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인니 특사단 숙소 잠입사건을 바라보는 KAI 시선

국가정보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잠입해 정보를 빼내려다 들켜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을 당했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재주도 좋다. 사건 발생 보름만인 3일, 국회 상임위에 출석한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인도네시아 방산수출엔 지장이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T-50 수출에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한 나라의 장관이 국회에서 거짓을 고하진 않을 테고, 이번 일이 어떤 결말에 이를지 무척 궁금하다.

그 결말을 더 궁금해 할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T-50을 생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주), 즉 KAI 임직원들을 빼놓을 수 없다. T-50은 초음속고등훈련기로, KAI가 국내기술로 완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T-50(또는 TA-50)이 이번 ‘국정원 사태’의 밑바탕에 깔려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이후 줄곧 ‘세일즈외교’를 강조해 왔다. 그 대표적 결과물이 2009년 12월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맺은 원전 수주 계약이다. 이를 통해 ‘세일즈 대통령’으로서 그나마 체면을 세운 이명박 대통령은 후속타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국산고등훈련기 T-50의 해외 첫 수출’이었다. 마침 인도네시아가 T-50에 관심을 보였고, 이를 무리하게 성사시키려다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는 게 ‘국정원 사태’를 바라보는 대략의 시선이다. 이번 일로 국정원이 몰매를 맞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한 T-50(출처 : KAI). 인도네시아 수출이 타진되는 가운데 악재를 만났다.
반면 이번 사태로 측은지심을 받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KAI다. 분위기를 요약하면, ‘T-50 첫 수출 직전에, 그것도 국정원의 헛발질로 수출에 먹구름이 끼었으니 참 안 됐다’ 이런 시선이랄까?

정치권도 연일 정부 또는 국정원을 비판하며 ‘T-50 수출 길’을 걱정했다. KAI가 위치한 경남 사천(강기갑)과 인근 진주(김재경, 최구식) 지역구 출신의 국회의원들은 별도의 논평까지 내어가며 대책을 촉구했다.

‘바깥 분위기가 이 정돈데, KAI 구성원들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증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랍다. KAI노조 누리집 게시판에 이번 일과 관련한 글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은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 평소 조용한 공간이지만 노조원들의 푸념 정도는 이번에 나왔으리라 여겼는데, 기대가 크게 빗나갔다.

다행히 정부의 ‘KAI 완전 민영화’ 추진에 따른 반발로 노조가 마련한 행사가 2월 28일 열림에 따라, 이를 전후해 직원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대체로 허무해 하는 심경을 토로했다. 반면 뜻밖의 이야기도 들렸다.

“밖에선 유난을 떨어 대지만 안에선 웃고 있다. 다만 웃음을 참고 있을 뿐이다.”

충격적인 말이다. 다른 것도 아닌, T-50 구입문제로 방문한 특사단 숙소에 몰래 들어가 협상전략을 빼내려다 들켰다면, KAI 입장에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 아닌가. 그런데 웃는다?

경남 사천에 위치한 KAI 공장에서 T-50이 생산되는 모습.
어찌 보면 이 얘기야 말로 그냥 웃어넘길 일이지만, 웃음의 배경을 듣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KAI 김홍경 사장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국회의원과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진 김 사장은, 이 대통령 취임 후 6개월 만에 KAI 사장으로 취임했다.

김 사장 취임 후 KAI의 영업이익은 급격히 늘어, 지난해에는 1020억원대를 돌파했다. 비록 ‘전임 정해주 사장이 터를 닦아 놓은 덕분’이라는 인식이 직원들 사이에 깔려 있지만, ‘완전 민영화를 통한 KAI 매각’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이룬 결과여서 소홀히 볼 것만은 아니다.

KAI 김홍경 사장(출처 : KAI)
그러나 문제는 T-50 수출 도전이 연이어 실패했다는 점이다. 2009년 2월에는 UAE, 2010년 7월에는 싱가포르와 협상 중 다른 나라 업체에 밀렸다. 이로 인해 경질설까지 나돌았다. 이런 마당에 인도네시아 수출 건 성사는 김 사장에게도 이명박 대통령만큼이나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직접 방문해 유도요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국내에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불안감이 증폭돼 있을 때였는데, 이 대통령은 T-50 수출 건을 사실상 확정짓겠다는 각오로 방문길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웬걸, 대화 주제를 T-50에 맞추려는 이 대통령과 달리 유도요노 대통령은 대화 중 ‘T’자도 꺼내지 않았다는 게 후문이다. 그렇게 정상회담이 끝나자 이 대통령은 동행했던 당시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등 참모들에게 “준비를 어떻게 한 거냐”며 크게 꾸짖었다는 얘기 또한 들린다. 이를 계기로 관련 부처에서는 T-50 수출에 더욱 목매달게 됐고, 이른 바 ‘국정원 사태’의 불씨가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정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노트북에서 빼내려 했던 정보는 ‘협상카드’였다. 상대가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지 알아야 협상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은 빤한 이치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KAI 측은, 2500만 달러에 달하는 T-50 가격을 대폭 낮춰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KAI로서는 적잖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모습. 이 비행기도 T-50 시리즈다.(T-50B)
어떤 물건이든 처음 팔 때가 중요한 법, 한 번 가격이 결정되면 그 다음엔 더 높은 가격을 부르기가 어렵다. 이는 상식 중 상식이다. 따라서 T-50 수출 협상이 예정대로 진행됐을 경우 자칫 ‘T-50 첫 수출’이란 영광 뒤로 큰 멍에가 남을 수도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때 ‘영광’은 누가 안고, ‘멍에’는 누가 짊어지는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빤하다.

그래서 국정원의 원맨쇼가 T-50 수출에 치명타지만 “KAI는 웃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셈이다. 특히 T-50 수출에 직을 걸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김홍경 사장 입장에선, “국정원 덕에 큰 부담을 덜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물론 KAI 내부에서는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이도 많다. ‘카더라’ 통신쯤으로 받아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 “비록 가격이 다소 낮게 잡혔더라도 T-50 첫 수출이 가져올 파장과 혜택을 생각하면 감수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적극 옹호 입장도 있다. “수주 잔고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해외 시장 개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인식에는 정부 주도로 지분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데 따른 회사 내 어수선한 분위기도 깔려 있음이다.

경남 사천에 위치한 KAI 본사 전경.
끝으로 T-50 고객이라 할 인도네시아에 관해 잠시 생각해보자. 땅도 넓고 자원도 많은 신흥개발국이다.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다보니 중앙집권력이 다소 떨어진다. 그래서 내전도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 T-50을 포함해 흑표전차, 대공미사일 천공 등 우리나라 군사무기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내전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적 시각은 “군사무기보다는 빵 만드는 기계가 필요한 나라, 인도네시아”이다. 내전의 원인을 “먹고 사는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대 당 2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70억 원 하는 T-50을 여러 대 구입하겠다는 게 쉬이 믿기지 않는다. KAI가 생산한 훈련기 KT-1을 이미 사 놓고도, 부속품이 없어 고장난 채 방치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인도네시아, 정말 T-50에 관심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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