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은 사랑의 배달부③]빠듯한 일정 맞추기 위해 추월운전


인도네시아 첫 여정부터 '삐끗' 에서 이어짐

'사랑의 배달부'참여자(왼쪽부터 허귀용 국장, 이영찬씨와 그의 아들 우진, 최연수씨, 이정기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장 딸 하언
인도네시아 첫 방문 가정인 부나완부왕의 가족들과 아쉬운 작별을 한 뒤, 우리를 태운 차량은 어둠이 짙게 깔린 비포장도로를 가르며 다음 방문지인 안디 집으로 향했다. 이주노동자인 안디의 집은 수도 자카르타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366km 정도 가야 한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밤새 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정기 센터장이 다음날 일정을 알려줬다. 이 말은 달리는 차량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는 것. 인도네시아에서 보내는 첫날 밤 부터 차 안에서 노숙이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12인승 승합차로 100kg이 넘는 짐, 운전기사와 봉사단 6명이 타기에 딱 적당한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차 안에서의 새우잠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일반 승용차에 비해 승합차의 승차감은 언급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게다가 피곤에 찌든 몸을 가누기에 힘든 의자, 다리도 편하게 펴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달리는 차 안에서의 새우잠은 최악이었다.

첫날부터 강행군에 지쳐서인지 하나둘씩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반면 이 센터장은 ‘사랑의 배달부’의 여정에 처음 동행한 운전기사 바유스씨의 운전 솜씨와 길 안내가 못 미더웠는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 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봉사단의 안전과 모든 여정을 직접 챙겨야 하는 이 센터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고 피로감은 우리보다 더했다.

흔들리는 차와 비좁은 차안이 불편해 선잠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인도네시아의 도로 야경을 흐릿한 눈으로 주시하며 새우잠의 불편함을 달랬다.

인도네시아의 고속도로 야경은 낮보다 더 역동적이다. 중앙 분리대가 없는 양방향 2차선으로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대형 트럭들. 사람들을 실은 버스나 자가용보다는 대부분 짐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들이 길게 줄을 선 듯 좁은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우리 차는 대형 트럭의 행렬 사이를 추월하는 곡예 운전으로 속도를 냈다. 대형 트럭 뒤만 따라서는 일정을 맞추기 힘들었기에 곡예 운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몇 시간째 반복되는 곡예 운전에 반대 차선의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사랑의배달부호’는 목적지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창문 밖은 딴 세상으로 변했다. 고속도롤 벗어난 듯 했다. 이른 아침의 상쾌한 공기 속으로 펼쳐진 넓은 평야가 새우잠에 찌든 우리의 피로를 씻어주는 듯 했다.

8월3일 저녁 9시쯤 부나완부왕 집에서 출발한 우리는 다음날 오전 8시45분에 두 번째 방문 가정인 안디 집에 도착했다. 장장 12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왼쪽부터) 안디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안디의 영상메시지가 나오자 환하게 웃었지만, 잠시후 안디의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도착을 해서 내심 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미리 연락을 받은 안디의 가족은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들은 안디의 영상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 역시 부나완부왕의 가족처럼 반가움의 기쁨과 그리움의 슬픔이 교차했다.

이어 한국으로 가져갈 가족들의 영상 메시지 촬영이 끝난 뒤, 그들은 땀과 피로에 흠뻑 지친 우리들에게 흔쾌히 샤워실도 내주고 먹음직스러운 아침 밥상도 차려 줬다. 아침 식사를 먼저 마친 택시기사 최연수씨는 동네 아이들에게 갖가지 색깔의 풍선을 나눠주며 알듯 모를 듯 한 말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안디 친척들의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자, 환하게 웃고 있다.
안디 집에서 3시간 정도 머문 우리는 다음 방문지인 이주노동자 베제의 집으로 이동했다. 다행스럽게도 베제의 집은 26km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만 2시간30분이 걸렸다. 운전기사 바유스씨 덕분(?)이었다.

인도네시아 일정 내내 우리를 태운 차량의 운전기사로서 길 안내를 맡았던 바유스씨.
올해 50대 중반 정도인 바유스씨는 자카르타 내에서만 운전경험이 있지 그 외에 지역은 경험이 없다고 했다. 그래선지 이동할 때마다 방문 가정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갔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하고, 엉뚱한 곳으로 들어서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길을 헤매다 보니 쓸데없이 몇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인도네시아 일정 내내 바유스씨는 그만의 ‘길치’ 운전으로 우리를 괴롭혔다. 그나마 길을 찾기 위해 현지인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노고에 위안을 삼았다. 참고로 인도네시아는 내비게이션이 없다.

이 센터장이 인도네시아 지도를 보면서 운전기사 바유스씨에게 일정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인도네시아 일정이 끝날 때쯤 안 사실이지만, 바유스씨는 노안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운전기사로 일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말을 안 한 듯 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안경은 돈이 아까워서 사지 않은 듯 했다. 작은 부분이지만 그들의 팍팍하고 고달픈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영상 메시지를 촬영하는 도중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 베제의 가족들(모자를 쓴 사람이 베제의 아버지다)
어쨌든 베제 집에서 3시간가량 머문 뒤, 우리는 또다시 다음 가정인 이주노동자 투르가문의 사촌형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투르가문의 사촌형 집까지는 210km, 7시간만인 밤 12시에 그곳에 닿았다. 1시간 가까이를 헤매고 난 뒤였다.

해외봉사단과 투르가문 가족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몇년 간 보지 못했던 투르가문의 영상메시지에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던 그의 친누나의 모습에서 가족간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는 그의 사촌형은 투르가문 친누나가 오면 영상메시지를 보자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는 잠시 여장을 풀고 곧바로 잠에 빠졌는데, 10분도 채 안 되어서 도착을 했다. 피곤에 지쳐 바위 덩어리처럼 무거워진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 우리는 영상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좀처럼 깨어나지 못한 이 센터장은 겨우 몸을 추스렸다. 
 
피곤에 지친 이 센터장이 침대에 쓰러져 자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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