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호 전 과장 <삼천포항 개항사>에 대한 소고 발표
“‘세관감시서’ 설치를 개항으로 보는 게 타당” 주장
‘삼천포항은 군수·수산 차원에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대한제국 4년(1910년) 2월 1일로 삼천포에 세관감시서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긴 관보의 일부분.
대한제국 4년(1910년) 2월 1일로 삼천포에 세관감시서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긴 관보의 일부분.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삼천포항의 개항일은 ‘1910년 2월 1일’이다.”

사천을 대표하는 항구인 삼천포항은 언제 문을 열었을까? 삼천포항이 무역항으로 지정된 날을 개항일로 보는 것은 타당할까? 이런 물음을 던지면서 삼천포항 개항의 역사를 고찰하는 글이 발표돼 눈길을 끈다.

글을 쓴 이는 사천시 해양수산과장을 지낸 문정호(1953년생) 씨다. 그는 사천문화원이 최근 펴낸 「2022 사천문화 제24호」에 <삼천포항 개항사(開港史)에 대한 소고(小考)>란 글을 실었다.

그는 이 글에서, 경상남도 항만사업소의 자료나 「삼천포시지」에서 1966년과 1965년을 삼천포항의 개항일로 기록하고 있음을 아쉬워했다. 부산, 마산, 울산, 목포, 군산 등 국내 주요 항들이 조선 말기 또는 대한제국 시기에 개항했다고 보는 시각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사천시청 근무 당시에 삼천포항의 개항사를 정리하려 했지만, 자료 찾기가 매우 어려웠음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삼천포항의 개항일을 대한제국 말기인 1910년 2월 1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거로는 융희(隆熙) 4년 1월 26일에 발행한 <관보 제4586>을 들었다. 이 관보에는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 고영희(高永喜)는 부령(部令)으로 경상남도 사천군 삼천포, 경기도 개성군 벽란도, 경상북도 연일군(영일군) 포항, 전라남도 제주군 제주에 세관감시서(稅關監視署)를 설치하고 융희 4년 2월 1일부터 시행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관감시서는 입항하거나 출항하는 배를 대상으로 관세 업무를 담당하던 기관이다. 1883년 7월 25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맺은 ‘조일통상조약’에 따른 결과물이다. 세관감시서의 설치는 곧 개항을 의미하며, 앞서 언급한 다른 도시의 항구도 세관감시서 설치와 개항이 동시에 이뤄졌음을 문정호 씨는 그의 글에서 강조했다. 융희는 대한제국 순종 때의 연호로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쓰였다.

“한일합병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일제는 삼천포를 인구 40~50만의 항구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구항 방파제를 비롯하여 신항공사를 추진하고, 철도를 부설하는 등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삼천포, 부산, 대전, 서울 등의 주요 도시와 직통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하려 한 점(대한민국 근·현대사)을 살펴볼 때 이는 삼천포를 대륙 침략의 거점 도시로 건설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문 씨 글의 일부로서 삼천포항 개항의 배경과 목적이 대륙 침략의 거점 확보에 있었음을 설명한다. 그는 또 군수나 병력 운송을 위해 일본 하카다항과 삼천포항 사이에 화물선 취항도 추진했음을 언급하며, “그때 개발된 동서금동의 통창 일대에 일본 어민들이 이주해 살았다”고 소개했다. “일제 입장에서는 삼천포가 전략적 요충지임과 동시에 수산업으로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도 글의 한 대목이다.

문정호 씨는 이번 글에서 삼천포항의 개항일을 바로잡을 것과, 지난 역사를 바탕으로 삼천포항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해 나가야 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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