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을 병풍치고 호연지기로 대양을 넘나본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여 배운게 교가(校歌)였던성 싶다. "와룡산 아래모인 햇살의 꿈은..."으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학교 소풍에  뒷산 와룡산을 오르내리며도 즐겨 불렀던 노래이다. 지금은 세월이 35년도 더 돼,  끝까지 불러 보려 해도 기억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 백천사 쪽의 와룡산, 여기서 내려다보는 사천만 그림은 전국 등산객의 발을 끌 만큼 아름답다.
 

그 교가 덕택인지 모르지만 산에 대하여 추억이 많다. 그 당시 별 놀만한 대상도 없고 해서인지 산은 또래의 놀이터였다. 병정놀이로 해지는 줄 몰랐고 어느 상갓집에서 상여라도 올라오면 그날은 운수대통이었다.  제법 커서도 까닭없이 오르고 싶고 만만한 눈대중의 산높이에 오르면서 식겁을 먹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여도 산은 그렇게 친구같고 어머니같고 스승이었다.  하여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산은 그렇게 호기심과 미지의 모험 탐구장으로 마음 속에 자리한다.

성인이 되고서야 산은  감성을 지배하는 대상이다. 일상에서 지치면 괜시리 버스에 올라 명산의 중간쯤에 내려 도로따라 목적없이 걷기도 했다. 까닭없이 정상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한번은  공복에 북한산에 올라 백운대에 서서 서울을 노려 본적도 있다. 해서 산은 카타르시스였다. 먼 역사에 화랑이 호연지기를 위해 명산을 유람한 것처럼 멋적은 객기에 산은 동무로 곁에 있었다.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한 요소,'풍수지리'라는것, '풍수도참사상'으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조 조선조를 이어갔다. 우리의 의식을 산에서 떠날 수 없게 옭아 잡는 또 하나의 힘이다. 나 역시도 이 한계를 넘어 서지 못한다. 명당에 묘를 써서 자손이 번창했다느니, 집이 명당이어 사업이 잘 풀린다더라 하면 눈이 벌게진다. 병적인지 몰라도 역사에서 조선의 한양천도 이야기는 가장 큰 충격으로 광신케 만든 자락이다.

사천의 경관은 게으른 나로서는 선황산성이 제일이다. 누운룡이라 좌청룡 바다 건네  우백호가  금오산이라면 남해 금산은 남주작 정도에 해당한다.  서북방을 병풍친 지리산은 백두산을 기점하여 민족의 운기를 싣고있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을 이어 달려 사천의 어머니로, 두류산으로 감싸 안아  바다를 본다. 산성토성의 가장자리에 서서 장곡(薔曲)을 두루 조망함이 가히 탁월하다.

▲ 하동 진교의 금오산,사천의 와룡산과 함께 지리산을 향하여 대문처럼 우뚝 서 있다.

서낭산성에 서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다 본다. 역으로 천왕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는 산인도 있을 법하다.넉넉히 어깨벌린 병풍산으로 안아 감은 남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있으리라. 지리산에 올라서 수만인에 수만번을 바라봤을 운무속의 무릉도원, 사천의 장곡(薔曲)속에 그렇게 신화는 역사를 타고 영걸었을 터다.

 

▲ 손에 잡힐듯한 지리산, 천왕봉이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 온다. 서낭산성에서 천왕봉까지는 45km로 아주 가깝다.

 바쁜 일상속에 눈이 나빠진다. 몽고에 사는 유목민은 눈이 좋단다. 멀리 초원 끝을 바라다보는 생활습관때문이란다. 그래서 출근길에 멀리 지리산을 바라보다 문득 선황산성을 오르고 싶은 충동에 탁터인 고지대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눈이 시리도록 파란 산과 추수가 끝난 들녘너머로 공단이 눈에 들어온다. 참 답답하게 근시안으로 살아 왔다 싶다. 눈만 나빠진게 아니라 마음조차 닫혀 있었다. 내 이웃 보다는 내 가족, 작게는  이기적인 욕심에 양심을 팔게 되기도 한다.

사남 죽천에 '천왕봉' 이름을 딴 부동산가게가 있다. 처음에는 낮설었지만  지금은 미소를 짓게 된다. 참 추운 겨울이다. 하지만 지리산이 없었다면 눈도 많고 북방의 찬바람이 바로 들이 쳤을 땅 사천, 난 역사 속에 사천이 이같은 산세의 영향으로 온화하고 따뜻하면서도 올곧은 품성으로 유전자 속에 뿌리 내렸다고 확신한다.

이후에 학교가 들어 선다면 교가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지리병풍 아래모인 햇살의 꿈은

                                             소담한꿈 싹을틔워 대양을 웅비

                                             겨레손손 이어가는 사천의 역사

                                             이땅에서 자라나는 우리손으로

 

정동면 예수리에 있는 오인숲에 마음을 빌고 서낭산성 꼭대기에 단군상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게으른 사람 산 타라고 서낭산성 석벽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탁 터인 사천을 바라보고 힘내라고 빈다. 작은 땅에 옹기종기 모여 부비며 살아가는 우리, 우리라는 공동체를 다시금 느낄 수 있도록 자연은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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