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광포만

곤양천 하구의 광포만에는 다양한 겨울 철새가 찾는다. 그중 제일 눈길을 끄는 새는 ‘재두리미’이다.
곤양천 하구의 광포만에는 다양한 겨울 철새가 찾는다. 그중 제일 눈길을 끄는 새는 ‘재두리미’이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지리산이 또렷하게 보이는 맑은 날이다. 기분도 쾌청. 석문 들판을 가로질러 광포만에 재두루미를 보러왔다.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천연기념물이다. 광포만은 곤양면과 서포면이 만나는 곳에 있는 옴팍한 바다다. 람사르 재단 조사 결과 103종의 새가 확인되었다. 희귀 생물들도 많아 생태적 가치가 높은 갯벌이라 한다. 또 갯잔디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곳이란다. 그래서 국립공원 또는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광포만
광포만

재두루미들이 광포만을 찾아오는 이유는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주변환경과 먹이가 있기 때문일 거야. 썰물이라 저 멀리 갯벌과 모래언덕이 드러났다. 재두루미 한 무리가 언덕 사이 얕은 물가에 모여있다. 들판에선 보이지 않더니 여기로 와 있었구나. 관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마을 안쪽으로 가야겠다.

청둥오리 떼
청둥오리 떼

곤양천으로 이어지는 수문 둑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청둥오리들이 떼로 모여있다. 낮은 언덕에는 갯잔디 군락이 펼쳐져 있다. 햇살이 들어오는 언덕 아래 쪼르르 앉아서 해바라기 하는 녀석도 많다. 그곳이 바람은 피하고 햇살만 오롯이 받을 수 있는 ‘명당’임을 알고 있는 거지. 살아가는 것은 모두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지혜를 갖게 된다. 그것은 경험에서 깨우치는 삶의 이치일 테니까.

들판을 돌아 석문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지나 야산 언덕에 올라서니 광포만 해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 빠진 갯벌과 깊은 물길이 경계를 지으며 유려한 선을 긋는다. 드러난 갯벌에 왜가리 한 마리 식사하러 온 듯 고개를 내젓고 있다.

재두루미
재두루미

살며시 아래로 내려가 양지바른 묘지 앞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재두루미 쉬는 곳이 훨씬 가까워지니 무언의 대화를 나눌 만하겠다. 물 빠진 갯벌에 머리를 박고 무언가 열심히 먹고 있다. 재두루미 식량은 곡식도 되고 바다생물도 된다. 숫자를 세어보니 대략 50마리다. 떼로 모여 싱크로나이즈(synchronize)를 하는 듯한 자태가 곱구나. 아무 생각도 없이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우아한 몸짓! 빼어난 유전자를 지닌 사실을 저들 스스로도 알고 있을까?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경계의 목소리를 내며 두세 마리가 날아오르자 모두 고개를 번쩍 들고 한 곳을 바라본다. 뭔가에 놀랐나 보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행이다.

화살나무
화살나무
윤노리나무 열매
윤노리나무 열매

한참 뒤 곤양천이 이어지는 갯벌 안쪽 산자락을 따라 들어가 본다. 물이 빠지면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곳이다. 숲 자락에 어떤 나무가 있나 눈여겨본다. 몇 개 남은 가막살나무 열매, 야생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화살나무도 보인다. 순간, 눈앞에 흐드러진 윤노리나무 열매가 반갑다. 이렇게 많은 열매를 겨우내 매달고 있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새들은 어떻게 이 빨간 열매를 그냥 두고 있을까? 물새들은 어차피 관심이 없고, 아직 열매를 알아챈 산새들도 별로 없나 보다. 저만치 산기슭에서 맹금류 한 마리 스윽~ 날아간다.

갯잔디를 보려고 낮은 언덕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갯벌에 발이 빠졌다. 갯벌에는 물새들 발자국이 많다. 고라니 발자국도 보인다. 몸집이 가벼운 새들은 종종걸음으로 잘도 걸어 다녔겠지? 그런데 몸집이 무거우면 사정이 달라진다. 불편하기 짝이 없고 때론 혼쭐이 난다. 이처럼 같은 생명이라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은 서로 다르다. 다름을 이해하고 저들의 길을 열어주는 것! 지구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지닌 우리가 야생에 보답해야 할 일 아닐까? 이것은 우리 조상님들이 실천해온 오랜 생활철학이기도 하다.

희뺨검둥오리 떼
희뺨검둥오리 떼

돌아오는 길에 곤양천 물풀 사이에서 쉬고 있는 흰뺨검둥오리 떼를 바라본다. 오후 햇살이 이마를 넘어서고 있다. 야생의 긴 밤을 지새운 저들이 내일을 잘 맞이하기를!(또는 맞이했으면….)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