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폄하 지적에 “삼천포 아닌 사천포” 해명.. 고의 ‘도발’ 의심

▲ SBS드라마 <신기생뎐> 화보
SBS드라마 <신기생뎐>이 ‘삼천포’라는 지명에 애정을 갖고 살아가는 지역민들의 마음에 두 번 상처를 주고 있다.

‘전통을 지켜나가는 자존심 강한 그녀들’. 곧 현대판 기생을 가상해 풀어가는 이야기가 SBS 측이 밝힌 드라마 <신기생뎐>의 기획의도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기생들의 자존심은 얼마나 치켜세우고 있는지 몰라도 사천과 삼천포 사람들의 자존심은 무참히 짓밟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삼천포’란 지명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려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 명칭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는 ‘삼천포시’로 불렸다. 하지만 1995년 정부 주도의 도농통합 움직임에 따라 인근 옛 사천군과 합쳐져 ‘사천시’로 거듭났으며, 지금은 ‘삼천포항’이란 이름에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도다.

이런 행정명칭의 변천에 상관없이 해당지역 사람들은 ‘삼천포’라는 이름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고 있음이다. ‘남해안 수산물의 보고’에다가 ‘수려한 경치’를 가졌다는 게 지역민들의 자랑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산업의 부진이 지역 경기침체로 이어져 지역민들의 심리가 상당히 위축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지난 5월 7일 방송된 <신기생뎐> 제31회분에서 “잘 나가다가 사(삼)천포로 빠져”라는 대사는 삼천포와 사천 지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 삼천포를 폄하했다는 표현을 썼다는 지적에 <신기생뎐> 제작진이 올린 해명성 글이 더 논란을 일으킨다.
‘삼천포로 빠지다’는 말은 ‘정상적이거나 일반적인 과정에서 전혀 엉뚱한 곳으로 벗어나다’는 뜻을 비유해 일컫는 일종의 관용구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용구가 왜 생겼는지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이를 굳이 지금 논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아무리 관용구라지만 이것이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기에, 정작 삼천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것은 ‘결례’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마치 다리를 절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병신’이라 놀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드라마 속 대사는 시청자인 ‘나’를 향해 직접 말을 하고 있진 않지만, 좋지 않은 어감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해당 지역민들로서는 발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사천과 삼천포 지역민들 가운데서도 “그렇게 기분 나빠 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 현실과 구분되며, 되레 도시 이름을 알리기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체로 더 많은 이들이 불쾌감을 드러낸다. 이에 따라 사천시는 지난 12일,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인 강기갑 의원은 16일 각각 SBS 측에 항의 서한을 보내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청했다.

▲ SBS는 지난해 말 인기리에 방영했던 <시크릿가든>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써 말썽을 일으켰던 바 있다. <시크릿가든>화보.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사천시가 항의서한을 보낸 다음날(13일) 드라마<신기생뎐> 제작진이 시청자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이번 일이 상당히 ‘계획적’ 또는 ‘고의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지역비하 표현에 대한 제작진의 입장’이란 제목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지난 5월7일 방송된 31회에서 삼천포 지역 비하 표현이 있었다고 일부 언론이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본상의 대사는 ‘장신씬 잘 나가다가 사천포루 빠져’이며, 방송에서도 대본과 같이 표현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제작진’이란 이름으로 쓰인 이 글이 실제 드라마<신기생뎐> 제작진의 공식 입장이라면, 결국 삼천포란 지명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문제가 불거질 거라 보고 ‘삼천포’ 대신 ‘사천포’라는 애매한 표현을 만들어 썼다는 게 된다. 삼천포와 사천시의 멋진 조합이다.

이를 제작진의 ‘번득이는 재치’로 봐주며 웃어넘기기에는 사천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 속이 쓰리다. 왜냐면 단순 실수가 아닌 계획적 ‘도발’로 와 닿기 때문이다. 그리고 6개월 전 기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 지난해 12월,<시크릿가든>제작진이 시청자게시판에 올린 사과 글.
역시 SBS가 내놓은 드라마<시크릿가든>이 문제였다. 이 드라마 방송 2회분에서 “왜 자꾸 삼천포로 빠져”라는 대사가 나왔고, 이로 인해 사천시의 공식 항의와 방송사 측의 공식 사과가 오갔다.

당시 드라마 제작진은 “사려 깊지 않은 표현으로 사천시민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드린 점, 깊게 반성하며 이 자리를 빌어(려)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라고 시청자게시판에 올린 바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 <시크릿가든>과 지금의 <신기생뎐> 책임프로듀서가 오세강 씨로 같다. 따라서 이번 ‘도발’이 6개월 전 공개 사과에 대한 ‘뒤끝’이란 의구심이 절로 드는 대목이다.

조그만 지자체가 지역민들의 자존감을 고려해 취한 항의조치. 이에 대한 공개사과가 분하고 억울했던 것인가? 이제는 <신기생뎐> 제작진이 아닌 SBS의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 필요한 때다.

더불어 사천시나 지역민들로서도 ‘삼천포로 빠지다’라는 관용구를 어느 정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비록 부정적인 뜻이 담겼다고는 하나 문학이나 작품에 등장하는 것을 무작정 싫다고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 또는 ‘문학적 허용’과 충돌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삼천포로 빠지다’는 표현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100년 안팎이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건, 이제는 그 뜻을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의 표현을 못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사천시와 지역민들이 새로운 의미로 더 적극 사용해야 한다.

‘삼천포로 빠지면 가슴 설렐 일이 있다’ ‘삼천포 愛(애) 빠지다’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더니 대박!’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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