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 했습니다. 추억은 싱그러운 과거를 상징합니다. 반세기도 넘은 이야기가 자칫 ‘꼰대’ 소리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 쩝, 어쩌겠습니까. 

중2 겨울 방학 때였습니다. 나는 버스를 타고는 구포다리에서 내려 한적한 들녘으로 걸어갔습니다. 동학년 아이들이 떼거리로 모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누군가와 얘기를 나눈 뒤 우리를 밭으로 인솔했습니다. 이어 옅은 눈이 쌓인 꽁꽁 언 땅을 마구 밟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보리밟기였습니다. 보리 뿌리가 땅 속에 잘 내리도록 흙을 다지는 작업이었습니다. 거듭 흙을 밟았습니다. 찬바람이 불어 손발은 시리고 귀는 떨어져 나갈 것 같았습니다. 그런 추위에도 아이들과 장난치면서 재미났습니다.  

이즈음 나는 팝송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사이몬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철새는 날아가고’ 감미로우면서 환상적인 음률의 조화였습니다. 닐 다이아몬드의 ‘솔리터리 맨’, ‘스윗 캐롤라인’ 화려하지는 않지만 굵은 메시지를 담은 음유시인이었습니다. 벤처스의 ‘파이프라인’, ‘와이프 아웃’, ‘장고’ 노랫말 없이 중후하면서 경쾌하게 흥을 부추기는 록밴드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폴앤카의 ‘파파’, ‘다이아나’, ‘크레이지 러브’ 우수를 열정에 담아 토해 내는 음색을 잊지 못합니다. 숱한 가수들의 노래를 접하면서 나는 광복동 미화당백화점으로 달려갔습니다. 1층에서는 가수들의 엘피LP판을 팔았습니다. 복사판 한 장에 50원∼100원 했습니다. 음반을 사서 거머쥐는 순간, 맛은 ‘아싸’ 달짝지근했습니다. 

4월 5일 식목일엔 산에 나무를 심으러 갔습니다. 고1 때였습니다.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괭이, 삽, 곡괭이 따위를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난생처음 곡괭이질을 하는데 이놈이 얼마나 무겁던지 부리가 흔들리면서 땅에 제대로 꽂히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시골에서 논밭일을 하며 자란 아이들은 어깨 너머로 곡괭이를 들었다가 내리찍는데 쉬익 소리가 나면서 그대로 팍 팍 꽂혔습니다. 와아,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수십 그루의 나무를 심고 나면 힘들었지만 밥맛은 꿀맛이었습니다.

괴롭고 가장 껄끄러웠던 일은 송충이 잡기였습니다. 그때는 소나무에 웬 송충이가 그렇게도 많았을까요. 소나무 한 그루에 붙은 송충이만 해도 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1인당 목표량 5kg. 송충이를 잡으러 학교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입은 저만치 튀어나왔습니다. 

그날따라 유달리 송충이 잡기가 싫었습니다. 꿈틀거리는 게 징그럽고, 잡다가 몸에 떨어지는 놈들 섬뜩하고. 꾀를 냈습니다. ‘옳거니, 비닐주머니에 돌멩이를 넣어 무게를 늘리자.’ 이윽고 검사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담임 선생님께서 눈치를 긁으시고는 비닐주머니를 땅바닥에 뒤집어엎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놈의 돌멩이 어디 도망칠 줄도 모르고 눈앞을 떼구루루 굴러떨어지는데 어찌나 야속하던지. 퍽, 퍽. 그날 개인사에 빛날 만큼 나는 허벌나게 깨졌습니다. 먼 하늘 보며 중얼중얼. ‘아, 좆 된 사나이 서부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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