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스즈메의 문단속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홍보물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홍보물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아이들의 정서 파괴와 탈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만화를 불태우던 현대판 분서갱유의 시대가 있었다. 웹툰과 애니메이션이 서브컬처로 각광 받는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왜곡된 잣대를 들이대던 시절, 이런 시기에도 범접하지 못할 이름이 미야자키 하야오였으니 그의 뒤를 잇는 작가가 나올까 하는 기대와 걱정은 당연했다.

이후 여러 이름이 오르내리던 중 신카이 마코토라는 촉망받는 신예가 등장하더니 어느 순간 거장의 반열에 접어들었다. 맞다. 그는 정말 거장이 되었다.

이상향을 꿈꾸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현재를 반추하던 게 미야자키 하야오였다면, 신카이 마코토는 판타지라는 외피를 살짝 입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를 그대로 비춘다. 어그러진 시대의 불합리가 아니라 상처 입고 쫓기는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방식이다. 이런 그가 이번에 끌어온 지진이라는 소재는 공교롭게도 시리아-튀르키에 지진과 맞물려 더욱 마음 아프고 그만큼 위로와 위무, 공감과 애도의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한 소녀가 폐허의 문을 여는 순간 재난이 닥쳐왔다. 소녀는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벌어진 사태를 막고자 재난을 부르는 문을 찾아다니고, 그렇게 문을 닫을 때마다 성장하면서 도무지 마주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진실을 향해 다가가려 애쓴다. 외면하는 것만으로는 상실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기억은 예고하지 않고 불쑥불쑥 솟구치는 법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이런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딛고 나아가라고,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 간절한 마음이 심장에 깊숙이 날아와 박혀서 멈출 수 없는 눈물과 여운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기대치를 채우는 모험 애니메이션의 색채와 빛으로 가득한 섬세한 그림과 맞물려서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은 극장 문을 나서는 내내 가슴 속에 울려 퍼진다.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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