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결혼하여 신접살림을 차린 지 1년 남짓 지날 때였습니다. 딸아이가 태어나 새로운 가족이 되면서 아내의 삶과 나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빨래하는 일이었습니다. 세탁기가 있고 건조기가 있었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고 문제였겠습니까. 아내와 나, 딸아이의 옷가지를 비롯해 집안의 모든 빨래는 모조리 손수 빨아야 했습니다.

쭈그려 앉아 일일이 빨랫비누를 칠하고는 빨래판에 치대고 빨랫방망이를 휘두르고 손빨래를 했습니다. 겨울엔 손이 시려 빨래하는 사이사이 손을 비비고 손에 입김을 불어 차가움을 떨치려 꿈틀거렸습니다. 한참을 앉아 있으면 허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한 번씩 일어나 허리를 펴 줘야만 했습니다. 

온갖 빨래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딸아이 기저귀였습니다. 일회용 기저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아기의 몸을 생각해서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광목천보다는 다소 질이 낮지만 천을 구입하여 기저귀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그 덕에 방 안에는 이리저리 얽힌 여러 가닥의 줄을 더 치게 되었고, 폭포수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진 기저귀 모습은 염색집을 흉내낸 듯 가관이었습니다. 아무튼 빨래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아내와 나에게는 고달픈 노동이었습니다.   

딸아이를 낳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모님과 장인어른께서 찾아와 집에서 며칠을 묵고 가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방안은 빨래들로 가득하여 방을 가로지르려면 고개를 숙이거나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주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빨래를 해서는 널었습니다.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니 내가 넌 빨래들을 장인어른께서 하나씩 다시 널고 계셨습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내가 넌 빨래들은 제대로 펴지도 않고 구겨진 상태로 뒤죽박죽 빨랫줄에 걸쳐 놓은 푸대접꾸러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르는 속도도 더디고 말라서 갤 때에도 다시 펴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랐습니다. 빨래를 탈탈 털고 쫙쫙 펴고는, 양말 따위는 짝을 맞추어 널면 걷고 개는 일이 수월합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빨래를 널고 개는 과정을 통해 작은 것일지라도 일의 효율성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셈입니다.   

언젠가 장교 출신 후배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홀로 사는 총각들의 방은 대체로 씻지 않은 그릇들, 라면, 과자 봉지 따위가 나뒹굽니다. 몽친 양말을 비롯해 빨랫감들이 굴러다니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후배의 방에 널려 있는 양말을 비롯한 옷가지들은 달랐습니다. 펼쳐진 채 오와 열을 맞추곤 군기가 빠짝 든 듯 각을 잡아 정렬해 있었습니다. 빈틈이 주는 여유로움은 없었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자신을 관리하는 확고한 책임감이 묻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가지런함과 흐트러짐은 종이 한 장 두께의 차이일 뿐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무엇이 낫고 못하다, 따지는 일은 한낱 인간의 어리석음이 빚은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흐트러짐과 가지런함은 시공에 따라 존재 의미와 가치가 다르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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