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처방식 안전장치보다 '안전한 사회' 공감대 필요
몇 달 전 하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자고 떼쓰는 딸아이 성화에 강아지 대신 키우게 된 십자매 두 마리가 나란히 둥지 속에서 알을 품은 채로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딸아인 정말 슬픔에 못 이겨 눈물범벅이 되어 한참을 울고 또 운다. 옆에서 보는 나도 따라 애틋한 마음이 든다.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도 그렇고, 딸아이가 마음을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새를 강가에 묻으면서 딸아이는 또 통곡을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더 가슴 아프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 모두 직장을 다녔던 터라 웬만큼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아이의 슬픔은 며칠 이어졌다. 이제 슬픔을 넘어 무섭단다. 학교 다니는 길도, 집에 혼자 있기도...
무엇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두렵게 하는 걸까??
나는 늘 생각했다. 우리 아이가 그저 엄마의 품에서 어리광만 부리는 아이보다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자기 할 일 잘 챙겨서 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그래서 애써 무관심한 듯 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딸아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두려움의 밑바탕엔 매스컴에서 접하는 각종 사건사고 탓도 큰 것처럼 느껴진다. 연일 터지는 아동성폭행이나 또 다른 끔찍한 사건들.
‘사회가 왜 이렇게 불안하게 바뀌었을까’ 원인을 따지자면 할 얘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내가 그런 것까지 다 헤아리기는 힘들다. 다만 당장 우리 아이들, 여성들의 안전문제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뭔가 대책이 없을까? 세상이 불안하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을 바깥으로 안 내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모가 24시간 따라 다닐 수도 없다. 정부는 성매매특별법을 마련해 성매매 업소를 없애고, 성폭력범들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하지만 믿음이 크게 안 간다.
늘어나는 성 관련 범죄를 두고 풍선에 비유한 글이 생각난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범죄를 근절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참 동감이 가는 비유다. 최근 성 범죄자들을 두고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었다. 또 최근에는 모든 학교에 CCTV를 설치한다는 경남교육청 발표도 나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큰 시각으로 ‘안전’ 문제를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범죄 이전에 범죄의 배경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잘 모르긴 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더 배려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작은 새의 죽음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새삼 알게되었듯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세상은 언제쯤 오려는지....아이의 강아지 타령은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