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위탁 받기도 전에 재위탁, 조례에도 없는 사설학원으로 탈바꿈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위탁운영 과정에서 심각한 모순이 발견됐다.
경남 다른 지자체들의 부러움을 사며 지난 4월15일 문을 연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줄여 영어도서관). 그러나 ‘경남 최초’라는 자랑에 너무 취했던 탓일까? 개관 두 달 만에 영어도서관 운영을 둘러싼 각종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어린이 영어 실력 향상’이란 명제 속에 공공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조차 무너뜨린 느낌이다.

예산 지원, 위탁자 선정, 관련조례 제정, 그리고 실제 도서관 운영에 이르기까지, 문제점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마디로, ‘취재를 하면 할수록 문제투성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 중 결정타는 사천시가 어린이영어도서관을 위탁하기도 전에, 수탁기관인 사천교육지원청(사남초등학교)이 미리 민간 영어교육업체에 재차 운영을 맡겼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금의 영어도서관 운영 자체가 ‘위법’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이 어떻게 탄생했고, 운영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폈다.

'BTL방식'에 '학교복합시설'로 태어난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은 지난 2008년2월, 기획재정부의 학교복합시설 대상 사업에 확정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학교복합시설이란, 민간투자법 제2조에 정의된 44개 대상시설 중 기능이 연관되는 둘 이상의 생활기반시설을 하나의 토지에 복합적으로 지어 운영하는 시설을 말한다. BTL방식(임대형 민자사업)으로 진행됐으며, 신설하는 학교에 주로 들어섰다.

지난 4월15일,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 개관식 장면.
사천시는 마침 사남면 월성리 491번지 일원에 조성 예정이던 사남초등학교를 이 사업과 연관 지었다. 그리고 사천교육지원청과 그해 6월, 학교복합시설사업 공동 추진을 위한 기본협정서(MOU)를 체결했다.

이 기본협정서에는 학교터에 영어도서관을 지음으로써 토지효율성을 높이고, 평생교육시설을 확충하며, 지역주민에게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취지와 함께 서로의 역할이 담겼다. 중요한 것은 학교시설은 교육장이, 복합화시설(=영어도서관)은 시장이 관리운영권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이 사업에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로 10억 원의 국비를 지원하기로 했고, 이에 발맞춰 사천시도 시비 1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합친 총20억 원을 사천시가 20년간 사천교육지원청에 교육비특별회계로 균등하게 나눠 주면, 교육청은 이를 BTL사업자에게 임대료 명목으로 전달해야 하는 구조다.

사천시와 사천교육지원청은 이 같은 기본협정서를 바탕으로 학교복합시설인 어린이영어도서관 공사에 들어갔다. 이 사업을 맡은 민간업체는 (주)푸른경남이었다. 그리고 지난해(2010년) 8월4일 도서관을 완공했다. 건물 규모는 지상2층에 연면적 900여㎡였다.

이렇게 영어도서관은 탄생했지만 실질적인 운영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이 영어도서관에 ‘경남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르듯이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 더한 모순은 없다.. 재위탁협약이 위탁협약보다 빨라

그러던 중 영어도서관의 관리운영권을 쥔 사천시는 교육기관이자 사실상 건물터 소유자이기도 한 사천교육지원청에 그 운영을 맡기기로 한다. 이를 위해 2010년12월23일에 상호 기본협약을 체결했고, 해를 넘겨 올해 1월25일에는 ‘위수탁협약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위수탁협약서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천시가 영어도서관 운영에 연간 2억 원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천시의 사전 승인 없이 교육청은 타인에게 대여 또는 재위탁 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 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영어도서관 운영의 문제점 중 하나는 사천시로부터 예산지원을 받는 공공도서관임에도 연회비를 내어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도서관 운영비로 연간 2억 원을 지원하고, 이후 물가인상분을 반영해 이를 더 늘릴 수 있다고 함에 따라, 사천시가 20년간 영어도서관 운영비로 지원할 금액은 40억 원 이상이다.

앞서 20억 원으로 언급됐던 ‘BTL사업에 따른 임대료’가 총 26억 원(1년에 1억3000만 원)으로 결정됨에 따라, 20년간 영어도서관에 들어갈 예산은 최소 66억 원인 셈이다.

국비 지원분 10억 원을 빼더라도 사천시 재정부담이 최소 56억 원 이상이어서, 이를 두고 사천시의회와 집행부 사이에 논란을 빚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시의 부담이 커졌고, 이 과정에 의회 동의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다음으로 사천시의 사전 승인 없이 타인에게 대여 또는 재위탁 할 수 없도록 한 대목을 살펴보자.

6월30일 현재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은 (주)다르앤코가 운영을 맡고 있다. (주)다르앤코는 서울에 소재한 업체로 영어도서관이나 교육센터를 구축해 운영하는 일을 한다.

