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달의 인물 : 이훈민 ‘브로-클린’ 청소업체 사장

[뉴스사천=심다온 기자] 홀로 죽음을 맞는 무연고 사망자가 늘고 있다. ‘고독사’로 불리는 이 죽음의 현장에 항상 달려오는 이들이 있다. 청소업체 직원들이다. 사천 토박이 이훈민 씨도 지난 4월 청소업을 시작한 후로, 시신이 수습된 집안의 청소를 세 번이나 의뢰받았다. 특수청소를 하겠다고 나선 창업이 아니었지만, 무연고 사망자의 유족이 절절한 사연을 주며 요청을 하면 거절이 어려운 마음 탓이다. 올해 서른셋, 청년이란 이름 그 한 가운데를 살아가는 그가 청소일로 새롭게 시작한 꿈,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소일로 새로운 꿈을 키워 나가는 청년 이훈민 씨. 그는 홀로 삶을 마감하는 ‘쓸쓸한 죽음’이 가까이 있음에 새삼 놀랐다.
청소일로 새로운 꿈을 키워 나가는 청년 이훈민 씨. 그는 홀로 삶을 마감하는 ‘쓸쓸한 죽음’이 가까이 있음에 새삼 놀랐다.

“청소 시작할게요”
“주로 입주 청소, 홈 케어, 에어컨 청소를 하는데 어느 날 사망자의 아드님이 연락이 왔었어요. 아버지랑 연을 끊고 산 지가 오래됐고 남은 정이 없지만, 사셨던 집 청소는 마지막 예의인 것 같아서 해 드리려고 한다고. 그래서 특수청소는 처음이었지만 미리 찾아보고 준비해서 현장에 갔어요. 업계 사람들은 ‘마지막 이사’라고 불러요. 마지막으로 짐을 빼 드리는 일이죠.
집 현관문 앞까지 손가락 첫 마디 정도 크기의 검은색 구더기들이 나와 있었어요. 4~5개월 정도 시신이 방치된 상태였는데, 이분이 작은 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모든 창문과 방문을 다 닫은 채로 세상을 떠나서 이웃들이 전혀 냄새를 못 맡은 거였죠.”

그는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소주잔을 올려두고 마음으로 인사를 한다고 했다. 악취만 남은 공간에 들어서면 짙은 쓸쓸함에 어쩐지 그 혼이라도 달래고 싶은 마음으로 “청소 시작할게요”라고 말하며 술잔을 올린다. 

“전기가 끊겨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물도 다 썩어서 악취란 악취는 다 있어요. 7시간 정도 쉬지 않고 청소를 하면서, 한 번이라도 찾아갔으면 일찍 발견되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누구의 배웅도 받지 못한 채 누군가가 생을 마친 방, 싸늘해진 체온도 날아간 이부자리와 옷가지를 정리하노라면 묘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막상 그 공간을 마주하면 ‘어떡하지, 도망가야 하나?’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제 절대 다시는 뒤 돌아가면 안 된다’란 다짐을 지키려 마음을 다잡는다. 서울에서 꼬박 두 달 동안 사비를 털어 얻은 모텔 방에서 선잠을 자며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교육을 받고 현장 실습을 했던 시간이 그를 넘어질 수 없도록 붙들어주기도 한다. 

“교육을 받으면서, 좀 더 어렸을 때 지금 이 생각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옷가게, 식당 주방 아르바이트부터 공장 생산직, 사무직, 음식점 창업까지 안 해본 일이 없거든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가도 조금 힘들면 빠르게 포기하고 버텨볼 생각을 안 했으니까 어떤 일에도 적응을 못하고 전전했어요. 그러다가 삼성 가전제품 설치하는 일을 1년 정도 했는데, 새집에 가면 항상 청소하는 사람들이 왔어요. 평당 얼마씩으로 비용을 받는데, 내가 사업자를 내면 십만 원이든 이십만 원이든 내가 직접 벌게 되니까 괜찮겠다 싶었어요. 꿈이 생긴 거죠. 그때부터 여러 군데 업체에 전화해서 창업비용, 절차 등 물으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훈민씨가 운영중인 ‘브로-클린’ 청소업체
훈민씨가 운영중인 ‘브로-클린’ 청소업체

절벽에 선 마음으로 창업한 지 6개월
사실 그는 사천중학교, 자영고등학교를 다녔던 학창 시절, 마냥 ‘놀았던’ 청소년, 못 말리는 반항아였다. 사천읍에서 실비집을 운영하며 홀로 아들 뒷바라지를 한 엄마의 간청으로 그나마 자퇴했던 고등학교에 복학해 무사히 졸업을 했다. 대학교는 정말 가기 싫어서 입학 후 하루 갔다가 바로 자퇴를 했다. 

