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시인들이 말하는 박재삼 시인의 시세계와 서정성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인 고 박재삼(1933∼1997)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려 눈길을 끈다. 지난 11일 저녁 박재삼 문학의 밤 행사에서 정진규, 송수권, 차한수 시인의 주제발표로 박재삼의 시에서 나타난 서정성과 시세계, 이상 등을 분석했다.

정진규 시인이 박재삼 시인의 삶과 시세계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박재삼문학제

정진규 시인은 이날 세미나에서 '아득하면 되리라', '몰라', '반짝거린다', '글썽이다' 등 박재삼 시인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시어에 담긴 의미를 살펴봤다.

정 시인은 '아득하면 되리라'는 박재삼의 시세계를 집약하는 시어라고 단언했다. 정 시인은 "서정성을 드러내는 이 시어는 현실을 뛰어넘어 저 경계까지 다가갈 수 있는 무한의 공간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로 읽힌다"고 전했다.

또 "박재삼 시인은 시에서, 일상생활에서 '몰라'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결론을 쉽게 말하는 것은 오만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은 겸허한 자세와 시가 지닌 내면의 깊이를 아득하고 넓은 공간 속에서 암시적으로 풀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글썽이다'에 대해, "추억 같은 곳에서 밀도 있게 그려지는데, '슬픔'을 표현하지만, 슬픔이지만은 않은 깊이를 드러낸다"며 "너무 아름답고, 감격해도 '글썽'이는 것처럼, 사랑의 깊이와 감동을 자아내는 시어"라고 말했다.

이어 "박재삼 시인의 시에서 '반짝거린다'는 밝고 경쾌하고, 명랑한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세계, 서정성에 바탕에 둔 중심적인 시어"라고 밝혔다.

정 시인은 박재삼 시의 특징을 △모든 대상을 구조적으로 하나로 엮으며 △감성을 사물화하고 △반복적인 구조로 리듬을 갖고 내용을 전개해 시적 공간을 확대하고 △체험과 삶의 현장이 연결된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시인은 "박재삼의 시는 삶의 현장에서 동떨어진 적 없고, 읽어서 이해되지 않은 시가 없었다"고 말했다.

11일 문학의 밤 행사에 참석한 시민과 문인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박재삼문학제

정 시인은 학교 선배로 만났던 박재삼 시인과의 추억을 들려주면서, '시'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눈에 밟힌다'는 말을 아니? 그게 진짜 '시'야.

  예?

  우리 어머니들이 쓰는 말 중 1등은 '눈에 밟힌다'라는 말이지. 시는 그리움이야. 그리움은 형체도, 무게도 없지. "눈에 밟히다"를 살펴봐. 그리움이 형체로 전이됐고, 무게가 있는 존재로 변했어, 절실하고 간절한 것이지. 우리나라 여성들은 기막힌 시인이야. 시는 사랑이야.

  시가 사랑이라면, 연애를 잘해야겠네요.

  모든 대상을 연애감정으로 바라봐. 연인으로 대하고, 연애하듯 그리운 감정으로 만나, 그것이 '시'야.

 
정 시인은 어릴적 박재삼 시인이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재삼의 시는 논리화, 구조화, 분석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체험을 통해 쓰는 시이고, 감동"이라며 "그게 진짜 공부"라고 덧붙였다.

 

송수권 시인이 박재삼 시인의 걸어온 삶과 자신과의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재삼문학제

이어 송수권 시인은 박재삼의 걸어온 삶과 인연을 술회했다. 송 시인은 박재삼 시인을 회고하면서 지엄했던 시창작 이론을 소개했다.

"내가 알고 있는 동양이나 서양의 명시들은 요즘 시처럼 어렵고 딱딱한 것은 아니다. 읽어서 잔잔하게 감동의 물결을 적셔주고 있는 것이 분명한가. '이것이 현대시다, 안 읽을래!라고 깡패주의로 나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 삶의 무늬는 아름답다 중에서

그는 "항상 문단권력의 실세도 감투욕도 예술원 회원도 그 개목걸이같은 금은관 훈장도 없이 숟가락 한 벌 밥그릇 한 벌로 살다가 가셨다"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차한수 시인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박재삼문학제

마지막 주제발표에 나선 차한수 시인은 박재삼 시를 3가지 특징으로 정리했다. 박재삼의 시는 △한(恨)의 표상인 눈물 가난 비애와 같은 아픔을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고, △논리적 지성으로 밝힐 수 없는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서러움과 그리움, 가난과 병, 고향 상실, 자신의 자화상을 찾으며, △자연과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에 도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차 시인는 박재삼의 첫 시집 '춘향의 마음'에서 15시집 '다시 그리움으로'에 이르기까지 시세계를 돌아보면서, "박재삼의 시는 빈틈없이 꽉 찬 시의 알맹이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며, "그의 소박하고 토속적이면서 전통적 서정의 맥락에서 빚어진 언어의 꽃은 '빛나는' 시의 아득한 지평"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문학의 밤 행사에서는 이윤옥 명창의 판소리 공연, 문정아 무용가의 춤공연 펼쳐, 문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박재삼의 시 세계와 정신을 추모했다.   
 
 

   
이윤옥 명창의 판소리 공연
박재삼문학제
   
문정아 무용가의 전통춤 공연
박재삼문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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