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용 예측 못한 사천시 책임.. 동부건설 “전기 끊어도 돼?”

▲ 지난해 말 준공한 각산터널. 사천시가 터널 유지관리비용을 마련해 두지 않아 시공사로부터 인수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는 6월 이후에는 전기를 끊겠다고 사천시에 통보한 상태다.
지난해 말, 국도3호선이 시원하게 뚫렸다. 비록 ‘남해 가는 길만 좋아졌다’는 지역민들의 아쉬움 섞인 탄식이 있지만 옛 사천과 삼천포가 훨씬 가까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도로를 타고 삼천포대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각산터널을 만나게 되는데, “터널 안이 너무 어둡다”고 하소연하는 운전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물론 전조등을 켜고 통과하면 되겠지만 다른 터널과 달리 유난히 어두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이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정말 그런가?’ 이런 궁금증이 드는 독자들이 있다면 지금 바로 각산터널을 달려보기를 권한다. 실제로 설치된 조명 중에 불이 들어온 것보다 꺼져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를 두고 ‘에너지 절약 차원이겠거니’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여기에는 전혀 뜻밖의 이유가 숨어 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 더. 터널 안에서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사용하라고 설치해 놓은 비상전화가 있는데, 이 비상전화가 모두 먹통이다. 수화기를 들고 ‘호출’ 버튼을 누르면 사천시청 재난안전본부든, 사천경찰서 상황실이든, 사천소방서 상황실이든, 어디든 연결되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도, 아무도 받아주는 이 없다.

▲ 어두운 각산터널 안으로 승용차가 들어서고 있다. 비가 올 때는 터널 안이 더욱 어둡다.
왜 그럴까? 개통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각산터널 안이 유난히 어둡고 비상전화조차 먹통인 이유. 한 마디로 사천시의 준비부족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고도 3개월 넘게 이런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심각한 안전 불감증’이란 이유를 하나 더 댈 수 있겠다.

어찌된 일인지 시간을 잠시 거꾸로 돌려보자.

부산국토관리청은 지난해 말 국도3호선 사주~대방 구간의 확장공사를 끝냈다. 그리고 올해 3월24일, 이 구간 가운데 동지역에 해당하는 노례~대방 구간의 유지관리 업무를 사천시로 이관했다.

이와 관련해 현행 도로법은 도농통합시의 읍면지역을 통과하는 국도는 국가가 유지, 관리, 보수 책임을 맡는 반면 시가지(동지역) 구간은 해당 지자체가 맡도록 정하고 있다.

사천시는 부산국토관리청으로부터 국도3호선 노례~대방 구간을 인계 받으면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각산터널 안 조명시설과 가로등을 밝히는데 필요한 전기요금을 올해 예산으로 확보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가 3월말. 도로를 관리하는 주무부서가 있음에도 몇 달 뒤 일어날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사천시가 터널을 관리해본 경험이 없다는 점에 비춰 ‘실수’로 이해할 수도 있음이다. 참고로 각산터널은 사천시가 관리하는 첫 터널인 셈이다.

▲ 터널 안이 어두운 이유는 사천시가 전기요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공사가 전기요금이 적게 나오도록 조절했기 때문이다. 조명이 여섯 개 건너 한 개씩 켜져 있다. 그리고 한쪽 줄은 아예 꺼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터널 안을 밝힐 전기요금을 확보하지 않은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사천시는 대책 마련에 굼뜨기가 그지없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각산터널 유지관리에 일정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천시로서는 그 후 찾아온 2011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을 짤 때 이를 반영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추경예산 심의를 위한 사천시의회가 4월12일 열렸으므로, 다소 빠듯하긴 하나 예산 반영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사천시는 왜 이 좋은 기회를 놓쳤을까?

이에 대한 사천시의 해명이 어이가 없다. 먼저 도로를 관리하는 도로교통과 내에서도 담당별로 소통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도로를 건설할 때는 도로시설담당에서, 공사가 끝나면 도로관리담당에서 업무를 맡는데, 업무 승계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다음은 터널 안 조명시설 관리를 두고 평소 가로등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재난안전관리과에 협조를 구했지만 역시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가로등 유지관리 비용으로 전기요금이 포함돼 있으므로, 임시로 재난안전관리과에서 업무를 맡으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잘 안 됐다는 얘기다.

