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섬에 전해오는 ‘별주부 전설’은 수궁가와 닮은꼴
‘토끼가 죽은 곳에 토끼섬, 거북이 죽은 곳에 거북섬’
“토끼처럼 슬기롭게 어려움 극복…행복 만들어 나가자”

별주부 전설이 전해오는 사천시 서포면의 비토섬과 월등도. 정면이 월등도 좌우로 보이는 섬이 거북섬과 토끼섬이다.
별주부 전설이 전해오는 사천시 서포면의 비토섬과 월등도. 정면이 월등도 좌우로 보이는 섬이 거북섬과 토끼섬이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2023년, 올해는 계묘년(癸卯年) ‘토끼의 해’이다. 이런 이유로 유난히 토끼가 주목받는다. 연예인이나 사회 저명인사 가운데 토끼띠인 사람들을 떠올려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가 하면, 토끼의 특성이나 그 기운에 맞춰 여러 가지 미래를 예측해 보는 일도 흔하게 일어난다. 이를 ‘믿거나 말거나’ 식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지나칠까?

사천에도 토끼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다. 판소리 수궁가와 서포면 비토섬이 그 배경이다.

수궁가의 주인공은 ‘토선생(=토끼)’과 ‘별주부(=자라)’이다. 그래서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토별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사천에서는 고 선동옥 선생이 수궁가보존회를 만들어 전승하면서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도 <사천 수궁가 전국 판소리·고법 경연 대회>를 해마다 열고 있으며, 지난해가 제18회 대회였다.

사천에서 전해오는 수궁가는 ‘박봉술 창본’이다. 이 수궁가의 도입부에는 “남해 용왕이 해내(海內) 열풍(熱風)을 과히 쏘여 우연 득병(得病)허니”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수궁가의 배경 무대가 남해임을 알 수 있다. 마침 서포면 비토리(=행정 이름)에는 토끼와 거북에 관한 지명이 여러 개 있으니, 자연스레 ‘수궁가의 육지 무대는 비토섬이 아니겠는가’라는 인식이 싹텄다.

비토섬 입구에 있는 안내 표지판. 토끼길과 거북길 산책 코스와 섬에 있는 주요 관광시설물을 소개하고 있다.
비토섬 입구에 있는 안내 표지판. 토끼길과 거북길 산책 코스와 섬에 있는 주요 관광시설물을 소개하고 있다.

비토섬의 비토는 ‘날 비(飛)’에 ‘토끼 토(兎)’를 쓴다. 실제로 섬의 생긴 모습이 ‘나는 토끼’를 닮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천시사나 서포면지에는 이름의 유래를 그렇게 밝혀 놓았다. 더구나 이 비토리에는 월등도, 토끼섬, 거북섬이 딸려 있는데, 하나 같이 수궁가와 연관성을 띤다. 다음은 서포면지에 실린 ‘별주부 전설’의 요약이다.

“아주 먼 옛날 서포면 선전리 선창과 자혜리 돌끝 마을에는 토끼 부부가 살았다. 당연히 가까이 있는 비토섬도 생활 터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쪽 바다 용왕의 사자인 거북(=별주부)이 찾아와 용궁을 구경시켜 준다는 등의 말로 꾀었다. 이에 속은 남편 토끼가 임신한 아내 토끼를 두고 거북의 등에 올라탄 채 바다로 떠났다.

용궁에 도착한 토끼는 자신의 간으로 용왕의 병을 고치려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후회하던 토끼는 한 가지 꾀를 떠올렸다. 자신의 간을 월등도의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왔으니, 돌아가 챙겨 오겠다는 이야기였다.

토끼의 잔꾀가 통해 토끼는 별주부의 등에 올라 월등도로 돌아온다. 하지만 달빛에 비친 월등도를 착각해 바다에 뛰어내렸다가 죽고 말았다. 토끼의 간을 얻는 데 실패한 거북은 돌아가 벌 받을 일을 걱정하다가 그곳에서 죽고 만다. 그렇게 토끼가 죽은 곳엔 토끼섬이, 거북이 죽은 곳엔 거북섬이 생겨났다.”

비토국민여가캠핑장에서 키우는 토끼들이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 
비토국민여가캠핑장에서 키우는 토끼들이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 

이 전설은 판소리 수궁가와는 사뭇 다르다. 수궁가에선 ‘토끼가 죽을 위기를 두어 차례 더 넘긴 뒤 남은 생을 편히 잘 산다’라고 끝맺는 까닭이다. 어쨌거나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이야기는 인도에서 전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술에 빠져 병이 들고 어리석기마저 한 용왕, 어전에서 싸움만 일삼는 대신들은 무능한 정치 세태를 투영한 모습이다. 토끼는 이들을 비웃듯 속인다. 걸음이 가볍고 재치가 넘친다. ‘토끼 해’를 맞는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기도 하다.

(사)한국국악협회 사천시지부장이자 ‘경남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수궁가’의 보유자 후보인 이윤옥 선생은 새해를 맞아 “수궁가 속 토끼처럼 어떤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하고 행복을 만들어 나가자”라는 덕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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