문제는 사천시와 사천교육지원청이 맺은 위수탁협약에는 어린이영어도서관을 재위탁 할 수 없도록 정했는데, 버젓이 재위탁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물론 사천시가 이를 사전에 승인해 줬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한 사천시의 입장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싶을 정도의 충격적인 사실이 또 하나 확인됐다. 사천교육지원청이 (주)다르앤코에 재위탁한 시점이, 시가 교육청에 운영을 맡기기 전인 지난해 12월8일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논란에 휩싸인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 내부.
또 사천교육지원청은 이보다 빠른 11월17일에, “영어도서관의 효율적인 운영”을 표방하며 민간위탁업체 공모를 위한 설명회도 가졌다. 두 사건 모두 ‘사천시 어린이 영어도서관 운영 조례’(12월30일 제정)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일어났다.

이에 대한 사천시 그리고 사천교육지원청의 입장 또한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건물이 완공했음에도 어린이영어도서관 개관이 늦어지는데 따른 부담이 컸다”는 게 사천시와 사천교육지원청 관계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학원 뺨치는 영어도서관, 시가 지원하는 공공도서관 맞나?

생각해보면, 이런 절차상의 문제는 어린이영어도서관이 잘 운영되고 있다면 굳이 드러나지 않았을 문제다. 따라서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이 현재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가 다음 관심사다.

영어도서관에 따르면 개관 두 달 시점인 6월15일 현재, 총 방문자는 4754명이다. 여기에는 도서관 이용 회원으로 가입한 103명이 여러 번 중복해 합산됐음이다. 그리고 회원 103명도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영어도서관 개관을 고대했던 인근 지역민들의 열망에 비하면 되레 적다는 평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이를 두고 도서관 이용자에게 연회비를 받게 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는 학부모들이 있다. 도서관이라면 통상 누구나 찾아가 책을 읽고 때로는 책을 빌려갈 수도 있는 곳인데, 돈을 내라고 하니 기분이 상했을 거란 얘기다.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은 실제로 회원 가입 시 3만 원의 연회비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외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유료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을 상대로 ‘읽기 이해도 진단평가’ 1회에 2000원을 받는다. ‘읽기 능력 진단평가’는 5000원이다. 그리고 36개월 유아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수준별로 다양한 수업을 만들어 놓고, 주 1회 또는 2회 수업하며 월 3~6만원의 수강료를 받는다. 이때 교재비는 추가로 받는다.

이러니 “이건 공공도서관이 아니라 고급 사설 영어학원”이라는 볼멘소리가 학부모들 사이에 제법 흘러나온 모양이다. 사천시의회 최용석 의원은 이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고, 시정질의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최 의원 주장의 핵심은 “조례에는 연회비를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고, 수강료 또한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운영조례에는 회원증을 발급하더라도 이를 무료로 함(제19조와 별표1)을 밝혀 놓았고, 도서관 사용료와 수수료를 규정하고 있는 제17조에는 교육수강료에 관해선 언급이 없다.

▲ BTL방식에 학교복합시설로 들어선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 많은 시민들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그 설립취지에 더 가까워진다.
이를 두고 사천시는 “조례보다 앞서는 도서관법 시행령에 연회비와 교육수강료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최용석 의원은 “상위법에서 언급하고 있더라도 시가 수강료를 실제로 받기 위해서는 조례에서 따로 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법률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봐야 알 수 있겠지만, 영어도서관조례를 만들면서 중요한 내용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가 없어 보인다. 참고로 서울시 마포구에서 설치해 민간위탁 운영하는 어린이영어도서관은 각종 교육수강료를 받고 있지만 이는 철저히 관련 조례에 따른 것이다.

1년에 2억 원으론 부족하다? 그럼 얼마나 더...

이런 법리적 논쟁과 무관하게 “영어도서관을 민간업체에 맡겨 유료로 운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천교육지원청에서 영어도서관 업무를 맡고 있는 강정 장학사는 “처음엔 일반도서관처럼 생각했지만 여러 사례를 살피면서 그렇게 해서는 활성화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재위탁 결정을 내린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영어도서관을 민간업체에 맡겨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시켜야 활용도가 높고, 그에 따른 수강료 징수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강 장학사는 “이용자들에게 수강료나 연회비 부담을 덜어주려면 사천시가 재정지원을 늘리거나, 아니면 프로그램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이 위치한 사천시 사남면 월성리. 도서관은 사남초등학교 동쪽에 있다.
이와 관련해 따져볼 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천시는 영어도서관 운영비로 해마다 2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는 2억30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음이다. 이는 BTL사업에 따른 임대료로 매년 1억3000만 원을 (주)푸른경남에 지급하는 것과는 별개다.

그리고 사천시가 지원하는 2억 원의 운영비에는 원어민교사와 원어민연구사, 사서 등 최소 4명의 도서관 운영직원의 인건비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들 직원 외에 자원봉사자를 적절히 활용했을 경우 ‘도서관 운영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참고로 현재 영어도서관에는 9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잠시 들르는 (주)다르앤코 본사 직원까지 포함하면 최대 12명이 일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주목받으며 문을 연 사천시어린이영어도서관. 지금 일고 있는 의혹과 혼란이 ‘처음에서 오는 시행착오’ 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 까닭에 문제점을 계속 밝혀내기보다 영어도서관이 하루빨리 뿌리내리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 있게 들린다.

그렇다고 무작정 덮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위탁과 재위탁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왜 생겼는지 사천시와 사천교육지원청은 분명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어린이영어도서관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더 깊이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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