▲ 터널 안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용하도록 설치한 비상전화는 6월8일자로 끊긴 상태다.
이렇게 관련 부서에서 미적거린 사이 올해 1차 추경예산에서는 이름조차 꺼내보지 못한 채 넘기고 말았다. 또 그 이후에도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사천시의 대책 마련이 늦어지면서 속을 끓이고 있는 쪽은 공사를 맡았던 동부건설이다. 공사 과정에서 동부건설 이름으로 전기와 통신 설비를 갖췄는데, 사천시가 명의 변경을 해주지 않으니 여태껏 그 유지비용을 동부건설이 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동부건설은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사천시에 공문을 보내 관련 업무를 조속히 이관해 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5월31일부로 전기와 전화를 해지할 예정”이며 “계약해지에 따른 전기공급 및 긴급전화 중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 문제에 대해 당사의 책임이 없다”고도 밝혔다.

참고로 동부건설로부터 사천시가 인계 받아야 할 시설물은 각산터널 내부조명시설(300㎾) 말고도 터널 가로등(4㎾), 송포1교 내부조명시설(16㎾), 터널긴급전화가 있다.

▲ 수화기를 들고 호출 버튼을 눌러도 아무도 받아주는 이가 없다.
동부건설은 두 차례의 공문발송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회신이 없자 지난 6월8일자로 비상전화(=긴급전화)를 끊었다. 그 파장을 우려해 전기는 차마 끊지 못했다는 게 동부건설 측 설명이다.

그 대신 각산터널 안 조명 밝기를 최대한 낮춰 놓았다. 두 줄로 설치된 조명 가운데 한 줄은 아예 꺼버렸고, 다른 한쪽도 드문드문 불이 들어오게 해 놓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정상가동 했을 경우 발생할 한 달 전기요금 670만 원에 훨씬 못 미치는 260만 원 정도의 전기만 쓰고 있다.

동부건설의 한 직원은 사천시가 이 문제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자 사천시청 홈페이지 ‘시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지난 6월17일 글을 남겼다. ‘전기 차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천시가 최대한 빨리 대책을 세워 달라는 얘기였다.

이에 사천시는 “전기료 납입 등 협의 중에 있으며 빠른 시일 내 해결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답변을 남겼다.

그러나 사천시의 움직임은 여전히 굼뜨기만 하다. 24일 확인 결과, 예산담당 부서에서는 “주무부서(도로교통과)에서 결론을 내려 우리한테 알려줘야 할 텐데 아직 말이 없다”고 하고, 도로교통과에서는 “예산부서(기획감사담당관실)에서 대책을 세워줘야 할 텐데..”라며 말을 흐렸다.

▲ 시공사인 동부건설이 사천시에 보낸 공문.
그렇다면 이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각산터널 전기요금으로 예비비를 사용하기는 목적상 부적절하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2011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하는 것이 가장 현실성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시기가 최소 9월 이후가 될 것으로 보여, ‘그 때까지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안은 동부건설에 협조를 구해 당분간 유지관리를 더 맡겼다가 예산 확보 뒤에 일괄 갚는 것이다.

동부건설 관계자도 “언제까지 해결해주겠다는 공식 답변만 있어도 현재 상황을 감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성사 가능성은 있는 편이다.

다만 이럴 경우 지나간 1월부터 5월까지의 유지관리 비용도 사천시가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요금과 안전관리대행수수료 등 이 기간에 발생한 유지관리 비용은 4864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시가 예측하는 각산터널 한 달 유지관리 비용은 전기요금 670만 원, 통신요금 5만 2000원, 전기 안전관리 대행 수수료 22만 6050원 등 모두 693만 1250원 정도다.

▲ 각산터널의 내력이 적힌 표지석. 사천시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전과 협의를 통해 당분간 전기를 외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한전 관계자는 그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무리 공공기관이라 해도 전기료가 미납됐을 경우 3개월 정도는 가능해도 그 이상 편의를 봐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부담스러워 했다. 한전은 전기요금 3개월 치가 미납되면 전기를 끊는 것이 보통이다.

사천시의 준비부족으로 발생한 각산터널의 조명 문제. 그리고 비상전화 폐쇄. 입이 열 개 있어도 할 말이 없을 사천시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풀어낼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사천시민의 안전문제를 터부시 여기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눈에 보이는 대책을 빨리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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