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처방식 안전장치보다 '안전한 사회' 공감대 필요

딸아이가 집에서 기르던 십자매가 죽었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부스스 잠이 들깬 눈으로 베란다로 나간 딸아이가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 새가 죽었단다. 세상에 어제까지도 멀쩡히 있던 새가 하루아침에 무슨 일일까?

몇 달 전 하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자고 떼쓰는 딸아이 성화에 강아지 대신 키우게 된 십자매 두 마리가 나란히 둥지 속에서 알을 품은 채로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딸아인 정말 슬픔에 못 이겨 눈물범벅이 되어 한참을 울고 또 운다. 옆에서 보는 나도 따라 애틋한 마음이 든다.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도 그렇고, 딸아이가 마음을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새를 강가에 묻으면서 딸아이는 또 통곡을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더 가슴 아프다.

태양을 바라보며 똑바로 자라는 해바라기처럼 우리아이들도 해맑고 힘차게 자라났으면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만, 주변 환경은 여의치 않다. -뉴스사천 자료사진
“학교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 그나마 이 새들이 나를 반겨줬는데, 이젠 누가 나를 반겨줘?”

아이가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 모두 직장을 다녔던 터라 웬만큼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아이의 슬픔은 며칠 이어졌다. 이제 슬픔을 넘어 무섭단다. 학교 다니는 길도, 집에 혼자 있기도...

무엇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두렵게 하는 걸까??

나는 늘 생각했다. 우리 아이가 그저 엄마의 품에서 어리광만 부리는 아이보다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자기 할 일 잘 챙겨서 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그래서 애써 무관심한 듯 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딸아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두려움의 밑바탕엔 매스컴에서 접하는 각종 사건사고 탓도 큰 것처럼 느껴진다. 연일 터지는 아동성폭행이나 또 다른 끔찍한 사건들.

노르웨이 출신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 참을 수 없는 공포심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사실 보도를 통해 접하는 끔찍한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며 남의 일로만 여겼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초등학교나 가정집에서도 아동성폭행이라는 끔찍한 일들이 곧잘 생기기 때문이다.

‘사회가 왜 이렇게 불안하게 바뀌었을까’ 원인을 따지자면 할 얘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내가 그런 것까지 다 헤아리기는 힘들다. 다만 당장 우리 아이들, 여성들의 안전문제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뭔가 대책이 없을까? 세상이 불안하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을 바깥으로 안 내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모가 24시간 따라 다닐 수도 없다. 정부는 성매매특별법을 마련해 성매매 업소를 없애고, 성폭력범들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하지만 믿음이 크게 안 간다.

늘어나는 성 관련 범죄를 두고 풍선에 비유한 글이 생각난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범죄를 근절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참 동감이 가는 비유다. 최근 성 범죄자들을 두고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었다. 또 최근에는 모든 학교에 CCTV를 설치한다는 경남교육청 발표도 나왔다.

최근에는 모든 학교에 CCTV를 설치한다는 경남교육청 발표도 나왔다. 하지만 너무 응급처치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런 노력들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응급처치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성폭행범이 더 큰 범죄자로 변하지는 않을까, CCTV가 없는 곳은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큰 시각으로 ‘안전’ 문제를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범죄 이전에 범죄의 배경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잘 모르긴 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더 배려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작은 새의 죽음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새삼 알게되었듯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세상은 언제쯤 오려는지....아이의 강아지 타령은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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