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부산 “인가대로” 외치지만 결국은 '동상이몽'

 “서울 갈 때 어떻게 가세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승용차로, 버스로, 기차로, 아니면 비행기로 하늘을 날아서...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서민들이 가장 떠올리기 쉬운 방법은 버스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최근 이 ‘서울행 시외버스’를 두고 이상한 분위기가 감돈다. 좋게 말하면 버스업체들 사이의 ‘경쟁’이요 달리 보면 소리 없는 ‘전쟁’이다. 관계자 표현을 빌면 ‘폭풍전야’가 적절하다.

지금까지 삼천포에서 출발해 사천읍을 거쳐 서울로 가는 버스를 운행하는 업체는 한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다른 여객운수업체가 사천읍에 배차를 희망하면서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한 업체가 노선을 독점하는 것보다 여러 업체들이 경쟁하면서 서비스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업체들 사이의 오랜 관행과 지나친 견제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행 시외버스’의 운행 현황과 갈등 내용을 짚어보고 이 문제의 해법은 없는지 살펴본다.

사천읍 시외버스터미널

경전여객-부산교통 ‘묵은 갈등’

현재 삼천포에서 출발, 사천읍을 경유해 서울로 가는 버스를 운행하는 것은 경전여객 한 업체뿐이다. 그리고 최근 사천읍에서 서울행 버스 배차를 바라는 업체는 부산교통. 양측의 갈등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2001년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심해졌다.

2003년에는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대진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과 진주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전여객이 진주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려 하자 부산교통이 이를 방해했다.

서울방면 홈플레이트에 들어가기 힘들어진 경전여객은 버스를 부산교통 서울행 버스 뒤쪽에 바짝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버스에 올랐던 승객들이 다른 차로 옮겨 타는 등 불편을 겪었고, 양측 직원들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당시 경전여객은 경상남도에 등록된 계통도에 따르는 것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부산교통은 이전까지 운행하지 않다가 갑자기 끼어들기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5월과 9월 두 차례 불거진 충돌 이후 경전여객은 진주터미널 경유를 포기했다.

그리고 5년 만에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천읍터미널이 그 무대다. 최근 큰 기업들이 사천에 들어오면서 평일에도 서울과 사천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늘자 부산교통이 사천읍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운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승객 늘면서 사천읍터미널 노선 쟁탈전

물론 배차를 업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외버스운행은 경상남도의 허가사항이기 때문이다. 도는 버스의 운행노선과 운행횟수 등에 관해 일일이 점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행정처분으로 과징금을 부과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사천에서 서울로 운행하는 버스는 경전여객 한 곳으로, 이는 업계 내의 오랜 관행처럼 굳어 있다. 마치 남해군에는 남흥여객, 통영과 고성 쪽은 경원여객 등이 전담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사천읍 시외버스터미널 모습(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경전여객이 서울로 운행하는 버스는 하루 13회. 이 가운데 8회는 삼천포에서 출발해 사천을 들러 대진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을 향하고, 나머지 5회는 사천을 들른 뒤 남해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향한다.

여기에서 논란의 싹이 텄다. 객관적 사실로 볼 때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00킬로미터 가까이 둘러가고 그만큼 시간도 더 걸린다. 게다가 10월15일 경상남도의 행정개선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경북 현풍에 반드시 들르도록 돼 있었다.

경전여객은 대진고속도로 개통 이후 이 도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노선조정을 신청했으나 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련 업체의 반발이 주된 이유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풍을 경유하는 승객은 줄었다. 경전여객은 현풍 경유노선을 대진고속도로 노선으로 임의변경 했고, 관련 업체의 고발에 따라 도는 과징금990만원이란 행정처분을 행정개선명령과 함께 내렸다.

그리고 행정개선명령으로 현풍 경유노선에서 현풍을 없애긴 했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도록 한 규정을 바꿔주지 않음으로써 ‘기이한 운행계통’을 낳고 만 것이다. 당연히 “상식을 벗어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도 관계자는 이런 지적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관련 업체에서 크게 반발하므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언젠간 대진고속도로 쪽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행 운행계통 변화, 힘의 논리?

결국 이번에도 관련 업체의 반발이 문제인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관련 업체는 어디일까? 짐작대로 사천읍터미널 배차를 희망하는 부산교통이다. 부산교통 관계자는 오히려 “대구나 경북 방향으로 갈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번 개선명령이 큰 불만일 것”이라며 노선에서 현풍을 뺀 도의 결정을 비판했다.

여기서 잠시 부산교통에 대해 알아보자. 부산교통은 시외버스와 시내버스 모두를 담당하는 경남 최대 여객운송업체다. 사천의 삼포교통, 통영의 통영교통, 그리고 대한여객, 영화여객이 사실상 부산교통의 소유다. 나아가 부산교통 업체 대표는 경남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과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부회장을 맡아 업계 영향력이 꽤 큰 편이다.

