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영조 시민기자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해시계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다시피 1443년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습니다. 그런데 그 훈민정음을 창제한 까닭은 어리석은 백성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지요. 만일 지식계층인 사대부를 위한 것이라면 한문에 익숙해 있기에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세종은 백성과의 소통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 두 번이나 백성과 소통하기를 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효도를 가르치는 “삼강행실도”를 만들어 보급한 것이고, 또 하나는 오목해시계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혜정교에 놓아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소통하려 한 것입니다.

특히 오목해시계 곧 앙부일구(仰釜日晷)는 그저 해시계가 아니라 그 안에 12지신 그림을 그려넣어 한문을 모르던 백성도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한 백성 사랑의 한 표현입니다. 곧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오목해시계는 임금이 백성과 시간을 공유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계를 지배층만 독점하지 않고 글을 모르는 무지렁이 백성도 알게 한 것이죠. 이미 한글창제 9년 전 세종은 글자로 소통하기 이전부터 그림으로라도 백성과 소통하려 했고, 그런 세종의 마음이 결국 위대한 훈민정음 창제로 이어진 것입니다.

참고 :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 김슬옹,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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