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또 다른 한 해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낯선 시간 앞에 서니 마음은 불안정하고 몸은 무겁습니다. 묵은해를 떠나보내는 길목에서 지난 삶을 하나씩 반추합니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무덕무덕 쌓이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달라진 것이 없기에 제대로 이룬 무엇 하나 찾아내기가 힘듭니다. 한두 가지라도 쪼끔 진일보한 게 있다면 크게 위안 삼아야 할 지경입니다. 그런 과오를 되밟으면서도 낯선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는 어떤 변화를 추구할지 태연히 번민합니다. 

영화 『버킷리스트』의 두 인물, 자동차 정비공 카터와 사업가 에드워드가 시한부 생명 속에서 서로를 위하는 진지한 대화가 스칩니다. 영화가 끼친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꼭 하고 싶은 일들을 낟알 쌓듯 차곡차곡 정리한 목록, 버킷리스트를 작성합니다. 나름대로 이루려는 목표나 꿈을 그리는 작업입니다. 이는 자신의 의지와 추진력을 시험대에 올리는 용기 있는 도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고 냉혹합니다. 누구에게나 출발은 힘차고 희망으로 부풀어 있습니다. 결기가 대단합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머지않아 나타납니다. 목표와 꿈을 이루려면 자신의 끈기를 채찍질하고 자신의 나태를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들이대는 규정은 무엇보다 엄중하고 철저해야 합니다. 철칙을 저버리고 자신에게 관대하고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소홀히 한다면 그 순간부터 스스로 무너져 내립니다. 

몇 백 년 묵은 나무들도 생명체로서 첫걸음은 작은 움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과욕을 품고 원대한 꿈을 그린다면 이는 불안감을 안고 출발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실패의 길로 들어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습니다. 사소한 데에서부터 차근차근 숨을 고르며 나아가는 길은 당장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지언정 목숨을 길게 가져갈 수가 있습니다.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성패를 결정합니다. 힘들여 마련한 목표나 꿈의 빛깔이 ‘자기 합리성 관용’으로 편의주의에 매몰한다면 아쉬움과 그리움의 낟알산은 한층 높아짐은 자명합니다. 작고 낮고 보잘것없지만 하기 손쉬운 데에서 시작하는 게 성공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셰릴 스트레이드의 자전적 소설 『와일드Wild』는 거대한 길은 인생을 느끼고 깨닫게 하는 자연의 배움터임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멕시코 캄포를 떠나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워싱턴주를 거쳐 캐나다 국경인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매닝파크까지 약 4,300km를 걸으며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치유합니다. 고독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지만 극복 의지를 감동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셰릴이 소년 카일에게 말합니다. “문제는 누구나 있어. 나에게도 있는 걸.”

맞습니다. 누구에게나 문제는 있습니다. 나에게는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과이불개過而不改) 문제가 있습니다. 제임스 미치너는 “예상한 일에도 완벽한 대비는 불가능하다.” 했습니다. 그렇다고 닥쳐올 아픔이나 절망을 납작하게 만드는 노력과 끈기를 내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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