2001년 대진고속도로 개통 이전까지는 서울행 노선 1개에 4회 운행에 그쳤지만, 개통 이후 계열사를 이용해 진주-단성-서울, 진주-산청-서울, 진주-생초-서울 등으로 10개 노선으로 늘렸다. 그에 따라 해마다 운행횟수도 늘릴 수 있게 되어 지금은 모두 50회 운행이 가능해졌다.

이에 비하면 경전여객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당시 3개 노선에 총 8회 운행하던 것에서 지금은 3개 노선에 13회 운행하는 것이 전부이다. 경전여객은 이것이 “부산교통의 방해와 로비 때문”이라고 하지만 부산교통은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배경 속에 사천읍터미널 배차 문제가 놓여 있다.

사천읍터미널 대기실

경전여객은 사천읍에 몇 번 들를 수 있나

부산교통이 배차를 희망하는 횟수는 6회다. 그리고 그 근거도 있다. 도로부터 운행계통 허가를 받을 때 이미 출발지를 사천읍으로 해 둔 것이 25회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시간인가까지 받은 것이 20회. 따라서 1일 20회 운행이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사실상 운행하지 않았다. 부산교통 관계자는 “사천읍에서 매표행위가 안 됐고 그래도 노선유지는 해야 되기 때문에 빈차로 사천읍을 경유해 올라간 것이 매일 6회였다”고 강변한다.

나아가 “현재 경전여객이 불법 운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주장은 경전여객이 13회 운행하는 서울행 노선 가운데 계통도 상 허가된 운행횟수는 2회뿐이라는 것. 따라서 나머지 11회는 사천읍에서 손님을 태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도에 확인 결과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13회 중 8회는 삼천포-진주-대진고속도로-서울로, 3회는 삼천포-진주-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서울로, 2회는 삼천포-사천-진주-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서울로 각각 계통도에 명시되어 있는 것.

하지만 도 시외버스운송업무 담당자의 해석은 달랐다. 삼천포와 사천읍은 같은 자치단체이고, 해당 자치단체 안에서 “일일이 정차지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모든 서울행 버스가 사천읍에 들르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양측 모두 “인가대로 하자” 그러나...

당연히 경전여객의 주장도 이와 같다. 심지어 부산교통의 사천읍터미널 배차를 반대하고 있다. 5년 전 상황의 앙갚음인 셈이자 노선을 공유할 경우 자칫 경영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출이다.

그렇다면 경상남도의 입장은? 이번에도 관련 업체의 반발을 이유로 아직까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양측 입장을 정리하자면, 부산교통은 사천읍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운행하는 것은 이미 허가된 것이어서 문제가 없으므로 당장 운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전여객은 운행계통에 언급된 2회만 사천터미널을 경유하라는 것.

반면 경전여객은 도에서 인가된 대로 사천읍에 부산교통이 들어오는 대신 자신들도 진주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운행하겠다는 것.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재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모두 사실상 ‘인가 대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전여객의 13회 운행 중 사천터미널 이용가능 횟수가 2회냐 13회냐를 놓고 서로 유리한 대로 해석하며 ‘인가 대로’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사천읍터미널 전경

경상남도 뒷짐 속 시민 불편 가중 ‘또 시민 나서야 하나’

업체들 간의 노선 다툼에 불편을 겪는 것은 시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사천읍 쪽 시민들의 불편이 크다. 지난달 사천읍터미널을 이용해 서울로 간 승객은 2200명. 읍터미널 관계자는 “자리가 없거나 배차 간격 1시간30분이 부담돼 진주로 올라가는 시민들이 많았다”라고 전하고 있다.

또한 최근 도의 행정처분 뒤부터는 사실상 서울행 버스운행이 1일 5회 사라진 셈이어서 시민들의 불편이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급한 승객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1시간 가까이 돌아가는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 시민의 제보에 따르면 지난 7일 금요일 저녁 다른 버스의 좌석매진으로 중부내륙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이용한 시민들이 교통체증 등으로 큰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이처럼 시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아직 안 보인다. 최근 두 업체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대화의 자리를 가졌으나 운행계통에 관한 이견으로 일찌감치 결렬되고 말았다. 그리고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경상남도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사천시민 입장에선 서울행 버스가 늘어 기다리는 시간이 줄고, 진주로 나가서 갈아타지 않아도 되고, 더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론 이 문제가 그저 풀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심지어 “언제든지 5년 전 진주에서와 같은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고 업체 관계자가 말하는 상황이어서 그들의 갈등을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업체끼리의 노선다툼에 시민들은 언제까지 불편을 견뎌야 하고 마음을 졸여야 하는가.

경상남도의 침묵이 계속된다면 결국 시민들이 나서서 문제 해결을 촉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남는다. 그러나 그에 앞서 지역정치인이 먼저 나서주기를 바란다면 시민들의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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