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사처니언]Life is not a spectator's sports.

인생은 관객들의 스포츠가 아니다.

Life is not a spectator's sports.
                        -Reebok


 특이하게도 요즈음의 명언은 광고에서 빛을 발한다.

 Impossible is Nothing, 이라던가 혹은 Just Do It. 같은 짧은 문구는 시선을 사로잡고 어떤 때는 피곤에 지친 이에게 활력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요즈음의 광고 카피는 단지 제품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이끄는 역할도 하고 있다.

 싸구려 선전 문구, 혹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물건을 팔게 하는 도구였던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들도 이제는 작가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광고의 소비자로서 우리는 '광고는 역시 광고'라는 인식을 하면서 그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하여 받아들이고 상업적인 기술에는 거리를 두고 이 문구들을 소비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이 현대의 명언을 소화해 보자.


이 명언을 역으로 받아들이면, 인생은 점점 관객들의 스포츠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결승전을 마친 프리미어 리그의 경기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즐기고 함께 흥분했을 것이다.

 내가 매시처럼 공을 찰 수는 없지만 그는 우리들을 만족하게 했다.


 물론 그것은 대리 만족이라 불려야 했지만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이 공을 찬다면 별로 흥분 할 거리도 아니기에 스타 플레이어는 그들만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리라.


 하지만 모든 면에서 이와 같은 대리 만족을 간단히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자라나는 세대일 수록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길러지고 있고, 일하는 보람과 창조하는 보람에는 거리가 먼 관람과 소비를 위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노동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능력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고, 희생하고 절개를 지키는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런 의견을 대중 앞에서 떳떳히 밝히는 것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지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식자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더 자랑스럽게 여겨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결코 방관자의 스포츠이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그것이 스포츠이었던 적은 없다.

 그것은 스포츠보다 더 스포츠다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다운, 인생을 인생으로 산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이제 일어나 무언가를 만들자, 만들 여력이 없다면 만들 것을 꿈꾸어 보자.

 생각이 일어나 말과 글로 표현되었고, 말과 글의 힘은 행동을 이끌어 왔다.

 

 어떤 이들은 운명론자가 되어, 자신의 인생이 모두 계획되어 있으리라 여기고 무기력하게 산다.

 어떤 이들은 자유로운 삶을 너무 사랑하여 삶에 마침표가 없이 살기도 한다.


 그래서 자유의지와 절대적 운명은 항상 상반되게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요즘은 만화책에서 조차도 철학을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길에 절대적 운명이 있음으로, 나는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가 있다.

 

 이 비틀거리는 나의 길이, 나의 인생이 나의 자유의지가 절대적 운명의 배반이 아니리라는 신념으로, 나는 바른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도인의 길은 산 속에서만 닦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개척하고자 하는 바로 이 길이 나의 도, 나의 길이기에 (길 도)는 결코 나의 삶을 떠나 있었던 적이 없던 것이다.


 삶이 관람자의 것이었기에 행복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이 진정한 행복의 한 가지 방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삶은 방관자의 그것으로만 소비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나의 삶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지치지 않게, 실망하지 않게 우리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도, 관람하는 것 못지 않게 멋진 일이라는 것을 시선을 달리 하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바로 나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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