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문화원, 학술 발표회 열어 부용 선사 집중 조명해
김을성 “한국 불교의 핵심 인물인데 연구 부족 안타까워”
김행수 “초근목피로 수행해 조선 불교의 정맥을 이었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사천시와 사천문화원이 ‘사천을 빛낸 역사의 문화인물 학술 발표회’를 열어 조선 시대의 고승인 부용 선사를 집중 조명했다.

12월 13일 사천문화원 대강당에서 연 이 학술 발표회에서 김을성 사천문화원 향토연구소장(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서 <부용당 영관 대조사의 행장과 유적지>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는 먼저 “사천에도 한국 불교를 이끌어 온 스님이 있었다”며 부용영관(芙蓉靈觀, 1485~1571) 선사를 소개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부용 선사는 사천시 대포동 심포마을에서 태어나 13세에 출가했다. 벽송 지엄 선사의 제자가 되어 조선 시대 불교 조계종의 법맥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청허 휴정(=서산 대사)과 부휴 선수란 쌍벽의 제자를 배출했다.

김 소장은 부용 선사를 두고 “조선 불교의 초기 핵심 인물인데 비하여 종합적인 연구 논문이 1편 없는 등 한국 불교사에서 홀대받는 처지에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인물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이후의 활발한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지리산 유적지 문헌과 현지 탐방, 사료조사를 통해 종합했다”며 이번 발표의 의미를 새기기도 했다.

김 소장은 또 부용 선사의 행적에 출생지로 ‘영남 진주인’으로 기록된 점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범해 각안 스님이 서술한 동사열전에는 영남 진주 삼천포인으로 소개하고 있다”며, “이는 옛날에  삼천포진이 군사 요충지로서 진주목에 속하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범해 각안이 아니었으면 부용 영관의 고향이 영원히 묻힐 뻔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두 번째 발표는 ‘부용 영관 대선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김행수 영화감독이 맡았다. 그는 <조선 시대 불교 탄압과 영관 선사>를 주제로 다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부용 선사는 불교 탄압이 점점 심화할 때인 성종 16년(1485년)에 태어나 가장 악랄했던 탄압기인 연산군 5년(1498년)에 출가했다.

김 감독은 “부용 선사는 승려가 더 이상 법적 존재 근거를 잃고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되었을 때 깊은 산속 암자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수행했다”며, “그 결과로 조선 불교의 정맥을 이었고, 오늘날 한국불교는 모두 그의 법손들”이라고 정리했다.

이날 학술 발표회는 두 발제자의 주제 발표에 이어 김행 사천문화원 부원장과 무영 스님(도솔정사 주지)이 참여한 종합 토론으로 이어진 뒤 마무리됐다. 토론의 좌장은 김기원 경상국립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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