“그냥 그때는 그게 멋있어 보였어요. 선배들이 학교 안 가는 게 뭔가 멋있어 보이고. 억지로 뭔가를 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 아주 강했어요. 하기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서른이 되면서 ‘현타’가 왔어요. 왕이 된 듯,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까불고 놀았는데 막상 나이가 들고 통장을 열었을 때 아무것도 안 남아 있는 현실. 2020년도의 나와 2021년도의 내가 똑같은 것, 그렇게 30년을 산 것이 너무 싫었어요.”

본업에 열심인 훈민씨
본업에 열심인 훈민씨
청소하는 모습도 진진하다.
청소하는 모습도 진진하다.

공이 오면 받아쳐 볼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 깜냥도 없이 어중간한 수비를 하며 치기 어린 시절을 지나오는 것, ‘저 너머 어딘가를 보며 이 넓은 세상에 내가 필요한 곳이 그래도 한 군데는 있겠지’라고 맘 졸이지 않았던 청춘이 있을까. 좌충우돌 넘어지고 흔들리며 한 뼘씩 자란 훈민 씨가 절벽에 선 마음으로 창업한 지 6개월, 여전히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만만찮다. 그러나 이제는 포기 못 할 목표가 생겼단다.
 
“청소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청소 그 뭐 아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지금 세운 목표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나면 쓰레기집, 고독사 유품정리, 화재, 공장 등 특수청소를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요. 청소라는 게 막상 해보면 매우 부지런해야 하고, 고객들을 응대하는 것부터 현장에서 실제 업무까지 쉽지 않아요. 아직도 요령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청소업무의 가장 큰 고충은 고객마다 청소에 대한 기대치, 기준치가 다른 거예요. 한 번은 청소 완료 후에 하얀 물티슈와 하얀 면봉, 하얀 양말을 신고 오셔서 몇 시간 동안 검수를 한 고객님도 있었어요. 용품을 사용해서 닦거나 지우는 것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사전에 항상 말씀을 드리지만 각자 다른 기대를 맞추는 것은 늘 힘들어요.”

모든 노동이 그렇듯 매 순간 밀려오는 파고를 넘고 다시 힘을 내야 하는 청소 일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들이 만족을 알리는 후기를 전해올 때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그 두 마디면 돼요. 정말 다른 게 필요 없어요. 그 인사를 받고 나면 그날의 피로가 사라져요. 그래서 저는 더 솔직하게 고객님들에게 비용과 업무에 대해 말씀드려요. 영업 전략이 솔직함입니다.” 

“어머니가 일하지 않도록 하는 게 꿈이에요”
돈을 벌기 위해 나선 길에서 뜻하지 않은 인연도 얻게 된다. 훈민 씨의 열 세평 남짓한 사무실에 있는 한 살 된 고양이가 그 인연의 주인공이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어떤 분의 언니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어지럽혀져 ‘쓰레기집’이 된 동생의 집 청소를 부탁했다. 

“청소를 마쳤는데 그 언니분이 동생이 키우던 고양이들을 밖에 놓아달라고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 제가 데려왔어요. 현재 제 사무실에서 임시 보호 중입니다. ‘개냥이’라고 불리는 애교 넘치고 사람 좋아하는 고양이니까 꼭 좋은 분이 데려가 주시길 바라고 있어요. 저는 종일 밖에서 일하니까 돌볼 수가 없어서요.”

훈민씨 사무실에 임시 보금자리를 마련한 고양이.
훈민씨 사무실에 임시 보금자리를 마련한 고양이.

사천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사천이 지루하지는 않은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천에 사는 거요? 저는 진짜 답답한 점이 없어요. 사천을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해요. 제가 어렸을 때의 사천과 지금의 사천을 보면 정말 많이 발전했거든요. 자연재해도 별로 없고, 있을 건 다 있어요. 물론, 다 없기도 해요. 아주 묘한 이야기지만 저에게 사천은 그래요. 사천에 살면서 서울의 눈높이를 갖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천이라서 못 할 일은 없다고 봐요.”

하루하루 고단함을 씻어내고 고객이 주는 보람으로 지내다 보니, 곁에서 흔들림 없이 생업을 지켜온 어머니가 지금 그의 눈에는 너무나 대단해 보인다. 혈액암으로 투병 중에도 일을 쉬지 않는 것이 답답할 지경이다. 

“이젠 엄마가 좀 쉬었으면 해요. 제가 항상 그래요. 3년만 기다리라고. 자리 잡고 나면 엄마가 가게 일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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