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과 자연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폐허의 미학'

 

▲ 철학자의 동산-노부부가 벤치에 앉아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는 19세기 후반부터 세계촌락으로 불렸습니다. 인구 2-5만의 도시에 수많은 외국 대학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독일 철학을 대표하는 헤겔,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야스퍼스 등이 ‘존재’하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항상 열려 있는', 그리고 '살아 있는 정신에게’가 이들이 추구한 철학의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 1620년경의 하이델베르크 안내판
 독일어 Berg(베르크)는 산을 뜻하고, Burg(부르크)는 성을 뜻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방어 성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독일에서는 부르크에 사는 사람을 시민이라고 부릅니다. 하이델베르크는 하이델베레(월귤나무)와 베르크(산)가 합쳐지면서 탄생한 지명입니다.  산에 월귤나무가 많아서 하이델베르크라는 지명이 된듯합니다. 월귤나무는 진달래과의 늘푸른 관목으로 땅들쭉, 땃들쭉으로도 불립니다. 들쭉술 담그는 열매가 달리는 들쭉나무와 거의 비슷한 나무입니다. 

▲ 고성과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1088년에 창립된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이고, 그 다음을 이은 대학이 1150년 무렵에 창립된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 그리고 이어서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프라하 대학, 빈 대학 등이 중세 시대에 창립되어졌습니다.

▲ 하이델베르크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 최초의 대학으로 1386년에 창립됩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16세기 중엽 학생 감옥이 설치되어 1914년 까지 존속했다고 합니다. 당시 대학 당국은 술을 많이 마시거나, 길거리에서 크게 고함을 지르거나, 심하게 싸우거나, 공공 시설물을 파괴하거나, 밤에 소란을 피우는 학생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감옥에 갇힌 학생들은 2-4주 동안 근신을 해야 했는데, 그 기간에도 강의는 들을 수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감옥의 벽이나 천정에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 하이델베르크 대학
 자율과 자치의 원리를 상징하는 학생 감옥은 다양한 지역, 집단 및 조직이 중앙집권화된 국가권력에 예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지방분권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서양사회와 달리 동양사회는 전통적으로 중앙집권화된 관료제 국가였습니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하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우리나라 사회와 비교하면 역사의 뿌리부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 하이델베르크 성
  30년 전쟁이 일어나면서 하이델베르크성과 도시는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전 도시가 폐허가 되다시피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폐허가 된 고성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하이델베르크 고성 논쟁'이라고 합니다. 문화재를 복구하고 수리하는 일은 그것의 유지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때에만 행해져야한다는 원칙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 원칙의 핵심은 "유지하고 오직 유지할 따름이다"입니다. 고성과 자연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폐허의 미학'입니다.

▲ 하이델베르크 골목길
 오래된 것은 부수고 끊임없이 새 건물 짓기를 반복하는 재개발, 재건축의 나라. 대한민국 국민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이델베르크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한채 체코 프라하로 가는 야간 열차에 오릅니다. 다음에 다시 오면 여유를 가지고 도시 전체를 꼼꼼하게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겠단 생각이 듭니다.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겨 보는 것도 참 좋겠단 생각도 해봅니다.

▲ 어둠이 찾아와 서서히 불이 밝혀지는 하이델베르크 골목

▲ 철학자의 동산과 하이델베르크 시가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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