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와룡마을

와룡마을은 그야말로 녹색의 향연이다. 빈 무논도 곧 녹색으로 가득 채워질 테다. 보는 이에겐 위안과 치유를 준다.
와룡마을은 그야말로 녹색의 향연이다. 빈 무논도 곧 녹색으로 가득 채워질 테다. 보는 이에겐 위안과 치유를 준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와룡이 두 팔을 벌려 포근하게 감싸 안은 와룡마을. 북으론 능선이 막아서고 남으로 돌아앉은 광야의 별천지다. 누운 용이 굽어보는 와룡마을에 들었다. 입구엔 와룡저수지가 마음에 풍요를 던진다. 와룡산 능선에서 흰 구름이 내려와 반겨주니! 마치 누워있던 용이 꿈틀대며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삼천포항 바다가 와룡의 생활무대라면 와룡저수지는 목욕탕쯤 되겠다. 그럴싸하니 용은 물과 친하지 않겠는가. 실안 앞바다에선 용이 승천하고 각산에선 뿔을 드리우고 주산인 와룡산(臥龍山·801m)에선 아예 엎드려 누웠다. 삼천포는 용들의 고향인가 보다.

와룡저수지 풍경
와룡저수지 풍경

실안에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있다면, 와룡마을엔 풍요로운 산골 풍경이 있다. 주말이라 등산을 하거나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로 붐빈다. 마을을 지나쳐 와룡의 허리춤을 바라보고 섰다. 거대한 초록 스크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평온 그 자체다. 도시민의 삭막함을 일깨우는 산림치유 용어가 있다. 녹시율! 단위면적당 숲의 녹색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도심에서 녹시율이 높은 곳은 인기가 높다. 초록 DNA를 가진 인류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때문일 거다.

녹음 가득한 산자락
녹음 가득한 산자락
물까치
물까치

임도를 따라 걷는 사람들도 많다. 청룡사 오르는 길가에 대반하가 피어 있다. 특유의 넓은 잎과 기다란 꽃대를 뽑아 올리고 섰다. 남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천남성과의 독성이 강한 약용식물이다. 청룡사에서 이어지는 임도를 내려서니 덕룡사가 나온다. 절 이름에도 온통 용이로구나! 덕룡사 텃밭에는 큰천남성이 돌담을 따라 여러 곳에 나 있다. 이름처럼 꽃도 잎도 엄청나게 크다. 남부지방 해안가나 섬 숲 그늘에서 자라는 진귀한 약용식물이다. 아마도 어떤 목적으로 심은 것 같다. 와룡마을에는 조경수를 키우는 밭이 많다. 문득 바라보니 물까치 한 마리 조경수 밭에 날아왔다. 바닥에서 무언가 찾는 듯하더니 이내 나무로 폴짝 날아오른다. 구골나무의 새싹을 뜯어먹는다. 애벌레가 나오는 봄철엔 먹을 게 많고, 그래서 새끼를 품기에 알맞은 계절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드라운 채식도 하는구나!

느티나무 돌무더기 당산
느티나무 돌무더기 당산

비 내리는 와룡저수지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커다란 보호수 느티나무 아래 돌무더기 당산이 있다. 와룡저수지의 중심 풍경이다. 1959년 와룡저수지가 들어설 당시에도 이 느티나무와 돌무더기 당산은 있었을 터다. 이곳은 마을을 드나드는 입구이자 경계였다. 중요한 길목인 셈이지. 예전에 이런 곳을 출입할 때 돌을 올려놓거나 고개 숙여 예를 차렸다. 서로 다른 경계를 드나들 때 치루는 통과의례다. 이 느티나무 돌무더기 당산에는 자연에 동화하고 허리 숙여 삶의 안녕을 바라던 우리의 오랜 생활풍습이 녹아 있다.

졸참나무 어린 도토리
졸참나무 어린 도토리
때죽나무 꽃과 벌
때죽나무 꽃과 벌

졸참나무 꽃진 자리에 좁쌀 같은 것이 생겨 나왔다. 이것이 어린 도토리다. 수꽃가루가 수없이 바람에 날리다가 그중 하나가 암꽃 머리에 내려앉은 거지. 그 ‘하나’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의 확률이 들어맞은 걸까? 풍매화의 결실은 확률 게임이다. 그러나 가을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도토리를 보라. 꽤 성공률이 높은 확률 게임인 셈이다. 5월의 흰 꽃, 때죽나무 하얀 꽃무리가 주렁주렁 피어났다. 덩치 큰 벌 한 마리 향기의 유혹에 이끌려 꽃에 매달린다. 호숫가에 발을 담근 왕버들 둥치를 더듬는 쇠딱다구리도 물까치도 날개를 접지 않는다. 비가 와도 밥은 먹어야 하는 게지. 저수지 위쪽으로는 약간의 습지가 있다. 이곳을 지나치는데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가 우렁차다. 이 소리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중년들에겐 이유 없는 치유의 소리이기도 하다. 함께 나눌 수 있겠다 싶어 폰을 꺼내 녹음을 해둔다. 저수지 둑에서 바라보는 와룡마을은 여전히 운무에 감싸였다. 신비롭게 꿈틀대는 용들의 이야기가 소곤소곤 들려오나니. 어느새 와룡마을 곳곳은 내 마음에 치유의 숲길이 되었구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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