포 내고향으로--"

 '그래. 내가 원래 연세 드신 어른들과 어울려 함께 노는 것이 주제에 맞는 것이지 언감생심! 무신 아가씨들과 길동무를 하겠다고.. 주제파악도 못하고..' 

일행 없이 혼자서 마을도 지나고 해안 도로를 지나 한참 땀을 흘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멀게만 보이던 성산 일출봉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다. 비지땀을 흘리며 아무 생각 없이 젊은 올레꾼을 추월하는데 인사를 건넨다. 혼자서 나선 올레꾼이다.

이리 저리 인사를 나누고 서로 간단히 소개를 하다 보니 부산에서 혼자 온 올레꾼인데 자기도 삼천포에 아는 사람이 있단다. 자기 손위 처남이 삼천포 토박이라나. 대뜸 이름을 대면서 "혹시 좁은 동네인데 아시냐"고 묻길래  바로 "잘 아는 중학교 동창생"이라고 말했다. '좁은 동네'인데다 이름이 특이해서 동명이인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졸지에 동창생 녀석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서로 서로 번갈아 통화를 하면서 한 말 "역시 세상은 좁구나"였다. 반가운 만남이었으나 서로의 일정이 달라 일출봉 입구에서 아쉬운 이별을 했다.

 성산포항을 지난 해변길에서 바라다본 일출봉

 제주도는 역시 어디로 가도 '말팔자 상팔자'이다


첫째날 걷기가 끝나고 찬 소주에 피로 풀다

일출봉이 가까워지자 할머니 두분이 자기 집에 묵어 가라고 열심히 호객을 하신다. 과감히 사양하고 이리 저리 비박 장소를 찾아 보니 '해녀의 집' 바로 아래에 반반한 곳이 있어 비박터로 정하고 텐트를 설치한 후 해녀의 집에서 해물과 소주를 시켜 해녀분과 이런 저런 세상 얘기를 나누었다.

자기가 젊었을 때 삼천포까지 물질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사하라 태풍이 와서 죽을 뻔 했다는 얘기. 그리고 막 결혼한 후 군대있던 남편이 휴가 나오면 다른 해녀들이 전부 부러워했다는 얘기. 자기는 그 때 23살 나이로, 휴가 나온 남편을 만나러 물질하다 먼저 나가는 일이 어찌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몰랐다는 얘기.. 이런 저런 세상사를 나누면서 소주 한병을 다 비우고  다시 비박 장소로 돌아와 혼자만의 잠자리를 청했다. 

 비박지 옆 해녀의 집에서 주문한 해산물과 소주


오랜만의 비박이라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입은 옷 사이로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어 '그냥 땀이 마르는 중이겠지'하고 생각하고 잠을 청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일어나 랜턴을 켜니 크고 작은 바닷가 벌레 열댓마리가 좁은 텐트 안을 이리 저리 돌아 다니고 있었다. 순식간에 잠이 깨고 질겁을 하고 벌레 한마리 한마리 소탕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겨우 잠을 청했다.

첫날 비박지 둘째날 아침 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 온 후 찍은 사진이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